내가 보고 싶은 책, 내가 직접 만든다

(팝콘뉴스=김진경 기자)[* 편집자 주 MZ세대에 속하는 20·30대 중에는 MZ라는 용어가 오히려 좀 진부하게 느껴지고 지겹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X세대로 유명했던 지금의 40대도 그런 말을 했다. 젊다는 칭찬도 참신하다는 장점도 때로는 부담이 된다.

그래도 스타트업이라는 분야를 빛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이들 MZ다. 한 명 한 명의 젊은 사장님들을 만나 그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열정과 비전에 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동년배들은 같은 세대의 열정을 만나서 용기를 얻고 좀 더 어리거나 좀 더 연장자인 사람들도 영감을 받을 기회다.]

▲ 진열 중인 문예지 모습 (사진=18도의 얼그레이) © 팝콘뉴스


1인 출판이란 개념이 출판산업에 등장한 뒤로 많은 시도와 실패가 이어졌다. 단순히 혼자 모든 업무 분야를 감당하는 효율이나 경제적 이득을 넘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 경우만이 사업을 지속하고 업적을 남긴다. 퀴어 전문 출판이라는 브랜드를 10대 때부터 준비해 20대 초반에 시작한 청년 사업가가 있다. 퀴어 전문 문예지 '일곱 개의 원호'를 비롯해 다양한 퀴어 세미나와 독서모임 등을 주최하고 있는 '18도의 얼그레이' 출판사의 우인영 대표를 ZOOM 인터뷰로 만나보았다.

#1 '18도의 얼그레이' 창업과 퀴어 전문 문예지 '일곱 개의 원호' 발간의 첫 발상은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나요?

"독립출판과 개인지 만들기에 중학생 때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마침 고등학교 1학년 때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원데이클래스로 책 한 권을 완성하는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이 과정이 단행본 하나를 다섯 권 인쇄하면서 끝나거든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과 상의해서 이 다섯 권의 결과물을 좀 더 많이 인쇄해서 독립서점에 입고하는 걸 시도했어요."

독립서점 입고에 성공하고 나니까 다른 것도 좀 더 시도하고 싶어졌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문예지도 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인터넷으로 팀원을 모집해서 문예지 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진로를 문예창작과로 지망해서 문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 시기에 박상영 작가 등 퀴어 문학이 부상하기 시작하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주류로 나오는 퀴어 문학이 대부분 게이나 레즈비언 이야기가 중심이고 다른 젠더나 성 정체성 이야기는 크게 부각이 안 되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요."

우인영 대표는 자신이 퀴어 당사자이기 때문에 퀴어 문학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바이섹슈얼이나 다른 퀴어 정체성을 문예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고 한다. "없으니까 내가 만들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2 창업 초기에는 자금 마련이 쉽지 않은데요. 펀딩은 어떻게 하셨나요?

"독립출판은 소량 생산하면 돼서 초기에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어요. 인쇄비용도 아르바이트로 충당되는 편이고요. 그런데 문예지를 시작하면서 작가 섭외하고 원고료가 나가게 되면서 비용이 커지기 시작했죠. 그런 부분에 대해 문예지 지원사업을 많이 알아보고 신청해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문예지 지원사업은 대부분 1년 이상 몇 회 이상 발간해야 하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스타트업 문화지원 쪽으로 신청해서 성공했죠."

지난해에는 지역문화 진흥사업에 선정돼 지역 주민과 오프라인 소통이 가능한 퀴어 세미나, 독서모임 등을 주최하고 있다.

▲ 진열 중인 퀴어 문예지 (사진=18도의 얼그레이) © 팝콘뉴스


#3 퀴어 세미나와 퀴어 독서모임 등 문예지 출간 외에 다양한 문화사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애초에 지원사업 신청을 할 때 문예지 출간만 신청하면 선정될 확률이 낮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문화적 영향을 나눌 수 있어야 선정될 수 있거든요. 특히 지역문화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를 육성할 수 있는 무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활동 내역이 필요합니다."

'퀴어 세미나'와 '퀴어 문학 독서회'는 지원사업 선정에 필요한 활동 내역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실제 독자들을 만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다. 독서모임일 뿐이지만, 공개하기 어려운 정체성을 지닌 이들에게 익명성 또는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게 뜻깊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4 최근 진행했던 모임이나 사업 중 가장 독자 반응이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독립출판페어에 참여했는데 이미 절판된 저희 출판사 책을 어떤 분이 들고 오셔서 사인받고 별 말씀 없이 가신 적이 있어요. 다른 책이나 부스는 눈길도 안 주시고 묵묵하게 책에 사인만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곧바로 가셨는데 그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낸 결과물을 조용히 지켜보시는 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인영 대표는 독립출판페어에 참여했을 때 독자들이 직접 찾아와서 소감을 이야기하고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어 뜻깊었다고 한다. 책이 팔리는 건 알 수 있어도 온라인으로 리뷰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반응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 퀴어 문예지 '일곱 개의 원호' © 팝콘뉴스


#5 사업을 진행하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귀인이나 도움이 있다면?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는 팀원들의 도움이 없다면 여기까지 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제가 퀴어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퀴어 이론에 대해 깊게 공부를 많이 한 건 아니라서 팀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의견 나누면서 이런 과정이 편집하는 데 영향이 큽니다."

운영 면에서 거의 모든 걸 혼자 처리하지만 편집 과정을 돕는 팀원들이 있다. 다들 본업이 있어서 회의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렵고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우인영 대표는 온라인에서 주로 소통하는 팀원들이지만 "아무래도 이론 공부도 기획 경험도 저보다 많으셔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첫 만남도 온라인이었다. 기획을 하던 중 팀원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트위터에 공고를 올렸고, 글쓰기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우인영 대표보다 나이가 많지만 20대 중반과 후반 사이의 청년들이다.

#6 독립출판 또는 1인 출판사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단점은 모든 걸 혼자 책임지고 진행해야 한다는 것. 문예지가 아닌 단행본 제작은 혼자 편집하고 디자인해야 하는데 업무 분담이 안 된다는 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모든 걸 혼자 발품 팔아서 해야 하고 인쇄소를 직접 알아보고 입고 고객 응대와 문의도 일일이 혼자 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을 감수해야 한다. 장점은 단점의 뒷면이다.

"장점은 역시 만들고 싶은 책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고 다른 대형 출판사와 협업하는 게 아니라 자유도가 높다는 거죠. 모든 과정에 내 생각과 취향이 들어갈 수 있고요."[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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