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개봉 영화 '모어'

▲ 영화 '모어' 보도스틸(사진=엣나인필름)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였죠."

지난 16일 서울시 동작구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만난 모지민 안무가(이하 '모어')는 지난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13 후르츠케이크(13 Fruitcakes)'에 배우로 참여한 기억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 최초의 대규모 퀴어 인권 운동인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맞이해 초청된 한국 연극에서 전면에 나서는 배우로 활약했다는 진한 이력을 획득한 그는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드래그(Drag)퀸'으로 부른다.드래그는 그가 "성실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 '지긋지긋'하고도 '아름다운' 무대이다.

오는 23일 개봉 예정인 뮤지컬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의 출연자 겸 배우 모어를 만났다.

■ 아름답기 위해 하는 성실한 '짓'

'드래그(Drag)'는 평시와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고 무대에 서는 문화 전반을 가리킨다. 신체의 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사회적 남성상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드래그킹'도 최근 대두되지만, 신체의 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자신의 여성성을 과장해 표현하는 '드래그퀸'이 대표 격이다.

모어가 드래그를 처음 접한 것은 22세 무렵, 이태원 클럽 '트랜스'에서. 이후 20여 년, 댄서로, 배우로, 안무가로 이름을 바꿔입는 동안에도 모어는 드래그 무대에 섰다.

"어린 나이에 화류계에 들어간 거다. 엄청난 폭력이 있었다. 사람을 예의 갖춰 대하는 곳은 아니니까. 담배빵(담뱃불에 데인 상처)이 나고, '또라이냐', '네가 예술가라도 되는 줄 아냐', '작작 해라' 막말을 들었다. 20년간 속이 곪았다. (드래그는 나에게) '애증 덩어리'다."

▲ 보도스틸(사진=엣나인필름) © 팝콘뉴스

'애증 덩어리' 드래그 무대에 계속 선 것은 그것이 그가 "스스로 성실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주 무대였던 까닭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한 그는 입학식 날 선배에게서 뺨을 맞았다. 여성성을 버리라는 선배의 폭력과 폭언에 새로운 무대가 필요했던 그가 찾은 것이 드래그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고 그는 덧붙였다.

"영화를 찍고 보니 삶이 '영화적'이더라. 중학교 선생님이 시켜서 춤을 운명적으로 하게 됐고, 논밭만 있는 시골에서 그것도 남자애에게 (부모님이) 발레를 시켜줬고. (나에게) 춤은 호흡에 내재해 있는 거다. 숨 쉬듯 글을 쓰고 살아가고. 거창한 게 아니다."

2000년대 초, '변방에서 예술을 향해 애쓰는' 그의 성실한 삶이 만든 무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는 모습이다. 드래그는 유튜브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양지화한 문화가 됐고, 다른 예술 분야와 종횡으로 협업한다. 모어와 같이 드래그에 적을 두고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예술가들도 출현하고 있다.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게 인생 모토다. 예쁘고 이런 게 아니라, 본연의 자아에 새겨져 있는 것.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이 되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거로 생각한다. '모어님은 자유로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데, (자유로움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거로 생각한다. (소수자 친구들 중에) 회사에서 편하게, 아름답게 회사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 성실한 사람은 기어이 자리를 만들어내고

영화는 모어가 '13 후르츠케이크'에 섭외되고 '발레리나'로서 무대에 서기 위해 토슈즈를 신고 연습하고, 결국 오랜 시간 미뤄뒀던 꿈을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과정을 모어의 다양한 춤, 연기, 퍼포먼스와 함께 담는다.

이 과정에서 '드래그', '발레'와 함께 그의 '성실한 아름다움'을 여는 주요한 열쇳말로 등장하는 것이 '관계'다. 영화는 그의 아이돌이자 친구인 존 카메론 미첼(영화 '헤드윅' 연출 및 배우), 뮤지션 이랑, 남편 '제냐' 등과의 관계에 카메라를 깊이 들이댄다.

특히,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와 만나 교류하는 장면은 인상 깊다.

"신기한 존재다. 중학교 때 괴롭혔던 친구인데, 고등학교 때 교무실을 통해서 저에게 찾아오겠다고 전화했었다. 중학교 때 괴롭혔지만, 그때 '너를 괴롭혀서 미안하다', '이제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대학교 때도, 힘든 시기에 그 친구에게 숨겨달라고 연락해서 만났었고. 대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성남 집까지 올라와서 데려가고 그랬다. 가해자에서 은인 같은 상태로 바뀌었는데, 이걸 보고 (어떤 관객이) '영화적'이라고 표현하더라."

▲ 보도스틸. 모어와 남편 제냐(사진=엣나인필름) © 팝콘뉴스

이랑의 '가족을 찾아서'가 흐르는 장면도 모어의 '아름다움'의 향방을 드러낸다.

"존은 영화를 아직 못 봤고, 이랑은 DMZ 영화제 때 보고 눈이 퉁퉁 불었을 정도로 오열하더라. 저는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저의 삶이 부끄러운데, 결과물을 사람들이 보고, 다들 이 영화가 좋다고 말해주더라. 영화를 통해 화려함으로만 한 시간 반을 채웠다면 이런 반응이 없었겠지. 인간적인 면을 보고 감동하고 그런 것 같다."

모어의 계획은 앞으로도 빽빽하다. 우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고, 최근 발행했고 영화 전반 내레이션의 본적이기도 한 에세이집 '털난 물고기 모어'의 낭독회도 오는 7~8월 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다. 드래그퀸, 안무가로서 다양한 공간에서 춤을 펼칠 계획도 있다. "신비로운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모어는 덧붙였다.

"은평 문화재단에 소속돼 있는 작가다. 5년째 가르치고 공연하고 하고 있는데, 가끔 수색역이나 불광천 개천가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는 한다. 어렸을 때 파리나 유럽 가면 거리 예술이 있잖나, 그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살고 있더라. 그걸 돈을 받고 기록하고 영상으로 찍고, 너무 행복하다. 예술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어서."

▲ 보도스틸(사진=엣나인필름) © 팝콘뉴스

■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영화"

영화에 대한 소회도 전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 드래그 퍼포먼스를 담아낸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다. 모어는 출연과 연기, 춤과 복장의 경우 연출까지 담당했다.

"매번 촬영을 거듭할수록 내가 집중이 안 되더라. 할 때마다 '궁지'에 몰렸다. 여유가 없어지면서, '현타'가 오더라. 카메라가 주는 엄청난 폭력과 피로, 카메라는 돌아가고 나는 뭔가 뱉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안 되더라. 극 영화처럼 스태프가 붙어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감당해야 하고. 이렇게 (영화 촬영하는) 3년이 지났고, 포기한 채로 끝나버렸다."

드래그퀸이 아닌 '사람 모지민'을 내보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쇼잉'은 가면이지 않나. 항상 즐거운 척을 해야 하고. 영화는 정반대인 거다. 정말 '진면목'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방식을 모르겠더라. 길을 잃고, '자신이 없다', '할 수 없다' 싶었다. 1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풀리더라. 내가 치부로 생각하는 것들을 다 드러내고, 다시 담는 작업을 했다. 영화 찍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거다. 총을 들었으면 그래 다 보여주자."

'진면목'이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또다시 성실히 내보인 그에게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는 중이다.

영화를 먼저 선보인 무주산골영화제는 그에게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을 전달했고, "감동을 받았다"는 관객들의 소감을 직접 들었다.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걸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아름답기 위해 한 일,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감동하고 힘을 얻더라"는 그의 말에서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만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퀴어 영화로 보지 말아달라"는 것.

"모어 모지민의 성장 영화예요. 여성도 남성도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 모지민이라는 사람이 변방에서 예술을 향해 이렇게 애쓰고 발버둥치면서 버티면서 살아가는구나, 알아주고 느껴줬으면 좋겠고, 또, 저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곳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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