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전시..."모두가 알지만 방치한 공간, 역사 기록하는 장 돼야"

2021 수원역성매매집결지 기획전시 '여기-잇다'(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5월 수원시는 수원역성매매집결지 전체 업소에 폐쇄명령을 내렸다. 시가 일부 토지 매입, 업주 압수수색 등으로 정비에 나선 결과였다.

건물 곳곳에 '자진폐쇄' 현수막이 나붙었고 건물이 모두 비워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산적해 있다. 성매매 당사자 여성의 '이후'가 그렇고, 반복을 막기 위한 '기록'이 그렇다.

수원역성매매집결지 기억과 기록을 위한 전시 '여기-잇다'가사단법인 수원여성인권돋움 산하 성매매피해상담소 오늘 주최로 오는 28일까지 수원시가족여성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곽예인, 곽지수, 봄로야, 윤나리, 이충열, 자청, 황예지 등 일곱 명의 작가의 약 열 개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앞서 작가진은 약 6개월간 성매매피해상담소 오늘의 활동 및 교육에 함께 한 바 있다.

■ 안과 밖을 이야기하기

▲ 자청 작가의 '공상'. 뒤의 작품은 차례대로 곽지수 작가의 '웅-웅'과 이충열 작가 '우리' © 팝콘뉴스

자청 작가의 '공상'은 지도상에서 '막다른 길'로 표기된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골목, 덕영대로 895번길과 팔달로 10번길을 위에서 바라본 것처럼 펼친 작품이다.

얇은 흰색 종이로 만든 사각형의 긴 관이 조감도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집결지 골목 하늘이 불투명한 슬레이트 '천장'으로 막혀있는 것을 묘사했다.

봄로야 작가의 '유일하고 유일한 정원'은 지워진 '안'을 당사자의 일상으로 채워낸다.

집결지 길 건너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수원시가 설치한 울타리 바깥에 적힌 '휴먼시티 수원' 등의 문구를 검게 칠하고, 울타리 안쪽에 당사자 여성의 반려견 초상화 프로젝트 '목화에게'를 더했다.

황예지 작가 '번역의 말'은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아카이브(모음) 촬영본에 성매매 피해 여성의 '해석'을 얹은 작업물이다.

작가가 폐쇄된 집결지 사진을 전송하면 당사자 여성이 관련한 경험이나 인상을 적어 보낸 것을 책으로 엮었다.

▲ 왼쪽은 윤나리 작가 '테이블'과 황예지 작가 '번역의 말' 일부. 오른쪽은 이충열 작가 '우리' 중 일부 © 팝콘뉴스

전시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제를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보현 오늘 팀장)으로 마련된 만큼,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의자와 책상 등이 전시 작품으로 배치된 것 역시 눈에 띈다.

이충열 작가는 작품 '우리'를 통해 활동 중 만난 성매매 당사자 여성을 기호화한 이름과 그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적은 '의자'를 곳곳에 배치했다. 동시에 하나의 의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것으로 남겨둔다.

윤나리 작가의 '테이블'은 활동가, 성매매 여성 당사자 등의 말을 적어넣은 컵 여럿을 긴 책상 위에 배치, 여러 개의 의자와 함께 전시한 작품이다. 의자는 앉을 수 있고, 컵은 만질 수 있다.

■ "지워진 사람들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 필요해"

한편, 수원시는 지난 5월 매입한 토지 일부에 '문화거점공간'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주민협의체를 조직하고, 공간의 용처에 대해 기억공간을 포함한 여러 안을 두고 논의 중이다.

다만, 시민사회는 '공간'을 논의하면서 '사람' 역시 살펴야 한다고 짚는다.

수원시는 '수원시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에 따라 성매매 당사자 여성에 생계비, 주거지원비, 직업훈련비 등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은 약 1년간 진행된다.

이보현 성매매피해상담소 오늘 팀장은 "영업중단 사실을 직전까지 몰랐던 여성들이 많다. 도로 정비 보상 문제로 업주는 알았는데, 여성 당사자는 몰랐다"며 "20년 이상 여기서 생활하신 분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이곳이 생활 터전이다. 갑자기 일상이 뒤집히며 겪는 우울감, 상실감, 무력감을 치유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데, 지자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자활 과정을 가시적인 성과로 파악하려 한다.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짚었다.

특히, 집결지의 '진짜' 폐쇄를 위해서는 그간 사회가 지워 온 당사자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짚는 공간이 '현장'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보현 오늘 팀장은 "'완전폐쇄'가 아니라 '일시 영업중단'으로 보고 있다. 모든 건물과 토지주, 건물주가 처벌받은 것이 아니다. 이미 인근에 새로운 '모던바', '다방' 등이 들어선 상황"이라며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거점공간을 통해 계속 기록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마소현 사단법인 수원여성인권돋움 사무처장은 "왜 (집결지를) '기억공간'으로 남겨야 하는지 많은 시민과 만나서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요구가 '상업적인 공간'으로의 재건에서 '기억공간'으로 변하면, 지자체의 방향성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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