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랜선 모임으로 시작한 임인년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임인년 새해를 맞으며 강함의 상징인 검은 호랑이의 기상을 받아 우리 모두에게 밝은 희망과 강한 힘이 넘쳐나기를 기원했던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월이 훌쩍 지나고 있다. 시간의 빠름을 질책하며 올해가 '검은 호랑이의 해'라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괜스레 희망이 솟구쳤던 지난 연말을 떠올려 본다.

그 옛날 호랑이는 산천을 호령하며 우리를 지켜주던 산신령이라 했던가? 그런 호랑이의 기운이 부디 올해는 우리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황폐하게 만드는 각종 감염병을 말끔히 물리치고, 동공을 확장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사건 사고도 우리 사회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주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소망했었다.

그런데 우리를 지켜주던 호랑이는 아무래도 깊은 동면에서 아직도 깨지 못하는 모양이다. 오늘도 우리는 코로나 1일 확진자 수가 1만 3천 명을 넘어 오미크론 확산이 본격화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며 깊은 불안감에 떨고 있고, 광주 아파트 붕괴로 실종된 지 오늘로 16일이 지나도록 실종자 4명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해야 하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은 아침 10시경 핸드폰을 통해 날아드는 우리 지역의 코로나 감염자 수와 생활 속 방역을 당부하는 문자를 받고, 전날보다 많아진 확진자 수를 확인한 후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며, 외출을 꺼리고 많은 것들을 의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만난 지 꽤 오래된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잘 지내느냐는 말을 살짝 내놓는가 싶더니 코로나 백신 3차 접종은 했냐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백신 접종 때마다 몸에 여러 가지 이상 증세가 나타나 한동안 고생했다는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늘어놓으며 마치 한풀이하듯 불편한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들을 늘어놓았다.

친구의 말 중 '점심시간이 참 괴롭다'라는 말에 가장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도 조심스럽지만 직장 동료 중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때부터 밥은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했다. 직장인들에게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즐거운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인데, 그 좋은 시간이 이젠 곤혹스러운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서 달콤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커피 한 모금과 기분 좋은 수다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거리를 걸었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그런 소확행은 욕심내지 않더라도 점심만이라도 마음 놓고 가고 싶은 음식점에서 좋아하는 직장 동료들과 맘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하고 서글퍼졌다.

직장인들에게는 열심히 오전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맛집을 찾아가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는 시간은 즐거운 기다림이다. 식사를 마친 뒤 근처 카페에 들러 기분을 올려 줄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하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힘찬 멋짐을 '뿜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이전의 그 소소한 행복의 시간은 아직도 우리에게 찾아와주지 않고 있다. 구내식당이 있는 직장은 그나마 조금 안도하는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규모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오늘 점심은 또 어디를 가서 어떻게 먹어야 하나, 간단히 내 자리에서 적당히 때워야 하나'를 걱정하는 나날들에 많이 지쳐가고 있다.

다음 주에 있을 설 명절도 걱정이다. 6명까지만 모임이 가능하다니 명절 가족 모임에 누구는 가고 누구는 가지 못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만약 모였다가 혹시 모를 감염의 두려움이 너무 크다 보니 가족 간 거리두기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마음의 힘과 온기만 잃지 않는다면 여러 방법을 동원해 가족과 친구, 지인들과의 만남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랜선으로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만나 맛난 음식과 차를 먹고 마시며 안부도 묻고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나누는 일명 '쓰담쓰담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작년 한 해는 독서 모임 친구들과 주로 화상으로 만나면서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컵에 차 한 잔을 준비할 것'이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예쁜 컵에 음료나 차를 담아와 마시면서 독서 토론을 했다. 얼굴을 보고 마시는 차와 나누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나름 즐겁고 좋았다.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일부 직장에서는 랜선 회식과 회의를 하는 사례도 많이 늘었고,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연인들은 이미 랜선 데이트를 즐긴 지 오래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만남도 랜선으로 나누며 안부를 전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으니 아쉽더라도 당분간은 랜선 만남으로 마음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은 호랑이가 부디 동면에서 깨어나 호령하여 주기를. 머잖아 지금의 이 혹독한 시간을 추억하듯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래서 마스크 벗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코로나19 이전에 우리가 누렸던 행복한 시간 속으로 회귀하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의 끈도 아직은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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