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화 칼럼] '견디라'는 말이 폭력처럼 느껴지는 청춘의 시간

젊은 세대들이 힘내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한경화 편집위원 | 기사입력 2022/01/12 [14:39]

[한경화 칼럼] '견디라'는 말이 폭력처럼 느껴지는 청춘의 시간

젊은 세대들이 힘내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한경화 편집위원 | 입력 : 2022/01/12 [14:39]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나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간절히 원하던 대로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는 일반 직장과는 달리 학생들이 있었기에 일은 힘들어도 내게는 직장생활이라기보다는 학교생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만큼 즐겁게 학교에 다녔다. 열정을 다해 신바람 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2년 뒤 남편과 결혼하며 나와 남편은 진정한 어른이 되었고, 그로부터 1년하고 조금 더 지나 큰아이를 낳으며 부모가 되었다. 그때가 나는 스물일곱, 남편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대부분 직장을 잡고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들으면 어떻게 그렇게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느냐고 놀랄 것이다.

 

당시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들처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보다는, 직장만 잡으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악착같이 살았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돈을 벌어야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열심히 저축도 하며 가정을 알차게 꾸려나가는 게 정석이라고 믿었다.

 

나의 경우는 다행히 친정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몇 년간 직장에 다니는 낮 동안은 친정엄마께서 큰아이를 맡아 키워주셨다. 아이를 넷이나 낳아 키우며 남편에게 쥐꼬리만한 생활비를 받아 힘들게 살림을 사셨던 엄마는 딸이 아무리 힘들어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자기 삶을 살기를 바라셨기에 힘든 내색 없이 외손주를 기꺼이 맡아주셨다.

 

직장생활과 육아, 살림을 병행하자니 당시 나는 친정엄마께 죄송한 마음보다는 내 삶의 무게가 너무 고단하고 힘겨운 데 대한 연민을 더 많이 가졌던 것 같다. 늘 수면이 부족했고, 몸도 자주 아팠다.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아이가 아파 밤잠을 못 자고 설치거나, 퇴근 후 아이를 업고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날엔 울기도 참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견뎌내며 직장생활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 좋은 며느리 등 내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을 늘 담금질했다. 그러다 보니 슈퍼우먼 증후군에 걸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을 나이가 된 지금의 내 아이들을 본다. 나이는 그때의 나보다 더 들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마냥 어리게만 보인다. 아직도 내가 보살펴줘야 할 부분이 많고, 힘든 모습이라도 볼라치면 안쓰러운 마음에 노심초사하게 되는 어린 자식일 뿐 도무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오늘은 퇴근 후 돌아온 아이가 직장에서 일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며 저녁밥을 먹는 대신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들기를 선택한다. 피곤함에 밥도 못 먹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밥도 못 먹을까' 한없이 안쓰러운 마음 상태로 치닫는다. 내가 대신 힘든 일은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힘들어서 어쩌나 하는 걱정이 겹치며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은 거대한 콩나무가 된다.

 

그러다 지금 딸아이 나이 때의 나의 삶을 소환해 기억을 더듬으며 되돌아본다. 나는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몇 사람 역할을 다하며 살았을까 싶으면서 '내 아이가 앞으로 직장생활과 육아 등을 다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머무는 순간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 구조와 분위기가 많이 변했고, 삶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변했다. 과거에는 그저 참고 인내하며 지키는 것이 미덕이었던 것들이 현재는 그렇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그중 하나가 된 것 같다.

 

현대사회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무색하고, 무조건 참고 견디거나 극복하며 살라는 말이 폭력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기피하거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무작정 피하고 멀리할 수만은 없다. 국가와 민족의 존속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후손에 대한 책임은 그 무엇보다 간절해야 한다.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저출산 해결과 육아 관련 정책을 내놓으며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희망 무지개를 그려 보이고 있다. 그러나 취업전선에서 많이 지치고, 경제적인 면에서 이미 힘듦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그린라이트에도 아직은 냉랭한 마음을 풀기 어려운 모양이다.

 

젊은 세대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며 직장 생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수놓기를 바란다. 살다 보면 고난과 역경도 맞닥뜨리고 힘도 들겠지만, 기꺼이 행복한 내 가정과 내 아이들을 위해 웃으면서 힘을 내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건강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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