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인 일상 소설] 탈피(脫皮) 4-1

나소리 기자 | 입력 : 2016/03/08 [17:45]
(팝콘뉴스=나소리 기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소설가의 꿈을 꾸던 중 신춘문예 당선을 마음에 두며 끄적여봤던 소설이다. 한 번의 시도 끝에 부끄럽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워 덮어뒀지만 문득 주머니 속에서 손 끝에 잡힌 쪽지처럼 꺼내 돌려보고 싶다.<편집자주>

                                                                   1

제법 매섭게 부는 가을바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1호선 노량진 역.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따스한 태양빛이 그대로 내리쬐며 아스팔트를 데운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머리 위로 올라선 육교, 역 밑 화단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들, 그 옆 덩그러니 놓인 벤치, 그 벤치에 애린이 앉아 고개를 쳐들어 눈을 감고 있다.

검은 정장에 낮지만 단아한 검은색 구두가 눈에 띈다. 묶었다 푼 자국이 선명한 긴 머리카락이 세찬 바람에 따라 제멋대로 휘날리고 있다. 그 옆으로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다. 플라스틱 통은 남자 손으로 한 뼘 정도 작은 크기에 오트밀 색 모레가 바닥 가득 깔려 있었다. 그 통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눈을 감은 애린은 이따금씩 들릴 듯 말 듯 한 콧노래를 흥얼댄다. 경쾌한 콧노래와 달리 애린의 입 꼬리는 수평을 유지할 뿐이다. 

그런 그녀를 희원이 곁눈질로 쳐다본다. 벤치 옆 화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 틈에 섞여있던 희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힐끔댄다. 그러다 이내 그녀의 검지가 톡톡 두드리고 있는 플라스틱 통을 유심히 쳐다본다. 가득 깔린 모래 위로 살짝 소라껍질이 나와 있다. 희원은 한참을 유심히 그녀와 그녀의 플라스틱 통을 살피다가 발로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끈 후 자리를 떠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희원의 입에서 그녀의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2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노량진 거리. 수험생들로 가득한 노량진의 밤은 술과 오락으로 화려하게 물든다. 먹자골목에 책가방을 맨 여러 수험생 무리들이 부산스레 모여 있다. 화려한 술집 간판, 시원한 듯 쌀쌀한 밤공기에 들떠있는 그들 옆으로 희원이 지나간다.

제법 추운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추리닝 반바지를 입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그가 겉옷에 얼굴을 파묻은 채 걷고 있다. 그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즐거운 여학생들의 비명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바람이 세게 불면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며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그의 왼쪽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에는 캔맥주가 차가운 김을 내뿜고 있다.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을 벗어나니 한결 조용해진다. 곧 희원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빠르게 걸었던 탓인지 그의 구레나룻 옆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이내 그의 발걸음이 서서히 멈추며 역 앞 벤치에 털썩 엉덩이를 갖다 붙인다. 시원하게 한숨을 쉬며 희원이 고개를 들자 육교에 그녀가 있었다.
 

 

                                                                  3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아스팔트와 만나며 굉음을 만들어낸다. 한참의 소음 끝에 신호등의 불빛이 붉게 바뀐다. 동시에 세상은 아주 잠시 조용해진다. 적막이 밤공기에 흩어지는 그 시간, 육교 위에 애린이 앉아 있다. 육교 위에 편하게 앉은 애린이 펜스 사이로 도로를 구경하고 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깨지고 차들은 다시 굉음을 내며 굴러간다. 그 소리에 초점 없던 그녀의 눈빛이 되살아난다. 크게 한 번 한숨을 쉰 그녀가 육교 펜스에 머리를 가볍게 반복해 찧는다. 그렇게 그녀의 눈이 육교 아래를 향한 순간, 육교 아래 벤치에서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희원의 눈길과 부딪힌다. 이내 그는 급하게 일어나 벤치를 떠나버린다.

허둥지둥 자리를 뜨는 그를 한참 보던 애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천천히 육교를 내려온 그녀는 그가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린다. 비닐봉지 안에는 물방울이 가득 맺힌 캔맥주 하나와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벤치에 앉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봉지 안에 들어있던 캔맥주를 따 시원하게 들이킨다. 신호가 붉게 물들며 이내 세상은 다시 고요 속에 파묻힌다.
 

 

                                                                4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리는 방 안. 작은 책상과 그 위 어지럽게 놓인 책 몇 권과 옅은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 하나, 옆으로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설픈 침대가 있다. 애린은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손으로 휴대전화를 찾느라 손을 더듬댄다. 실눈을 뜬 그녀가 간단히 종료버튼을 누르자 다시 방 안이 조용해진다. 그녀는 마른세수를 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한참을 퉁퉁 부운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있던 그녀는 정신이 돌아온 듯 달력을 보고 다시 몸을 눕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녀가 빠르게 책상 위 컴퓨터 앞에 가서 앉는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초조하게 손톱 옆 살을 뜯던 그녀는 컴퓨터가 켜짐과 동시에 인터넷 창을 켠다. 즐겨찾기 목록의 제일 윗줄에 있던 홈페이지를 누르고 몇 번 마우스로 클릭을 해대던 그녀의 손이 멈춘다. 

‘2014년 9급 공채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이라고 적힌 pdf 파일에는 ‘박애린’이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눈물들이 쉴 새 없이 떨어져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에 고인다. 방 안에는 애린의 눈물이 떨어져 고이는 소리만 ‘똑, 똑’ 들린다.

순간 고요하던 방 안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애린은 고개를 들고 방 안을 살피다가 이내 그 소리가 플라스틱 통 안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인지한 후 서서히 통으로 다가간다. 그 안에서 작은 소라게 한 마리가 자신에게 맞는 쉘을 찾으려 이 쉘에서 저 쉘로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 애린은 문구점에서 이 소라게를 사왔던 날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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