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대륙회의 독립선언서 낭독,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미국 독립기념관(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미국 독립전쟁의 본질적인 원인은 식민지에 대한 일련의 압제였다. 1763년 영국의 수상으로 임명된 조지 그렌빌은 강력한 권한을 쥐고 식민지에 적극 관여했다. 영국 정규군을 아메리카에 영구 주둔시키고 식민지에 군대 주둔에 필요한 숙식을 제공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영국의 착취에 저항한 식민지인들

영국은 또한 영국의 제조업 보호를 위해 1732년 모자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식민지의 비버털모자의 생산과 수출을 제한했다. 또한 1733년 당밀법을 제정해 영국령 서인도 제도 이외의 지역에서 수입되는 설탕과 당밀에 중과세를 부과했다. 지속되는 이러한 법 제정에 식민지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결정적으로 식민지인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인지세법이었다. 1765년 인지세법은 식민지에서 발행되는 모든 서류, 신문, 달력, 팸플릿, 증서, 유언장, 면허증 등에 세금을 부과했다. 이로 인해 영국 정부는 2년 만에 10배가 넘는 세금 수익을 올렸다.

1765년 5월 패트릭 헨리(1736-1799)가 버지니아 의회에서 한 연설은 식민지인들을 자극했다. 만일 현행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조지 3세도 이전의 독재자들처럼 교수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더해 물리적 저항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스턴에서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단체는 인지 취급 관리들을 협박하고 인지를 불태웠다. 영국 상품 불매 운동도 벌였다.

식민지인들의 분리독립 의식을 고취한 것은 인지세법만이 아니다. 새로 들어선 영국의 윌리엄 피트 내각의 실제인 재무장관 찰스 타운센드는 1767년 영국 의회를 통해 두 가지 조치를 시행했다. 식민지인들이 반란법에 따를 때까지 뉴욕 의회를 해산하며 영국에서 식민지로 수입되는 물품들에 타운센드 과세로 알려진 세금을 새롭게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인들의 엄청난 저항을 초래했다.

5명이 죽은 보스턴 학살 사건

이 무렵 보스턴 학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학살 사건이라고 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망한 사람은 5명이다. 미국 식민지인이 인디언들을 몇백 명에서 몇천 명에 가깝게 학살한 사건도 많은데 5명 죽은 것을 학살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은 일종의 홍보 조작이다. 프랑스대혁명 기간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동이 위대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숱하게 처형되는 잔혹한 모습도 많았는데 단지 그 위대성만 부각해서 위대한 혁명으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인디언 학살에는 아무런 말도 안 하면서 자기들 5명 죽은 것을 학살이라고 표현한 미국인의 '내로남불'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구 1만 6000명의 보스턴엔 영국 정규군 4개 연대 1만 60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인구와 군인의 수가 비등한 것이다. 영국 군인들의 봉급은 적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비번이 될 때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었다. 따라서 식민지 노동자들과 잦은 충돌을 벌였다. 1770년 3월 5일, '자유 청년들'(liberty boys)이라는 단체의 노동자들이 관세청 보초들에게 돌과 눈 뭉치를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 영국군이 총을 발사해 5명이 사망했다. 식민지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보스턴학살'로 명명하며 영국 압제의 상징으로 선전했다.

독립운동의 기폭제, 보스턴 차 사건

1773년 동아시아 지역과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영국에서는 팔 수 없는 많은 양의 차를 재고로 안고 있어서 파산 직전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에 영국 정부는 1773년 차 세법을 통과시켜 동인도회사에 정규 세금을 내지 않고도 식민지에 직접 수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동인도회사는 차를 식민지 상인보다 싸게 팔아서 식민지의 차 거래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식민지 상인들이 분노했다. 식민지인들은 차 불매 운동으로 대응했다. 식민지 여성들은 '자유의 아들들'처럼 '자유의 딸들'이라는 애국단체를 조직해서 영국에 반대하며 "우리는 자유를 위해 차를 끊겠다"고 시위했다. 1773년 12월 16일 밤 50명씩 구성된 3개 조가 모호크 인디언으로 가장해 보스턴 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상선 3척에 올라가 배에 실려 있던 판매용 차 300상자를 물속에 던졌다. 다른 항구에서도 비슷한 저항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게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 사건이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다.

1776년 7월 4일 식민지 대륙회의는 '독립선언서'를 채택했다. 붉은 벽돌로 된 어느 2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흰색 탑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건물이 바로 오늘날 필라델피아의 독립광장에 있는 독립기념관이며 그 종은 자유의 종으로 불린다. 독립선언서가 뉴욕에서 낭독되었을 때 시민들이 광장으로 몰려가 납으로 된 조지 3세의 동상을 때려 부수었다고 한다. '독립선언서'는 "우리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의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 추구 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받았다는 자명한 진리를 믿는다"고 천명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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