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도 기능성도 모두 잡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명품, 고려화문석

(팝콘뉴스=강나은 기자)화문석이란 강화도에서 나는 왕골이라는 이름의 풀을 엮어 만든 돗자리지만, 일반 돗자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왕골을 물들여 무늬를 넣었으니 디자인은 물론, 매끄럽고 기름진 왕골 덕분에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기능성까지 잡았다. 고려시대 이후부터 제작된 화문석은 인삼과 함께 외국인에게 알려져 중요한 수출품이자 명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해 이 유행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조선시대 화문석이 가장 많이 나왔던 지역이 바로 강화였다.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 (사진=고려화문석) © 팝콘뉴스


할부 대신 화문석 계가 있었던 그때 그 시절

백년가게 '고려화문석'이라는 상호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화문석의 유래에서 따왔다. '고려화문석'이 강화도에 개업한 것은 1980년 10월 20일. 1대 대표인 정택용 대표는 할머니가 짜오셨던 화문석을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에 착안해 대학교 4학년 때 '고려화문석'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개업한다.

"그 당시에는 2일, 7일에 동네에 오일장이 있었던 때였어요. 장날 화문석이 나오는 양은 많은데, 상시 열려 있는 점포가 거의 없었을 때였죠. 하나, 둘 그런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저희도 개업했어요."

이경옥 대표는 "개업하자마자 화문석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라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1980년대 화문석은 사시사철 성수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문석을 엮는 장인도 많았고, 좋은 화문석을 찾는 고객도 많았다. 그래서 전국 도매상은 모두 강화도를 찾아 화문석을 쓸어가곤 했다.

"지금이야 장판 대신 깔 것들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깔만한 것이 많지 않았어요. 게다가 왕골이 소재가 워낙 좋아요. 여름에는 끈적거림이 없이 시원하고, 겨울에는 불을 때놓으면 따뜻함이 오래 가죠. 그러다 보니 원하는 이들이 많아져 화문석을 전문으로 엮는 사람도 많았고, 화문석을 사 가는 이들도 많았어요."

도매상이 아닌 일반 고객도 화문석을 사기 위해 강화도에 오곤 했지만, 큰돈을 주고 화문석을 사기에는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화문석 계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열 명씩 계를 들어서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계 대신 화문석을 사 가곤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10개월 할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쓸 수 있으며, 집 안에 들어오면 바로 눈에 띄는 인테리어 용품이자 실용성도 있으니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 (사진=고려화문석) © 팝콘뉴스


천연재료로 만든 수공예 작품으로 인정받아야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화문석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그사이 우리의 생활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 바닥에 화문석을 깔고 일상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제는 소파에서, 침대에서, 책상에서 입식으로 생활하며 바닥에 화문석을 깔아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화문석을 대체할 물건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계로 만든 카펫이나 러그 등이 저렴한 가격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안고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그렇게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생산량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30대, 40대에 화문석을 잡았던 이들도 이제는 70대가 넘었다. 따라서 지금은 장인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화문석은 100% 수공예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화문석이 생산되는 양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비싼 화문석 값 탓에 화문석 공예로 돈 벌기도 쉽지 않다. 화문석은 6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그 금액대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비싼 편이긴 하다. 하지만 화문석 한 장을 짜기 위해서라면 두 사람이 보름 이상의 시간을 들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

화문석은 카펫이나 러그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기후에 맞는 재질이니 사계절 사용해도 불편함이 없고, 손상이 적다는 장점이 크다. 화학 물질 없이 천연재료로 만든 수공예 작품이라는 인식이 필요할 때다. 그렇다면 좋은 화문석을 고르는 기준이 있을까?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듯이 솜씨도 모두 달라요. 그래서 염색이나 짜임이 고르게 나온 화문석을 골라야 하죠. 그런데 요즘에 나오는 화문석은 적어도 30년 이상 화문석을 짜오신 분들이 짠 화문석이기 때문에 품질이 낮은 화문석은 거의 없어요."

▲ (사진=고려화문석) © 팝콘뉴스


생계로 화문석 공예를 이어가는 이들을 위해

최근에는 아주 오래전 화문석을 산 뒤, 다시 재구매를 위해 방문하는 고객이 종종 '고려화문석'을 찾았다. 아무리 요즘에 나온다는 좋은 러그, 매트를 써봐도 화문석만큼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였다. 80년대에 구매한 뒤로 지금까지도 화문석이 정말 좋다며 자녀나 친구들을 소개해서 함께 오는 단골도, 시장에 놀러 온 김에 들렀다는 단골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경옥 대표는 부모님을 위해 화문석을 사러 온 자녀들을 봤을 때, 마음이 뭉클해진다.

"얼마 전에는 지방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화문석을 사러 온 젊은 부부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화문석이 좋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많이 들었고, 본인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써봤더니 좋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고려화문석'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타격도 적지 않았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가격대가 높은 화문석을 사가는 고객도, 강화도로 여행하러 오는 이들도 줄어들었지만, '고려화문석' 이경옥 대표는 꾸준히 화문석을 사들였다.

"시골 분들은 화문석을 짜서 받은 돈으로 생활비를 하셔야 하는데, 사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최근 더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현재 화문석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앞으로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이경옥 대표의 말은 강화도에서 화문석을 짜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과 우리나라의 수공예 전통을 위한 당부이기도 했다. [팝콘뉴스]

키워드

#백년가게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