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발견] 수능 '그대들의 서사는 지금부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들 통해 본 좌절 '극복' 1만 시간의 '열정'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11/16 [17:00]

[고민의 발견] 수능 '그대들의 서사는 지금부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들 통해 본 좌절 '극복' 1만 시간의 '열정'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11/16 [17:00]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코시국'에 그것도 확진자 숫자가 일주일째 2000명을 웃도는 다소 위험한 시기에 치러지는 시험인 지라, 수험생도 그들의 부모도 다소 불안한 마음일 것이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수험생 중에는 "수능만 끝나면", 혹은 "대학에 입학만 하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미뤄두었던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성형수술이든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는 것이든 하나둘 이뤄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대들의 '서사'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최근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라는 TV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 자체도 인기가 있었지만, 출연자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방송 종영 후 리더 계급 댄서들이 찍은 광고만 열 개 이상이라고 한다. 대단한 인기다.

 

각 방송사에서는 너도나도 댄서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TV를 켜면 한두 개 채널에서 댄서들이 패널로 나와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도 댄서들이 과거 출전한 각종 댄스대회 영상을 비롯해 그들이 창작한 안무 등이 봇물 쏟아지듯 생산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시청자가 '스우파'에 출연한 댄서들을 원한다는 증명일 것이다.

 

과거에도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춤꾼'들을 출연시킨 예능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여성 댄서'만을 한 무대에 세웠던 프로는 없었던 것 같다.

 

화면에 비친 댄서들은 화려한 헤어, 메이크업, 의상, 표정만으로도 존재감이 상당했는데, 소위 '센캐(센 캐릭터)'로 보이는 이들을 두고 아이돌 출신인 한 출연자는 "그들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자만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이 있어서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프로의 흥행 요소는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나 싶다. 세 보이는 그들이 무대 밖에서 연습 중 겪는 숱한 좌절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인고의 시간, 그 장면들에 담긴 땀과 눈물 즉 '열정'과 '노력'의 서사 말이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완성된 무대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 보이는 표정을 짓고 강한 메이크업을 해도 그들이 무섭지 않게 느껴졌던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스우파'가 종영 후에도 계속해서 인기몰이할 수 있는 것은 연출자들이 출연자들의 '기량'만을 보여주지 않아서다. 배틀에만 신경 썼더라면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서사를 따라 그들의 SNS를 팔로워까지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스우파'의 흥행이 입증하듯 '과정'은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원래 뻔한 이야기는 '진리'다. 

 

▲ (사진=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 팝콘뉴스


고3 수험생들에게 이번 수학능력시험은 '결과'로 여겨질 것이다. 대학 '당락'이라는 극명한 결괏값이 각자의 손에 들려지다 보니 '결과'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을 먼저 치른 선배 입장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이 시험은 단언컨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절대로 '결과'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도, 대학을 졸업해도 혹은 재수생이 되거나 아예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더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뜻밖의 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부모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길을 선택해 걸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서사'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서사는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이냐고.

 

어떤 길이든 열심히 걸어가면 그것이 곧 서사의 출발이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위해 하루에 9시간 정도는 투자할 수 있는 열정. 잠을 줄일 수 있는 투지. 혹자는 보통 그렇게 1만 시간을 들여야 프로가 된다고 했다. 

 

'스우파' 리더 계급의 댄서 모니카 씨는 하루 9시간씩이나 춤을 췄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남들 쉴 때 피땀 눈물 흘려가며 노력한 결과물이 오늘날 방송 섭외 1순위 그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녀는 원래 다른 일을 하려 했던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다고 우울해할 필요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미처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도 괜찮다. 그때부터 열정을 바치고 시간을 아껴 쓰면 서사는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이것도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그러니 부디 11월 18일 그날 하루만의 결과를 가지고 인생을 '성공', '실패'로 성급히 결론 내지 말기를. 다시 한번 마음을 다해 건투를 빈다. 지난 1년 마스크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느라 정말 애쓰셨다 수험생 여러분들. 

 

 

물감을 섞어서 없던 색을 만들어낼 때 화가는 이 흘러가는 색들의 흔들림을 자신의 상상 쪽으로 인도한다. 그는 물감의 작은 양을 아주 조심스럽게 섞어서 색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다른 색을 끌어낸다. 그의 붓 끝에서 색들은 도라지꽃의 흰색이나 보라색처럼 멀리서 다가와 내려앉는다. 팔레트 위에서 화가의 색이 드러나는 비밀은 저녁 염전에 소금이 내려앉는 모습과 같다. 염부들은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화가의 팔레트 위에서 색들은 섞인 물감의 합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낯설고 새로운 색으로 태어난다. 이때 물감을 섞는 화가의 붓과 나이프는 대장장이로부터 이어받은 것일 테지만 그의 팔레트 위에는 연금술사의 낙원이 펼쳐진다.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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