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에 고인 물도 썩기 마련이다

(팝콘뉴스=손지윤 기자)

영화 '더 킹'은 전형적인 80년대 동네 양아치가 인생 터닝포인트를 통해 대한민국 검사로 거듭난 검사 태수(조인성)의 일생에 포커스를 맞췄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 류준열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을 꾸리고 관상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한재림 감독은 어쩌다 동네에 들른 보따리 장수가 넉살 좋은 웃음으로 다가오듯 사람을 홀려 버리는 재주가 탁월한 듯하다.

러닝타임은 2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굵직굵직한 사건을 관객들에게 던져주며 결말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감독이 캐릭터마다 부여한 특징을 배우들이 잘 흡수한 것은 물론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영상미에 자연스럽게 몸이 스크린 앞으로 기운다.

더군다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태수의 일대기에 정권교체라는 조심스러운 부분까지 유머러스하게 담아냈고, 보란 듯이 권력의 낯부끄러운 모습까지 탈탈 털어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영화가 개봉되고 감독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요 근래 개봉되는 영화와 다르게 손으로 눈을 가릴 정도로 잔인하지도, 그렇다고 선정적이지도 않다.

그 흔한 베드신도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미묘하게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장면들로 오히려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년 세월에 얽힌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태수가 격양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이어가는 것도 한몫했다.

▲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우주필름 제공

1980년대부터 격변의 민주화 운동 시기를 지나 2010년대까지 약 30년 역사를 함축한 한 남자의 일대기.

전라도 출신, 민주화 운동, 책 잡히기 좋은 가족들 등 검사라는 직업 빼고는 약점 투성이인 태수는 99%의 평범함 샐리러맨 검사를 거부하고 남몰래 1%의 세상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미모의 아나운서 아내와 빵빵한 처갓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수백 건의 잡다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쳇바퀴 속에 갇힌 태수.

그는 우연히 쓰레기보다 못한 교사의 성추행 사건을 처리하다, 1% 검사 중 실세를 맡고 있는 한강식(정우성)을 만나게 되면서 그만 그의 동아줄을 덜컥 잡아버린다.

그토록 바라던 권력을 눈앞에서 본 태수에게 동아줄이 썩었는지 온전한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먼지 털어서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먼지 털어서 기획하고 구속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검사. 그러니 어렵게 손에 쥔 권력을 지키기 위해 3류 양아치스러운 행동이 따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아무도 그런 그들을 보고 선뜻 제지할 수는 없다. 태수는 더 이상 촌스러운 추리닝과 교련복을 입고 쌈박질을 하던 목포 양아치가 아닌 '검사님'이라 불리는 권력의 한 중간에 있기 때문.

그런 그를 권력 앞에 데려오면서도 필요가 없어지니 매몰차게 대하는 양동철(배성우)과, 검사들의 뒤 처리를 봐주면서 모든 때는 본인에게 묻히는 태수의 친구 최두일(류준열)의 상반되는 행동은 누가 검사고 누가 양아치인지 의심이 들게끔 한다.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검사 실세 한강식 역시 정의 구현보다는 일찍이 사시를 패스해 마약을 하는 것마냥 권력에 취해버린 인물.

본인 입으로 '내가 왕이야'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을 정도로 그의 권력은 실로 막강했다.

어쩌면 대통령보다 더했을지도.

그런 그가 차기 대통령을 맞히기 위해 뻔한 무당의 굿판에서 정장을 입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더 나아가서는 정의 구현보다는 목숨 보전이 우선인 몇몇 검사들의 분주함이 그닥 낯설지 않아 불편해지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전략수사팀에 걸려진 대통령의 사진이 바뀌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본인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보여지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추악한 면모까지 말이다.

한재림 감독은 “한국보다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주인공 태수처럼 '권력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생각에 잠시 빠져들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권력, 돈, 뛰어난 인물만 갖춰진다면 천국보다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곳에서 권력을 남용하는지 그들만이 알뿐 평범한 우리가 알 길은 없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 손에 쥐여 있던 권력은 언젠가 피를 부른 다는 것.

그 기간이 십 년이든 수십 년이든 최후의 말로는 화려했던 지난날을 무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냥 죽여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만큼 남은 여생에 지옥보다 못한 나날이 찾아왔다는 것을 스크린과 현실에서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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