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재용 기자 | 기사입력 2022/08/10 [16:23]

[기자수첩]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재용 기자 | 입력 : 2022/08/10 [16:23]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 이어령 이화여대 전 명예교수는 대학원 석사 과정 시절, 국내 문단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비판하면서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때가 24세 무렵이었다. 비판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도 국내 문단계는 인간관계에 얽혀서 서로 비판을 잘 하지 않는다. 한국 특유의 '주례사 비평'은 그래서 유명(?)하다. 당시는 더 심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대선배이자 유명 문인들을 비판했으니 문학계에 그 충격파가 만만치 않았다. 

 

'이어령'을 독해할 때는 이 점이 중요하다. 이어령을 단순한 문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랬다면 '이어령'이라는 아이콘이 나올 수 없을 터. '이어령'은 기존 문화계의 관습적 질서를 재생산하기보다 철저하게 창조적 파괴를 추구한 해체주의적 아이콘이다. 해체주의는 기존 질서의 단순한 해체가 아니다. 해체주의의 거장들이 중세의 신적 질서를 해체해서 근대라는 새로운 가치의 시대를 창조했듯이 이어령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런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전문 인터뷰 기자인 김지수가 이어령의 마지막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죽음을 망각하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져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이어령 선생은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핵심은 "죽음이 무엇인지 알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인생 이야기, 문학적 지혜와 삶의 통찰이 담겼다. 책에서 이어령은 죽음이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이라고 했다. 

 

"우리가 진짜 살고자 한다면 죽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와야 한다네. 눈동자의 빛이 꺼지고, 입이 벌어지고, 썩고, 시체 냄새가 나고…. 그게 죽음이야, 옛날엔 묘지도 집 가까이 있었어. 귀신이 어슬렁거렸지, 역설적으로 죽음이 우리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거야, 신기하지 않나? 죽음이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져."

 

그런데 팬데믹이 우리 곁에 죽음을 다시 가져다주었다는 것. "현대는 죽음이 죽어버린 시대라네, 그래서 코로나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거야, 팬데믹 앞에서 깨달은 거지,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걸." 현대인은 죽음을 잊고 돈, 놀이, 관능적인 감각에 빠져 있다가 코로나로 죽음을 경험하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기 호주머니 속에 덮여 있던 유리그릇 같던 죽음을 발견한 거야, 주머니에 유리그릇 넣어 다녀봐, 깨질 것 같아서 불안하지? 그게 죽음이라네, 코로나는 바로 그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안고 있는 우리 모습을 들춰냈어." 이어령 선생은 인터뷰어에게 진실의 반대말이 뭔 줄 아느냐고 묻는다. 인터뷰어는 "망각"이라고 답한다. "맞아,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속에 진실이 있어, 경계할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네,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 

 

사실 팬데믹이 아니라도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면서 산다.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 부모님, 친척, 친구의 죽음. 현대인은 소용돌이적 사고의 경향을 보인다. 그러니까 아무리 비참한 사건이라도 그게 집단주의적 경험의 소용돌이로 들어오지 못하고 파편화되면 금세 망각의 늪에 빠진다. 어린 시절부터 뉴스의 프레임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습성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죽음이 집단주의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죽음을 내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애초에 있던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죽음을 이야기했으니 삶도 이야기한다. 럭셔리한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어령 선생은 삶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소유로 삶의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값비싼 물건이 아니고요?"

 

"아니야,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세일해서 싸게 산 다이아몬드와 첫 아이 낳았을 때 남편이 선물해 준 루비 반지 중 어느 것이 더 럭셔리한가? 남들이 보기엔 철 지난 구식 스카프라도 어머니가 물려준 것은 귀하잖아, 하나뿐이니까. 우리는 겉으로 번쩍거리는 걸 럭셔리하다고 착각하지만, 내면의 빛은 그렇게 번쩍거리지 않아. 거꾸로 빛을 감추고 있지. 스토리텔링에는 광택이 없다네, 하지만 그 자체가 고유한 금광이지."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가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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