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서 부모, 다시 자식의 마음으로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근로자의 날(5월 1일),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성년의 날(5월 16일), 부부의 날(5월 21일) 등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아서다. 그래서인지 가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우후죽순 올라와 마음속 감정들의 널뛰기가 심한 것 같다.

가족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다. 아니, 아예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날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며 의지하던 부모님과 형제자매와의 시간은 자라면서 친구들과의 만남에 우선순위를 뺏기고, 바쁜 직장 일에 뒷자리로 밀려나게 된다.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국제연합은 1994년을 '세계가정의 해'로 설정하고, 1989년 제44차 국제연합총회에서 매년 5월 15일을 '세계가정의 날'로 정했고, 매년 5월 15일에 국가별로 가정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매년 기념행사와 유공자 포상을 하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을 받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건전한 가정문화 창달을 기원한다.

많은 것을 가족과 함께 상의하며 사는 남편과 나는 이제는 훌쩍 커서 어른이 된 두 아이에게 어린이날에 뭔가를 챙겨주는 것에 관해 상의한 적이 있다. 남편은 '아이들이 컸어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니 어린이날을 챙겨주고 싶다'며 어린이날 당일 어김없이 나이만큼의 용돈을 넣어준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마음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아빠에 대한 사랑이 용돈과 함께 더 커진다'고 농담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념일 챙기는 일에 관심과 열의가 더 높아진 남편과는 달리 나는 나이가 들면서 기념일을 챙기는 일에 관심이 없어졌다. 젊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작은 기념일을 일일이 챙기며 예쁜 손 편지와 작은 선물과 함께 마음을 표현하곤 했었다. 남들은 그런 나를 보며 귀찮지 않으냐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귀찮기는커녕 일상 속 귀한 선물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동력이 사라진 것처럼 기념일 등을 챙기는 일이 귀찮고 챙겨지지 않는다. 마음도 나이가 드는가 보다.

올해는 어버이날이 일요일이라 제날짜에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모신 절에 갔다가 혼자 지내시는 친정아버지께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어버이날 따위는 차라리 모른 척 지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줄곧 지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들도 어버이날에 대해 별 감흥 없이 지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해 남편과 나를 웃게 해주었다. 일요일 아침 풍경을 간단히 소개하면, 두 아이가 쇼핑백을 팔에 걸고 쟁반, 전 뒤집개, 안대를 각자 양손에 나누어 들고는 거실로 나왔다. 나와 남편에게 방석을 깔아주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쇼핑백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쟁반 위에 가득 쏟아놓았다. 안대를 쓰고 뒤집개로 돈을 들어 올려 내 쟁반에 옮겨놓으란다. 옮긴 만큼 다 갖는 거라는 말과 함께.

내가 뒤집개로 돈을 들어 올릴 때마다 아이들은 '오~', '와~', '이야~' 등의 함성을 목청껏 지르며 내가 많은 돈을 옮기는 것처럼 반응했다. 나는 잠깐의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10회의 기회가 끝나고 안대를 벗고 쟁반을 보았더니 만원 지폐 두 장이 달랑 놓여있었다. 남편은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본 뒤라 요령을 터득했는지 많은 지폐를 얻었다. 남편의 성취감에 가득 찬 흥분된 표정은 결혼 생활 동안 몇 번밖에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친정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급격히 살도 많이 빠지고 더 많이 늙으셨다. 영민하고 당신 신조가 분명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식들에게 돌봄을 갈구하는 모습만 보이시며 지내신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뒤로 '그러게 엄마에게 좀 더 잘하시지, 엄마를 고생만 시키더니 결국 홀로 남아 저리 힘들게 사시는구나'라는 원망의 마음이 병립한다.

달력에 있는 5월이라는 숫자와 글자를 보며 '가정의 달'이란 문구를 떠올리다 문득 '부모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부모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물음에 답하려고 생각을 펼치다 보니 참 막연하다. 오지선다형의 답안처럼 정해진 답지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친정아버지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속상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솟아오른다. 그러다 '나는 좋은 부모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에 잠시 생각이 멈춘다.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젓다가 이내 '내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어떤 부모의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랄까?'란 생각으로 내닫는다. 갑자기 마음속이 심하게 요동친다. 지금처럼 '부모의 자리'에 대해 깊게 사유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아마 '자식의 자리'에 대해 또 깊이 사유할 것이다. '가정의 달'의 의미는 각각의 기념일이 그저 일회성 행사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늘 가까이 있고,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우리 가족에 대해, 오늘은 깊은 사유의 시간과 사랑을 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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