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시즌 1' 마무리... 엑시터, 활동가 20여 명 목소리 담아

▲ 지난 26일 '줌'으로 진행된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 출판기념회. 약 16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12일 거리 청소년 구호 버스 '엑시트(EXIT)'가 문을 닫았다. 1년 전 지원이 끊어지면서 사업종료가 결정됐고, 엑시터(엑시트를 이용하는 청소년) 등에 일정을 공유하고 1년여를 더 운영했다.

버스가 제자리를 더 지키는 동안 엑시트 버스에, 온라인에 마련된 게시판에 엑시트에 대한 애정어린 고백이 빼곡히 붙었다.엑시트는 단순히 '밥 있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는 곳'이었고, '쉬는 곳'인 동시에 '대화하는 곳'이었다는 증언이었다.

26일 온라인 플랫폼 '줌'을 통해 엑시트X자립팸 10주년 기념 인터뷰집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이하 비상구에서)' 출판기념회가 진행됐다.

20명이 넘는 엑시터, 활동가 등의 목소리를 인권기록센터 '사이'와 엑시터 '곰곰' 등이 구어체 그대로 옮긴 200여 쪽 분량의 해당 인터뷰집은 엑시트에 전달된 '증언'의 내력을 좀 더 자세히 전하고 있다.

■ "비효율적이고, 비효율을 지켜야 하는 곳"

엑시트 버스에 오르는 청소년들은 필요한 것을 체크하는 쪽지를 건네고 입장한다. 밥먹기, 간식, 휴식, 병원, 법률지원 등에 표시한 쪽지를 내면 '잘 지냈냐', '괜찮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청소년에게 건네는 말은 모두 존댓말이다.

엑시트 버스를 이용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은 따로 없다. 혐오 발언이나 버스를 위험하게 이용하는 등 개선이 필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퇴장'이 아니라 '질문'의 방식을 취했다. 개개인에게 질문하고, 엑시터들과 함께 수다회며 평가회의를 열어 문제를 찾아내기도 했다.

"규칙이 필요한 상황인가? 활동가들 사이에 혼란이 있었죠. 그래서 그날 새벽 2시부터 아침 9시쯤까지 아주 긴 회의를 해서 결론을 냈어요. '우리는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왜 자꾸 (버스에서)뛰어내리는지 청소년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더 많이 소통하자."(86p)

엑시트와 함께 운영하는 여성 청소년 자립팸(장기 쉼터) '이상한나라' 역시 활동가들이 미리 정한 규칙은 없다. 청소년들 사이 갈등은 무제한 '가족회의'를 통해 청소년들끼리 결정한다. 여느 동거인들과 같은 방식이다.

"저희 때는 귀가 시간이 새벽 2시였어요. 통금이 아니라, 우리가 가족이니까 서로 걱정해야 되지 않겠냐는 뜻으로 정한 거예요. '너를 새벽 2시까지 걱정하겠다.'"(69p)

이날 벌점, 제재, 퇴장 혹은 퇴거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는 갈등의 장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적이 '비효율적'이라고 활동가들과 엑시터들은 입을 모았다. 다만, 엑시트의 역할이 그 비효율을 지켜내는 것이라는 데도 의견이 모였다.

"엑시트가 청소년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훨씬 더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국면이 있을 거예요. 그냥 시키고 안 하면 벌점 주면 대화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 비효율성을 지켜내야 하는 거예요."(202p)

■ "혼자는 어렵지만,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효율성'을 지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같은 고민을 먼저 한 다른 조직을 찾아 '깨져'도 보고, 비슷한 고민을 안은 조직을 찾아 머리를 맞댔다.

거리 청소년 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를 시민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옮겨내는 일을 점차 구체화했다.

"이를테면 함께걷는아이들이 들꽃청소년세상과 만나 엑시트가 시동을 걸었고, 자립팸이 문을 열었으며 자몽프로젝트(활동가 네트워크)를 통해 인권교육센터 들과 늘푸른자립학교 등이 연결됐고,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꾸려졌다."(172p)

덕분에 엑시트는 '시즌 1'을 마무리하지만, 엑시트와 따로 또 함께 생기고 성장한 다른 조직들은 현장에 남아 있다.

부천 청소년 일시 쉼터 '별사탕',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자립팸이 함께 참여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등이다.

그래도 엑시트의 자리가 언제나 필요하다고 이날 출판기념회, 사실상의 '송별회'에 모인 엑시터들은 목소리 냈다. 엑시트 활동가들 역시 '엑시트'가 '보통명사'가 되는 그날까지 다음 시즌에 대한 계획을 그칠 수는 없다고.

여전히 거리 청소년들이 문제 앞에서 권리를 요구할 곳이, 함께 고민해줄 곳이 필요한 까닭이다.

"10대였을 때 겪었던 세상은 '네가 혼자 (자립해서)살아남을 수 있겠니'라고 묻는 곳이었다. 지금도 혼자 살아남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삶을 함께 나누고 지지하는 누군가 있다고 확신한다면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혼자는 어렵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지금도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엑시터 곰곰)

한편, '비상구에서'는 엑시트 홈페이지를 통해 pdf 파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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