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고령사회 진입한 한국,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필요해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세기의 미남 배우로 불리던 프랑스의 알랭 들롱이 아들에게 안락사를 부탁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온종일 우울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늙어감을 탄식하던 그가 노년에 찾아온 질병(뇌졸중)에 시달리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스스로 인위적인 죽음을 선택했을까를 생각하니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 보았던 조각처럼 잘생긴 미남 배우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인상적이고 강렬했었다. 어른이 되면서 가끔 TV나 영화에서 그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안타까움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 스포츠 선수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정으로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더더욱 깊게 느끼게 된다.

알랭 들롱은 1999년에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이중국적 소유자가 되었다. 프랑스는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지만, 현재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기에 안락사 선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알랭 들롱의 스스로 내린 안락사 결정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에 대해, '안락사'에 대해 어두운 마음으로 깊이 생각 중일 것이다.

췌장암으로 고통받던 아내가 안락사를 원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일까?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나이와 시점부터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라며 안락사에 찬성하는 의사를 밝혔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 미리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락사'는 주로 회복 가망이 없는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해 사망하게 하는 의료행위로 '존엄사'라고도 부른다. 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암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사해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혈관에 공기를 주입해 조용히 숨을 거두는 예가 그것이다.

스위스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인 디그니타스(Dignitas) 병원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수면제와 극약을 처방해주고, 이를 먹고 잠이 들면서 생을 마감하게 한다. 또, 호주의 필립 니츠케(Philip Nitschke) 박사는 질소질식 원리를 응용해 산소 농도가 5% 아래로 떨어지면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는 기계인 안락사 캡슐 사르코(SARCO)도 개발했다.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매년 열리는 장례식 박람회에 '안락사 캡슐'이 전시되고 'VR 죽음 체험'까지 이루어져 네티즌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신적 고통'에 따른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네덜란드에서는 2010년 2건으로 시작해 매년 급격히 늘고 있는(2016년 60건, 2017년 83건, 2019년 67건) 안락사의 선택과 결과를 놓고 논쟁이 분분하다. 논쟁의 핵심은 정신적 고통의 무게를 신체적 고통만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인데, 안락사를 옹호하는 이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안락사가 신체적 이유만큼이나 절박하다고 말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1942년부터 안락사를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스위스를 비롯해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모두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등이다. 대다수 국가는 우리나라처럼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만 허용해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가능하다.

그런데 존엄사법이 도입된 후 국내에서도 안락사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과거보다 한층 커지고 있다. 전체 인구 중 14%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나라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에 관한 관심이 커졌고, 안락사를 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무시된 삶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나의 삶을 스스로 끝내기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권리인가?'라는 물음에 명쾌한 대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생명 경시 현상이 일어날 것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자못 크기 때문이다. 잠시 스스로 제 죽음을 선택하는 심정에 생각을 머물러 본다.

나의 마음의 소리는 분명히 말한다. 연명치료는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다만, 지금은 죽음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질병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 내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바랄 뿐이라고.[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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