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보호자 지역 연계에 센터, 구심점 역할... "센터, 아이들만 케어하는 곳 아냐"

(팝콘뉴스=권현정 기자)아이들은 온 마을에서 자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골목에서, 길거리에서 자란다. 코로나19로 집과 학교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또 다른 돌봄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교와 집 바깥, 아이들을 돌보는 마을 곳곳의 모습을 연재 기사로 담는다.

▲ 지난 18일 중랑구 파랑새지역아동센터 거실 한편 사물함 위로 초등학교 저학년생 아이들의 책가방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 팝콘뉴스

센터의 가장 첫 손님은 정오가 넘어가면 점심시간 전 하교한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거실 한편에 마련된 사물함 위로 반짝거리는 책가방을 가지런히 올리고 손을 씻는다. 힘차게 인사하고 나면, 한바탕 '수다' 시간이 시작된다. "오늘은요"로 시작한 이야기가 웃음소리와 함께 와르르 터져 나온다.

지난 18일 중랑구 파랑새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코로나19로 하교 시간이 일러지면서, 아이들의 등원 시간도 앞당겨졌다. 챙겨줘야 하는 밥도 급식에서 일부는 대체식 배달로 전환됐다. 코로나19로 생업이 불균형한 가정이 늘어나면서, 돌봄 시간도 기존 오후 7시부터 8시까지로 연장됐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이승미 센터장의 얼굴에서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정말 귀엽다"는 말이 말마다 달려 나왔다. "내 일에 자부심이 있는 편"이라는 이승미 센터장과 이야기 나눴다.

■ "정서적인 '스파크' 튈 수 있는 경험 얹어주려고 해요"

중랑구 파랑새지역아동센터에 등록된 아동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까지 나이대가 다양하다. 나이대의 폭이 제법 넓은 26명의 아이를 이 센터장과 생활복지사 선생님, 복지부에서 파견된 아동복지교사 두 명이 돌본다. 악기 수업, 영어 수업 등을 진행하는 프로그램 선생님과 자원봉사자도 함께다.

급식, 사물함, 장난감, 책, 화이트보드, 선생님. 지역아동센터의 풍경은 얼핏 학교나 학원처럼 보이지만, 센터장은 센터는 학원이나 학교의 '대체재'나 '차선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식을 전하는 건 주목적이 아니에요. 보조 목적이죠.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갈 힘이 되는 게 센터의 목적이에요. 그걸 위해 다양한 경험을 많이 얹어주려고 하는 거죠. 아이들마다 어디에서 '스파크'가 튀어서 뭘 취득할지가 다 다르니까요."

'스파크가 튀는 다양한 경험'의 첫발은 아동과의 교감, 소통, 정서적 지원 등이다.'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주고 눈 맞춤하며 경청하는 것, 학교에서 다녀오면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야 한다고 일러주는 것, 연극을 보러 가서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고 경험시켜주는 것, 규칙의 세부는 분기별 '아동자치회의'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논의해 정하도록 하는 것, 책상에 10분씩 앉아있게 하는 것 등이다. 요컨대, '집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다닌 아이들은 (생활지도가) 쉬워요. 그런데 중간에 오는 아이들은 살아오면서 생활에서 무언가 따르고 지켜야 했던, 그래본 경험이 없었던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이 제일 힘들 거예요. 처음이니까. 그래서 조금씩 하자고 해요. 처음 오면 '그냥 의자에 엉덩이 떼지 않고 30분 앉아만 있어 보자' 그래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책 펴보고, 공부를 시작하는 거죠."

▲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에 아이들이 저마다 집중하고 있다. 집에서 '책 읽어주기'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센터에서는 점심 전이면 꼬박 책 읽어주는 시간을 가진다는 설명이다 ©팝콘뉴스

'좋은 관계 맺기' 경험은 센터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학교에서는 '동급생'간의 관계를 배운다면, 센터에서는 선후배 관계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센터 선배'가 미리 배운 생활 질서를 다시 후배에게 지도하는 풍경도 펼쳐진다.

"작년 11월에 에버랜드에 갔거든요. 갔더니,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다 케어해요. '썰매 탈 거야? 케이블카 탈 거야?' 묻고, 스케이트 타러 가면 또 탈 줄 아는 큰 아이들이 모르는 작은 아이들 가르쳐주고요. 배식도 큰 아이들이 받아다가 작은 아이들한테 전달해주고 그러더라고요. 센터에서 생활할 때도 밥 먹을 때 줄 서는 것을 항상 알려주거든요. 어린 친구들 먼저, 어린 친구 중에서는 생일 순으로. 이게 몸에 배니까 따라 하는 것 같아요."

'사회와 좋은 관계 맺기' 역시 센터가 주목하는 '스파크 튀는 경험' 중 하나다. 센터는 아이들과 함께 방학 때 다른 지역의 센터 아이들과 공간을 바꿔 생활하는 방식으로 '캠핑'에 나선다. 이때 아이들은 '교통비' 일부를 낸다. 1년에 한 번씩 센터 이름으로 '사랑의 열매'에 기부되는 돈이다.

"그런 취지를 보호자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알려요. 아이들도 돈 내면서 '이거 기부할 거죠?' 그래요. 아이들이 배려받는 걸 당연시 하는 성향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왜 이건 해주는데, 이건 안 해주세요?' 하고요. (기부 등의) 이런 활동을 하면서, '너희가 누리는 것에는 누군가의 큰 배려가 있었다', 우스개로 '인생 거저 없다'. 제가 아이들한테 자주 얘기하는 것 같네요. 또, '(돈이) 있어서, 다 쓰고 나서 남아서 나머지로 기부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도요."

■ "센터가 아이들만 케어하는 곳은 아니거든요"

올해 센터에 새로 들어온 아이들은 초등생 1학년 세 명. 정원 중 자리가 나면서 대기하던 아이들 중 돌봄이 시급히 필요한 가장 어린 아이들이 먼저 들어왔다. 센터에서는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을 만난다. 이번에 들어온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과도 안면을 텄다.

"매년 초면 해요. 3월에는 담임 선생님이 아직 아이들 파악이 어려운 시기니까, 4월 말쯤 하루 날을 잡아서 종일 학교에 있어요. 선생님들 찾아가서 '이 아이는 학교에서는 이래요' 듣고, '센터에서는 이래요' 공유하고요. 또, 담임 선생님을 센터에서 부모 모임을 할 때 초대하기도 하죠."

학교와 맺기 시작한 관계는 지자체와 관계를 넓히는 데로 나아간다.지자체가 돌봄이 당장 필요한 아이들의 '긴급돌봄'을 가장 먼저 요청하는 곳, 아이에게 지자체의 '돌봄'이 필요할 때 지원을 요청하는 주체로 센터의 역할은 커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경우가 있었어요. 그 가정에 우리 센터 다니는 아이가 여러 명이었는데, 구청-복지기관-아이들 학교 선생님이 모여서 사례 회의를 했죠. 수급지원 등 필요한 지원을 찾고, 병원이나 심리센터도 연계하고, 후견인으로 세울 수 있는 가족을 찾고. 센터가 구심점 역할을 하게 돼요.저희가 아이 근황을 제일 많이, 빨리알게 되잖아요.잠자는 시간 말고는 여기서 가장 길게 생활하니까요."

▲ 첫 번째 프로그램실 화이트보드에 어제저녁까지 이어진 중고등부의 열띤 학업의 흔적이 남아 있다 © 팝콘뉴스

■ 아이들은 '집'에서 자라기 때문에

센터의 '지역 연계'는 아동 사례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이 자라는 곳은 결국 '집'이다. 센터는 3년째 놀이치료, 언어치료 등을 포함한 정서 지원사업에 나서고 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호자 역시 대상자다.

"케어(생활지도)해서 보냈는데, 집에 갔다 오면 다시 흐트러져서 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이 역량은 선생님과 보호자를 못 넘어가요. 선생님과 보호자가 먼저 올라가야 해요. 보호자와 함께 지원해야 (아이가) 좋아지더라고요."

학업에 대한 의지 등도 마찬가지라고 이 센터장은 부연했다. 센터는 서울시 내 대학교 재학생 '멘토'들을 통해 대학 탐방 프로그램을 지난해 운영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은 멘토,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멘토, 센터를 다녔던 멘토 등이 프로그램을 조력했다. 대입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 일부가 관심을 붙였고 한 아이는 올해 대입에 성공했다.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면서도 이 센터장은 덧붙였다.

"보호자가 대입에 관심을 못 가질 수도 있어요. 뭐든 해봐야 맛을 아는 건데, 부모님이 그런 기회가 없었으니까."

'건강한 아이'를 위해 '건강한 부모'를 지원하는 방법에는 지역 연계도 포함된다. 센터는 최근 조손가정의 보호자인 할머니를 지역 한글학교와 연계했다. "6개월 부지런히 다니셔서 한글학교 졸업식 축사를 하셨다더라. 이제 꼬맹이(손자) 한글 가르친다고 그러신다"고 이 센터장은 말했다. 이 밖에 '부모 모임'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아동자치회의처럼, 부모 모임도 있거든요. 부모님들끼리 친해지니까, 예전에 많이 늦을 때는 오후 10시에 끝나는 일도 있었는데, 애들을 데려다줘야 하잖아요. 그걸 부모님들끼리 품앗이하시더라고요. 단톡방을 만들어서 일정이 있으면 바꾸고. 이번에 들어온 1학년 친구들 부모님도 품앗이하고 있는데, 매우 친해지셨더라고요."

최근 코로나19로 센터의 일이 늘고 있다. 화상 수업 준비가 별도로 추가되기도 하고,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등원이 어려운 아이들이 늘면서 대체식 준비하고 각 집에 배달하는 것도 센터의 몫이다. 오후 7시에 하원 하던 아이들이 이제 오후 8시가 돼야 귀가한다.

그럼에도 이 센터장은 고민을 더 하면 더 했지, 하던 것을 덜 할 수는 없겠더라고 말했다. 하나하나 고민하고 찾고 쌓아온 방법인 만큼, "한 번 맛을 들리면" 안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속 썩였던 아이들이) 뜬금없이 연락이 올 때가 있어요. 오겠다고. 오면 '밥 먹었어? 아픈 덴 없어?' 어제 본 아이처럼 맞아요. 갈 때는 이 친구가 '또 올게요' 그래요. 다시 안 온대도 마음은 오고 싶은 거죠. 저도 가끔 연락하고요. '보고 싶은데 안 오냐?' 하고.연어가 돌아오듯이 돌아오는 아이들이 많으면 아이들한테도 좋아요. 지금 프로그램 선생님 중 한 분도 지역아동센터 이용하던 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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