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계획 빠지고 표준 모델 '아직'..."시설보다 당사자 지원 중심 돼야"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2일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장애계가 탈시설 운동을 시작한 지 10여 년만,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약속한 지 4년 반 만이다.

지난 2018년 탈시설 민관협의체 마련 이후,탈시설 로드맵 발표 시한이 거듭 연기된 끝에 마침내 발표된 로드맵인 만큼, 장애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려의 시선 역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자칫 '시설 소규모화'에 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 로드맵 공개됐지만, 예산 계획 '0'

2일 발표된 로드맵은2025년부터 연간 740여 명의 탈시설을 지원해 2041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하며 ▲기존 거주시설은 자립 지원 시설 등으로 전환하고 신설은 금지한다는 것이 골자다.

시설 장애인에 대한 연간 자립 욕구 조사, 공공주택 및 주거유지서비스 지원, 관계부처 통합 탈시설 추진단,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 등 정책 수행 '도구'는 일부 마련했지만, '어떻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장애계는 입을 모은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 의거한 유럽 탈시설 기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탈시설 국가 전략은 새 서비스의 자금 조달 방법을 명확히 하기 위한 예산을 수반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로드맵에서 예산 관련 언급은 2021년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 정도, 8월 개소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이하 중앙지원센터) 사업예산 2억 원 정도에 그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일 성명서를 통해 "24시간 개인별 지원을 위해 활동지원서비스를 얼마나 확충할 것인지, 자립정착금을 얼마나 확보해 지원할 것인지, 어떤 유행의 주택을 얼마나 확보해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 예산이 수반돼야 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 사업방향 '시설 전환' 중심... 정책 '실감' 위해서는 당사자 지원으로 가야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10개 지자체 시범사업을 통해 마련할 예정인 '표준 모델' 역시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한 '커뮤니티케어(마을통합돌봄)'를 통해, 지역돌봄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고도 통합된 가이드 없이 시범사업을 다시 펼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특히, 각 지역 현장에서 중앙지원센터와 소통할 조직을 특정하지 않고 있어, 자칫 '각개전투'를 통해 각지의 복지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서울시 등 자체적으로 탈시설 사업을 벌여온 지자체와 타지역 사이 격차는 장애계의 화두 중 하나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중앙지원센터와 각 지역 탈시설 지원책의 차이가 벌어지면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자립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린다"며 "지역사회 안에 서비스가 없는 상태에서 신규 시설만 설치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일단의 사업 방향이 개인 지원이 아니라 '전환 시설 지원'을 선결과제로 두고 있어 자칫 한정된 예산이 분산되면서, 시설은 남아있지만 입소는 어렵고, 지원주택 등 자립지원책도 충분치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시설 정책을 반대하는 부모들의 불안이 이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전가되는 돌봄부담에서 온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현재 로드맵은 시설을 소규모화하고 기능을 보강하겠다는 것인데,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예산이 소진된다면 '탈시설 정책'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착금을 받고 이후 소득보장이 되는 방식으로 사업이 운영되지 않으면, 탈시설 정책을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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