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 출범
"'통제를 위한 입법' 필요하다는 '전제 오류'가 문제 해결 막아"
서명운동 진행해 오는 9월 세계안전한임신중지의날에 복지부, 국회 전달 예정

▲ 17일 오전 보신각터 앞에서 열린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 출범식에서 활동가들이 '비범죄화'가 적힌 망토를 두르고 '비싼 임신중지 비용', '병원마다 천차만별 진료기준' 등이 적힌 팻말을 차례로 뒤집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팻말 뒷면에는 입법 전 각 부처에서 시행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이 적혔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2021년 1월 1일은 헌법재판소가 정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른 대체입법 시한이었다. 2020년 말 당시 정부는 임신 주 수에 따라 임신중절수술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다수 의원 발의안과의 경합 끝에 입법이 불발된 바 있다.

이후 식약처, 보건복지부 등은 대체입법이 완료된 이후로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의료인 대상 교육, 당사자 대상 정보 제공 등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제도 개선을 미뤄왔다.

17일 오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 보건의료단체 및 여성단체는 서울 종로 보신각터 앞에서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이하 모안넷)' 출범식을 열고 "'입법공백'은 핑계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활동가는 '입법공백' 자체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입법'을 하겠다는 '전제'가 제도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제14조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한 상황을 제한하고 있다. ▲우생학적, 유전학적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혈족 임신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이다.

2020년 말 당시 정부안은 14주까지는 시술을 허용하고, 15주~24주까지는 '사회 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상담을 거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허용 조건을 조정했다.

나영 활동가는 "임신중지를 결정하고 고민하는 배경을 법의 잣대로 일일이 구획하거나 나열할 수 없다"며 "병원까지의 거리, 의료비 문제, 노동여건, 돌봄문제, 파트너나 가족과의 상황, 경제 상황 등의 수많은 변수로 임신중지 결정과 시행 시기 자체가 늦어진 사람들, 임신유지도 중지도 자기 의사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법의 관념적인 사유와 주수 논쟁에 의해 처벌받고 낙인찍히고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라고 짚었다.

또, "임신중지 고민과 결정은 법의 처벌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통제를 위한 입법'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날 모안넷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부 역할로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 지원 센터 등으로 이어지는 진료 연계 체계 등 의료전달 체계 구축 ▲병원 정보, 임신중지 전후 가이드 등 정보 제공 체계 마련 ▲보건의료 현장에 임신중지 권리 보장 교육 시행 ▲사회적 낙인 해소를 위한 성교육 ▲모자보건법, 의료법, 약사법, 근로기준법 등 개정 등 일곱 가지를 요구했다.

식약처는 지난 2020년 12월 유산유도제의 빠른 심사를 약속하고 2021년 7월 허가 절차를 밟고 있으나, 13개월째 도입되지 않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통한 임신중단' 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활동가는 "유산유도제는 30년 전 개발돼 70여 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술보다 저렴하고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기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식약처는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허가를 미루면서 국민들은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않은 비싼 유도제를 구입하는 등 더 위험에 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료인 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날 현장에서는 현행 모자보건법이 정한 사유가 있을 때도 임신유지 혹은 중단을 위한 적절한 정보제공,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임신 후) 큰 병원에 가면 좋다고 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여기서조차 의료진들이 당황하며 '지울거죠?'라고 물었다"며 "임신유지하는 동안 어떻게 앉아있을 수 있고, 일상에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 상태가 어떤지 알고자 했으나 병원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방문마다 동행한 남편에게 '고생한다', '착하다' 등 말을 건넸고, 장애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혈압을 측정하는 시설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활동가는 "정확한 의료 지식은 권리 교육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보건의료인의 머릿속에도 당연히 임신중지에 덧씌워진 낙인과 고정관념이 존재하며, 이는 과학적 사고를 흐리고 의료현장에서의 차별과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건의료인들에게 의학적 지식은 물론 재생산권리에 대한 교육 또한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안넷은 항후 시민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오는 9월 28일 '세계 안전한 임신중지의 날'에 이를 보건복지부와 국회에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이나연 활동가는 "아직 일각에서는 대체입법 전까지 어떤 변화도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비범죄화 이후 변화는 분명하다. 시민들은 권리로서, 의료서비스로서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병원을 찾는 심리적 장벽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한다. 보건의료인 또한 안정적으로 임신중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체계 마련에 나서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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