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동물배우 보호 조항 미비
동물보호단체 등 "재발방지책 마련해야"

▲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연재를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21일 오후 기준 약 5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사고 장면이 달리는 말을 고의로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촬영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청자, 동물보호단체 등에서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가 공개한 촬영현장 영상에 따르면, '태종 이방원' 7화에 방영된 낙마 장면은 제작진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미리 감고 이를 말이 달리는 중간에 당기는 방식으로 촬영됐다.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한국동물보호연합, 포애니멀동물보호감시단, 1500만반려인연대 등 동물보호단체 연합은 여의도 KBS본관입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드라마 촬영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며 동물학대에 해당한다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동물보호단체연합은 "CG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장면"이라며 "KBS는 해당 드라마를 책임지고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현행 동물보호법이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및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에 따른 처벌을 정하고 있는 만큼, 해당 드라마 연출 등에 동물보호법 위반 책임을 묻는다는 설명이다.

이날 해당 단체는 기자회견 후 KBS를 방문해 항의 의사 전달 후, 영등포경찰서에서 고소장을 접수했다.

■ 미국에서는 1940년 금지 '와이어 이용 낙마 촬영'...왜 지금까지?

미국의 경우, 지난 1939년 와이어를 이용한 낙마 촬영이 동물보호단체 '미국인도주의 협회(AHA)' 등의 항의로 금지된 바 있다. 1936년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실제 말을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촬영해 여러 마리의 말이 사망하는 사건 이후 생겨난 조처다.

KBS의 경우,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을 통해 동물이 등장하는 촬영 시 주의사항 등을 정하고 있으나 "촬영을 위해 살아있는 척추동물의 자유의지를 박탈한 채 다른 동물의 먹이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행동을 담기 어려운 경우 먹이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대상동물이 제작팀의 간섭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력한다" 등에 그친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19일 관련 성명을 통해 "국내 드라마에서도 '촬영 과정에서 동물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촬영되었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며 "그러나 공영방송 KBS는 아직도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방송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지한 반성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20년 동물권행동 카라가 영화, 방송, 뉴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권을 조사한 결과, 현장에 동물촬영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는 답변은 34%에 그쳤다.동물출연 대신 CG가 고려됐다는 답변 역시 41%에 불과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19일 관련 게시물을 통해 "(당시 답변을 살펴보면) '촬영 중 놀란 말을 멈추기 하기 위해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거나 '촬영 때문에 처음 마취한 동물에게 후유증이 생겼다' 등이 있었다"며 시청자들의 연대를 요청했다.

한편,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연재 중지 및 관계자 처벌' 청원에는 21일 오후 다섯 시 기준 약 5만여 명이 동의의 뜻을 밝혔다.

지난 17일 KBS시청자권익센터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게시글에의 동의 수는 21일 오후 다섯 시 기준 1만여 명을 넘어섰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에 지난 20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이 보장될 방법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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