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들의 시위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첨병과도 같은 것

▲ 지난 3월 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가 시청역에서 서울시 420 및 서울지방선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투쟁 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서울은 인구밀집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도시라서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이에 대응해 서울은 대중교통이 꽤 잘 발달한 메트로폴리탄이기도 해 기자는 대중교통 수단, 특히 전철을 애용한다. 얼마 전에 조금 바쁜 시간대에 전철을 탑승하러 갔는데 전동차 여기저기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시위대의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이에 따라 전철이 서행한다는 안내방송이 간헐적으로 나왔다. 순간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저런 사람들 때문에 편리하게 도시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방해받는 것인지 불만이 생겼다.

시민의 출근을 볼모로 잡는 시위는 비문명적?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20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장연 시위에 대해 "국민 발을 묶어 의사를 관철하는 상황에 대해선 엄격한 법 집행을 할 것"이라며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라고 했다. 지난 4월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서울 시민들의 출근을 볼모로 잡은 것은 비문명적"이라 주장했듯,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시위 형태를 고수하는 그들이 낙후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동행했던 지인은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저런 막무가내식의 시위문화를 빨리 없애야 한다"며 자신의 수준 높은 교양 인식을 자랑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 통행에 방해받으면 누구나 짜증 나기 마련이다. 인간은 파토스적이고 에토스적이며 동시에 로고스적인 존재이다. 바쁜데 방해를 받으면 순간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과거 철학자들은 이것조차도 억제하고 악으로 여겨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과하다. 현대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자기의 감정을 무조건 억제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나서 신경증 질환만 유발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짜증 나고 화날 때는 일단 화를 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 오히려 겉으로 감정을 참으면 그 욕구불만은 꼭 뒤에서 일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충동적인 동물적 감정을 이성적인 인간의 사유로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파토스적이지만 동시에 로고스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지만, 이성적으로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에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가 없는 '깨끗한 도시'라면 그것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일까? 북한에 여행을 다녀 본 외국인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 어떤 시위대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북한 체제는 자신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여길 테지만 사실 아름답다기보다는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까? 북한에도 장애인은 당연히 있을 것인데 그들 각자 집이나 어느 공간에 숨어서 배제되고 혐오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철저히 감춰지는 사회라면 일상성의 맥락에서 정의와 평등과 인간 존엄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대졸자들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교양 있다고 잔소리처럼 옳은 소리 한마디씩 하기 좋아한다. 자신들이 꽤 문명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말은 꽤 자기모순적이다. 외연적으로는 문명적이라는 언명을 사용하면서 전혀 문명적이지 행동을 표출했으니 말이다. 내 처지와 다른 약자들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문명적인 것은 아니다. 문명은 로고스에 기반하는 것인데 파토스적인 행동을 하니 그가 말한 '문명적'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내 지인은 "내가 민주주의적인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왜 시위를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하냔 말이지,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는 식으로 해야 교양 있는 것 아닌가 말이야, 한심해서 원…"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원래 시위라는 것은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강자들의 시위가 아니라 약자들의 시위라는 점이 중요하다. 시위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거나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힘이 없기에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한다. 힘없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면 시끄럽게 해야지 조용하게 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시끌벅적함을 목격하면서 시민들은 일상성의 작은 정서적 파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하고 정치적 정책 반영에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것이 데모의 기능이다.

민주주의는 시끌벅적한 것

만약 힘 있는 사람이라면 시끄럽게 시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힘 있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자신의 권리를 획득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소 시끌벅적한 것이다. 너무 조용하면 지배 계급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에 좋은 세상이 된다. 그래서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의 길거리는 너무 조용하다.

사회적 약자가 시위를 통해서 사회적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강화되는 게 아니다. 기성의 체제를 계속 건드리고 균열을 내야 민주주의는 확장된다. 자극받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는 점점 사회적 약자들의 지위 공간을 축소시킨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 최고의 석학이었던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브로디외는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는 항상 위기"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상위 1%의 부자가 아닌 이상 다들 약자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를 보면서 교양 없다고 비난하고 배척하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의 사회적 권리조차 쪼그라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장연의 시위가 조금 짜증 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시위할 권리 자체를 비난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 그 짜증을 감수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의 자격 내지는 역할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말이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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