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제도, 소상공인 광고 지면 활용 등 이용 '지속가능성' 제고
취약계층 '낙인' 없이 모두에게 열린 '공동체 냉장고' 목표로

▲ 4일 관악구 책N꿈도서관 앞에 설치된 공유냉장고 '그린냉장고' 앞에서 (왼쪽부터) 다인테이블 정다혜 매니저, 전유환 매니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1일 평균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1만 5903톤으로, 1일 생활 쓰레기 발생량의 약 30%를 음식물 쓰레기가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진짜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합심해 만든 예비 사회적 기업, 다인테이블이 운영하는 공유냉장고 '그린냉장고'의 소셜미션은 여기에 있다. 버려지지 않을 것은 버려지지 않는 열린 공유냉장고, "모든 여유식품이 제 자리를 찾는 곳"을 꿈꾼다는 다인테이블의 정다혜 매니저, 전유환 매니저를 4일, 낙성대역 인근에서 만났다. (이하 정다혜 매니저는 '정', 전유환 매니저는 '전')

■ '열린' 냉장고로 '지속가능성'을 그리다

낙성대역 8번 출구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직진하면 원룸, 빌라 등 1인가구 주거지가 모여있는 주거지구가 나타난다. 평범한 길이지만, 조금 찬찬히 살펴보면 문득 조금 독특한 풍경에 다다른다. 관악구 '책N꿈도서관' 앞에 위치한 초록색 '냉장고'가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하고 두 달, 냉장고 안에는 다양한 물품들이 지나쳐갔다. 치킨무, 케첩, 레토르트 밥, 햄 통조림 등 밀봉 식품부터 마스크, 손소독제 등도 때때로 들어온다. 최근 명절을 지나면서부터는 명절 선물 세트 발 참기름, 식용유 등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신선제품보다 즉석식품, 밀봉제품 등 다른 공유냉장고와 조금 '다른' 물품이 더 들어오는 배경에는 '열린 냉장고'라는 그린냉장고의 방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준비과정에서) 다른 지역 공유냉장고로 봉사하거나 자문하러 갔었는데, 어르신들만 문을 열더라고요. 운영자분께서 '어르신들이 가져가야지, 젊은 청년들이 가져가면 되나' 같은 말씀도 하시고요. 공동체가 공유하는 냉장고가 아니고, 취약계층만 가져가는 냉장고로 설정돼 있었어요."

정"(많은 공유냉장고가) 주민센터나 복지관 안에 설치돼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용자가 취약계층이나 복지관 출입하는 어르신 분들로 제한되고, 그러다 보니 '커뮤니티 냉장고'가 아니고, 결국 '공급자'가 따로 필요한 상황이 되더라고요. 기부받거나 공유냉장고 예산을 따로 편성해 사서 채우는 식으로요. '지속이 어렵겠다' 생각했죠."

다인테이블의 그린냉장고는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도서관 앞, 자판기처럼 대로변에 있어 여닫는 데 부담이 없다.이용 방법도 간단하다. 문을 열고 물품을 가져간 후, 안에 비치된 수기장부에 날짜, 가져간 음식 등을 쓰면 된다. 따로 운영 중인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공유 사실을 알리는 사진을 찍어올리는 방법도 있다.

특히, 카카오톡방은 '지속가능한 공급'을 위한 다음 아이디어를 수행하는 데도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린냉장고는 현재 물품을 냉장고에 공유하고 사진을 찍어 오픈 채팅방에 게시하면, 공급자에게 포인트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공급'을 시도 중이다. 냉장고 안에 비치된 저울로 제공한 물품의 무게를 재면, 그 무게의 일정 분량만큼 포인트가 적립된다. 1000점 이상이 되면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오픈부터 현재까지 포인트를 환전한 이용자는 한 명이다. 다만, 3~4000포인트를 모으고 아직 환전 전인 이용객은 몇 명이 더 있다고 전유환 매니저는 언질했다.

정"관리하러 하루 한 번 방문하는데요, 냉장고로 가는 길에 냉장고 열어보고 가시는 분들 뵐 때가 많거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게 가능할까' 의구심이 진짜 많았는데, 이용해주시는 것을 보니 힘이 많이 나더라고요. 채팅방에 나눔현황을 처음으로 보내주신 이용자분도 기억에 남고, 첫 환전 때는 '믿기지 않는' 기분?"

전 "냉장고에 비치해 둔 수기대장(장부)을 보면, 첫 장이 스무 칸 정도거든요. 그런데, 운영 첫날, 가오픈 시작하고다음 날 냉장고에 가보니, 스무 칸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더라고요. 운영하면서도 '관리가 잘 될까', '오픈채팅도 호응해주실까' 걱정이 많았는데, 의구심을 가진 게 부끄러워질 정도로 좋아해 주시니까."

▲ 그린냉장고 안에 비치된 수기 장부. 식재료부터 마스크 등 생활용품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이날 냉장고에는 누군가 두고 간 손소독제 역시 들어있었다 © 팝콘뉴스


■ '같이' 고민하는 '한 팀'

채팅방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인가구가 밀집한 관악구 대로변에 위치해 이용객 다수가 1인가구인 만큼, 카카오톡 방은 '커뮤니티 플랫폼'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전"지금 스무 명 정도 오픈 채팅방에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현황 공유 사진을 제외하면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최근 들어 '옷을 넣어도 되냐', '이건 냉장고를 이용하면 안 될 것 같다' 등의 말을 나누시더라고요. '옷은 아름다운 가게 등 다른 곳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든지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요."

정"새해 인사를 나누시기도 하고, 냉장고를 찍어 올리시면서 '양배추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다' 등 상황도 전해주시고요."

냉장고가 '주민들의 공유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운영 초기 겪는 '시행착오'에 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명예 팀원'들이 늘고 있다는 전언도 더했다.

특히, 최근 두 번 연속 냉장고에 비치된 저울이 사라진 '사건' 이후에 되려 이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는 부연이다.

정 "저울이 사라졌다는 것을 채팅방에 공유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같이 고민을 해주시더라고요. '저울이 없어지지 않도록 포인트 제도를 이렇게 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등 같이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생겼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 다인테이블은 그린냉장고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사진 오른쪽)와 그린냉장고 각 지점의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사진 왼쪽)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채팅방에서는 공유냉장고 이용현황 외에 안부인사나 다른 '나눔' 방식을 공유하는 채팅이 왕왕 올라오고 있다 ©팝콘뉴스

지역사회에도 든든한 '조력자'들이 생겨나고 있다.현재 책N꿈도서관 앞에 설치된 냉장고는 도서관을 운영하는 예전교회의 양해를 받아 설치했다. 전기세 등 운영비 일부를 교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정 "복지관이나 시장 상인 분들부터 음식점, 가게, 주민자치회, 교회, 도서관…. 아마 100군데에는 연락을 돌렸을 거예요. (예전교회나 일점오도씨(1.5℃) 쪽은) 공유냉장고를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원래도 설치를 생각하고 계셨었다고, 되려 고맙다고 말씀해주셔서 얼떨떨하고 감사했죠."

전"환경단체에 연락하다가 '환경단체가 아니어도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겠다'는 생각에 접근을 정말 여러 곳에 많이 했어요. 100곳 정도? (책N꿈도서관은) 한 달 만에 만난 파트너였어요. 파트너를 찾기까지 정말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죠."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광고 패널 도입' 아이디어 역시 취지에 공감하는 소상공인들이 힘을 보태면서 첫발을 떼는 모습이다.

이날 다인테이블은 인근 디저트 매장의 광고 포스터를 처음으로 광고 패널에 붙였다.

전"광고를 모집한 지는 2~3주 정도 됐어요. 아무래도 '광고'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소상공인분들은 거부감을 느끼시기도 하시죠. 그래도 광고로 버는 수익이 냉장고 운영비로 모두 재투자되고, 비용도 싼 편이라 호응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광고를 한다'는 데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취지는 공감을 해주시니까요."

■ "이제 첫발... '집 밖의 우리집 냉장고' 될 때까지, 갑니다"

다인테이블은 곧 복지관에 설치했던 두 번째 그린냉장고를 신림동 제로웨이스트 숍 '일점오도씨(1.5℃)' 앞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일점오도씨와는 새로운 '환전 시스템' 개발 등으로 새로운 조력 방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전"설치 미팅을 하면서포인트를 '지역쿠폰'으로 전환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좋다'는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향후 일 점오도씨와 제휴를 맺어서 마일리지 전환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중입니다. 일점오도씨와 협업하면서 체계를 정돈하고, 이후 소상공인분들로 제휴처를 넓혀볼까 해요."

이번 상반기까지도 일정이 바쁘게 짜여있다. 당장 집중할 목표는 '시스템 안정화'다.

정"(공급)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일단 목표예요. 다른 구까지, 냉장고 수를 늘리고, 지역주민분들께 홍보도 하고, 소상공인분들이 남는 식자재를 넣어주실 수 있도록 설득하려고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채널을 안정화하는 것도 이번 상반기까지의 목표입니다."

다만, '이후'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펼쳐보고 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그린냉장고가 모두에게 "집 밖에 있는 우리집 냉장고"가 될 방법을 다양하게 그려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정 "냉장고 수가 확보되면,장기적으로는 애플리케이션 개발하는 것이 목표예요. 모든 주민이 눈치 볼 것 없이 문을 열고 음식을 가져가고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전 "남는 음식이 있을 때, 필요한 음식이 있을 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음식 나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그린냉장고, 다인테이블의 비전이에요. 그린냉장고가 '세상의 모든 여유식품이 제 가치를 찾도록' 역할 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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