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_메멘토 모리' 이어령 前 초대 문화부장관 영면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독창성은 남들이 당연시하는 것, 이미 해답이 나온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유행을 따르는 데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독창적 산물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실 독창이라는 말부터가 우리는 물론이고 서양의 경우에서도 19세기까지 나쁜 의미, 특히 문학에서는 전통적인 운이나 양식을 제멋대로 고치는 것을 비난하는 뜻으로 사용해왔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듣고 금세 박수를 치고 투자할 의향을 보인다면 그렇게 독창적인 것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참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비난, 무시, 비웃음을 살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기 때문에 절대적 고독을 넘어설 각오 없이는 독창성을 키워갈 수 없습니다."- 이어령 '젊음의 탄생'(2008) 中

대한민국의 지성인이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어른인 그가 떠났다.

나이는 들었으나 영혼은 늙게 두지 않았던 그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며 수분이 다 빠져나간 마른 이파리 같은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를 존경하고, 그의 발자취를 좇았던 수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졌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평소 가까이 지낸 한 일간지 기자를 불러 몇 가지 말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3월에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혜안을 뛰어넘어 자기 죽음까지 예언한 것을 보면 그가 평소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향년 89세로 타계한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 2017년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었으나 항암 치료나 입원 같은 연명을 위한 일체의 의료행위를 거부하고 평소와 같이 책상 앞에 앉아 집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끝까지 이어령스럽게 살다 떠난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투병 중에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정신력과 열정 덕에 향후 몇 년간은 책을 통해 살아있는 이어령을 만나볼 수 있겠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사망하기 전 무려 30여 권에 달하는 책 출간을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다.

빠르면 이달, 늦으면 4월 중 파람북 출판사에서는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 책이 출간된다.

또 도서출판 열림원에서는 총 20권으로 기획된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를 내달 출간한다.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은 '메멘토 모리'로,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이 생전 성직자 등에게 종교와 신, 죽음에 관해 던진 스물네 가지 질문을 대한민국 대표 지성인인 이어령 교수가 현재에 받아 답한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두 출판사 모두 두 번째 책으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게 됐다.

■ 오늘 오전,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영결식 거행

고 이어령 전 장관의 영결식은 2일 오전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장례를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앞서 고인이 초대 문화부 장관 재임 시절 대한민국 문화정책 기틀을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점을 기리고 더불어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기 위해 총 닷새에 걸쳐 '문체부장'을 거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어령 전 장관은 초대 문화부 장관 재임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을 비롯해 도서관 발전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등 '잘 먹고 잘사는 일'에만 급급했던 대한민국에 문화정책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작가로서의 역량 또한 매우 뛰어났는데, 그만큼 평생에 걸쳐 연구하며 집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영결식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도 고인의 발자취가 결국 그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결식에서는 이어령 전 장관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고인이 생전에 이룬 방대한 업적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는 평소의 당부 등이 흘러나왔다.

이어 고인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 남겼다는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는 말이 영결식 현장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에 수많은 책과 강연으로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도전정신을 심어줬다.

2008년 발간된 '젊음의 탄생'이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담겨 있다.

"노인은 의구심이 많아 머뭇거리고 아이들은 철이 없어 덤빕니다. 진정한 젊은이는 의심하고 행동하는 최초의 펭귄인 거지요.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젊은이란 한 마리가 멋도 모르고 뛰면 덮어놓고 따라 뛰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스프링복이 아닙니다. 젊음은 목숨을 걸고 남보다 앞서 불확실한 모험의 바다로 뛰어드는 최초의 펭귄인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모여드는 벤처리스트의 젊은이들, 그리고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구글의 창시자들도 그리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미국판 싸이월드인 페이스북을 만든 하버드대학생들 그 모두가 20대의 '최초의 펭귄'들이었지요.

자, 준비가 다 되었으면 불확실한 바다로 용감히 뛰어드세요. 젊음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납니다. 젊음은 그렇게 탄생합니다."

한편 고인은 죽음을 직감한 이후 딸 고 이민아 목사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드러냈다고 한다. 임종 하루 전날인 2월 25일에는 도서출판 열림원으로 전화를 걸어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서문을 불러줬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고.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2022년 3월 이어령."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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