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결정하는 종합조사, 5분이면 '끝', 인지·행동 특성 항목은 8개뿐
대책 마련 요구에 '이의신청'하라더니, 정보공개 청구에는 '항소'로 화답
"산정특례 연장 아닌 근본적인 '종합조사' 개선 필요해"

▲ 19일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화센터협의회가 주최한 산정특례 일몰 대책 마련 요구 기자회견에서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중증장애인 자녀 B씨의 어머니 A씨는 며칠 전 자녀가 활동지원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것을 알게 됐다.B씨는 장애인등급제 폐지 전 자폐성 장애 1급을 받은 중증 발달장애인으로, 10년여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 왔다.

B씨가 이미 3년 전에 수급 자격 박탈이 예정된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것도 A씨는 그때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달 94시간의 활동지원을 통해 생계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A씨는 "당장 나와 내 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인데, 내가 문의하기 전까지는 주민센터, 구청 어디에서도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5분쯤 살펴보는) 형편없는 방식으로 갱신조사를 진행하더니 수급 자격마저 박탈한다니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19일 장애인부모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연대한 '산정특례 대상자 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국회 앞에서 열렸다.

이날 현장에 모인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연대자 50여 명은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를 반영하는 종합조사표를 현실화하고 산정특례 일몰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복지부와 기재부 등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 2019년 정부는 기존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면서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를 새롭게 도입했다. 조사표 점수에 따라 활동지원시간(급여)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시 정부는 조사표가 장애인의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도입 시 서비스 대상과 규모가 더 축소될 것이라는 장애계의 우려에 '등급 외', '등급 하락' 판정자에 대해서도 1회 갱신에 한해 기존 수급 자격을 연장하는 '산정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현행은 3년에 한 번씩 장애인이 등급을 갱신하도록 정하고 있다. 산정특례 제도는 43일 후, 오는 7월에 일몰된다.

▲ 19일 기자회견 현장에서 홍성훈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 팝콘뉴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민주당) 최혜영,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조사했을 때, 약 17.4% 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산정특례 대상자인지도 모르고 있다"며 "이 현실에 대해 누구도 책임있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갱신 신청한 당사자 중 7662명이 시간이 감소하거나 수급 탈락했다.

하락자 및 탈락자 감소 시간은 월평균 63시간으로, 200시간대 감소자 17명, 100시간대 감소자 108명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적·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시간 하락과 자격 탈락이 발생했다. 하락 인원은 3865명(전체 하락 인원의 50.4%), 탈락 인원은 292명(전체 탈락 인원의 61.2%)으로 집계됐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3년 전(장애등급제 폐지 전)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평균은 월 107시간이었다. 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합조사표 개편 이후 발달장애인 활동지원은 120시간으로 월 13시간 올랐다"며 "복지부는 하락자를 숨기고 탈락자를 감추면서 발달장애인과 가족에게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수급 탈락에 대한 유일한 대응방법인 '이의신청'조차 당사자가 자신의 지원시간이 깎인 이유를 확인할 수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지난해 100시간 이상 활동지원시간이 감소한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소장은 도봉구청과 공단이 자신의 종합조사표 정보공개 청구를 반려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서 소장의 손을 들었으나 공단과 구청이 항소한 상황이다.

정제형 동천 변호사는 "작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9~2021년 6월까지 (활동지원 삭감 등 관련) 이의신청이 4천 건 들어왔다. 이 중 이의신청이 접수된 경우는 절반 정도고, 그마저도 서면심의로만 진행됐다"며 "개별적 욕구에 맞는 지원하겠다는 종합조사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자신의 어려움을 소명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받은 점수를 당사자에게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 19일 기자회견 현장에 나온 장애인 당사자 등이 종합조사표 점수 개편 등 요구를 담은 팻말을 들고 있다 © 팝콘뉴스

단순히 산정특례 일몰 시한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현재 활동지원시간을 정하는 종합조사는 성인 대상 조사표 기준, 36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사회활동 2문항, 가구환경 5문항, 기능제한 29문항이다. 기능제한 29문항 중 신체 기능 정도(음식물 넘기기, 옮겨앉기 등)를 묻는 내용은 21문항, 인지행동 정도(공격행동, 자해행동 등)를 묻는 것은 8문항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조사표를 운영하는 일본의 경우 동작 관련 문항이 34개, 의사소통이나 행동 관련 문항이 34개로 같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종합조사표로 넘어가면서, (활동지원) 예산이 기재부 재량 예산이 아니라 복지부 의무 예산으로 바뀌었다. 종합 조사에서 결정되는 대로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종합조사표의 현실화가 필요하지만 (개선을 위해) 민간협의체를 만들었는데 한 번도 회의나 반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정부가 목적이 다른 활동 지원인데도 '중복수급'을 이유로 기계적으로 추가 수급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성훈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주민센터에서 직장에 다니면 월 40시간 활동지원이 추가된다는 걸 알았다. 신청했더니 통지서가 왔다 산정특례를 받고 있어서 더 이상의 추가 시간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 산정특례가 묶여있는 당사자들 중 직장에서 퇴사하거나 학교에서 졸업했다는 이유로 40시간이나 10시간씩 시간이 삭감되는 사례도 있다"며 "정부는 갑자기 나타나서 몇 날 몇 시에 죽을 거라는 신의 자리가 아니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면 끌어내려야 하는 자리"라고 짚었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3년 전 정부는 '일단 해보자'고 했다. (제도를 개선하는) 3년 동안은 산정특례로 탈락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3년은 이제 43일 남았고 하락자와 탈락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걸 당사자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3년 동안 복지부가 뭘 준비했는지 답을 들어야겠다"고 말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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