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늦어지며 먹는 약, 건보 적용 논의 줄줄이 미뤄져
여성단체 "임신중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 어려움 개인 감당 몫 아냐"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형법상 낙태죄가 제한적인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있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므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다만, 헌재가 2021년 1월 1일 낙태죄 폐지 시한과 함께 요구했던 형법 내 해당 조항의 '대체입법'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 이후 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형법상 낙태죄 개정을 전제로 하는 모자보건법, 약사법 등 개별 법률에 대한 개정 역시 줄줄이 미뤄지면서,의료 현장에서 여전히 여성들이 '위태로운' 임신중지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먹는 약, 건강보험 논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후'로 미뤄졌는데...1년간 논의 '無'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와 28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정한다.

▲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 ▲부나 모에게 유전학적 질환이 있는 경우 등에만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의사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만 형법상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현재 형법상 낙태죄가 삭제됐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조항이지만, 개정은 늦춰지고 있다.

정부는 헌재가 '낙태죄 폐지'가 아니라 '대체입법'을 요구한 만큼 '임신 주 수' 등 별도의 조건을 형법에 신설 후 연계해 모자보건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한다는 견해이다. 여성단체 등은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늦춰지면서, 임신중지 여성에 대한 '의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2021년 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임산부 본인의 동의를 받으면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할 수 있게끔 하고, 인공임신중단에 대한 보험급여 실시를 담고 있다.

2020년 10월 이은주 의원 대표발의안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인공임신중단에 관한 표준 진료기준, 의료의 질 관리 등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한다.

같은 달 조해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약물에 의한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한다.

일부 병원에서 수술 시 배우자의 동행을 요구하고,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70~80만 원의 수술 비용을 지불하고, 표준 진료기준이 없어 병원마다 '주 수' 등을 고려해 자의적으로 수술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답변하고, 인터넷에서 출처 없이 판매되는 불법 약품을 복용하는 등 피해 사례들이 계속되고 있지만,이들 개정안은 지난 2021년 2월 17일 보건복지위 회의를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 개정 전 안전망 마련 목소리에는 '폭탄 돌리기'

이에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전이라도 당장 필요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책임자가 없어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지난해 2월 17일 국회 보건위 회의에서 홍형선 수석전문위원은 "개별 급여항목을 법률에서 직접 명문화하는 것은 현행 건강보험 운영 체계상 수용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인공임신중단 급여화의 공을 보건복지부에 돌렸다.

현행은 복지부 설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급여 적용 의료행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복지부는 다시 국회로 공을 돌렸다. 당시 권덕철 복지부장관은 "(형법상) 주 수 문제 등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준비할 수 있다"며 "앞단에서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개정돼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그런 상황들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약품이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먹는 임신중단 약 '미프지미소'는 당초 지난해 말 허가가 예견됐으나 지난해 11월 약사회 등 전문가단체 자문회의 이후 품목허가 절차가 사실상 멈춰 있다.

여성단체 등은 조속한 대체입법에 1년째 목소리 내고 있다. 지난 10일 셰어 등 여성단체 연대는 낙태죄 폐지 1년을 맞이해 서울 보신각 앞에서 공동행동을 열었다. 공동행동은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임신중지 혹은 출산 등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국가책임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날 단체들은 공동행동 선언문을 통해 "일부 언론은 아직도 임신중지를 일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결정인 것처럼 다루지만, 현실에서 임신중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해서 결정하는 인생의 경로"라며 이 같은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애를 이유로 한 의료기관의 차별, 임신 혹은 임신중단을 위한 정보 불균형 등의 어려움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님"을 선언했다. [팝콘뉴스]

[AS취재] 지난해 이달 진행한 기사를 1년 후 지금 다시 다룹니다.

지난해 이달의 기사 : 낙태죄 헌법불합치 2년... 시민사회 "여성이 건강할 권리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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