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분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병리적 모습 진단 가능
남을 따뜻하게 대하면 분노조절장애자들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어

김재용 기자 | 기사입력 2021/10/13 [14:57]

[기자수첩]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분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병리적 모습 진단 가능
남을 따뜻하게 대하면 분노조절장애자들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어

김재용 기자 | 입력 : 2021/10/13 [14:57]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 얼마 전부터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대적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노르아드레날린(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데 주의와 충동성을 제어하는 호르몬이다)이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적 시각에서는 분노조절장애를 그냥 병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이런 생물학적 합리론이 과연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분노조절장애가 병이라는 인식은, 모든 행동을 무조건 기계론적 환원론으로 결정하며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도 호르몬 작용의 이상으로 인식하는 서구적 심리학의 관점일 뿐이다. 인간의 감정 도출을 사회적 호환 작용의 결과로 보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사상의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정의감에 바탕을 둔 분노는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분노를 느낀다.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성격상 좀 더 과하게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 죽음 이후 치하포 주막에서 위장한 일본 육군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보고 분노를 느껴 칼로 살해했다. 그러나 을미사변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관점으로 보면 김구 선생의 행동은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한 '묻지마 살인'인 것이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우리는 영웅으로 알지 '묻지마 살인자'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 일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분노조절장애라는 것을 모두 정신질환으로 여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감이나 윤리적 의식에 바탕을 둔 분노도 많다. 이럴 때는 분노가 사회변혁의 추동적 기능을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모든 분노를 다 나쁜 것으로만 인식하는 우리 현대인의 관점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전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느 서울시향 대표가 직원들에게 과도한 분노를 보이고 모욕했다는 등의 이유로 직원들로부터 고발당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시선은 대표를 분노조절장애 환자로 취급하면서 숱한 비난을 가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일부 직원들과 기존 시향의 여러 가지 부정부패, 부조리들이 밝혀졌다. 결국 대표는 무혐의로 되고 서울시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다시 인식하게 됐다. 사람이 분노를 느끼는 능력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에는 기존의 기득권적 질서와 조직 부조리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초식남, 초식녀들만 남게 되고, 세상의 문제점과 부조리가 해결되지 않는 채 남아 있을 거다. 따라서 분노를 정의감에 기초한 분노인가 아닌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구분한 다음에도 "왜 사람은 분노를 느끼는가?" 하는 원인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남에게 냉정한 사회가 폭력적인 문화를 만든다?

 

물론 모든 분노조절장애자들이 정의감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감과는 상관없는 분노도 많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직원들에게 자주 분노하면서 갑질하는 사람들, 도로 위 난폭 운전자들 등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는 "왜?"라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냥 결과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왜? 이들은 이렇게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분노조절장애의 사회적 해결 방안도 도출되지 않을까.

 

경영학적으로 블랙컨슈머를 오히려 기업의 좋은 고객으로 여기는 기업도 많다. 상당히 역설적이지만 이는 단순한 원리이다. 블랙컨슈머는 순응적인 고객이 문제 삼지 않는 기업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블랙컨슈머를 다루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기업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생생하게 경영 발전을 하도록 자극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발전지향적인 기업체는 블랙컨슈머에게 보상을 하거나, 별도로 연구한다.

 

왜 사람이 분노를 느끼고 갈수록 이런 사람이 많아지는가 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분노조절장애자들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분노조절장애자들이 많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병리를 진단해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고 그렇다면 그 치유책도 쉽게 강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종종 도로 위 난폭 운전자들을 접한다. 갈수록 많아진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심한 분노를 느끼지만, "왜?"라는 질문으로 그 원인을 봐야 한다. 사회심리학의 한국적인 풍토를 연구하는 전남대 심리학과의 한규석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난폭 운전자가 많은 원인을 '남에게 사과를 잘 안하는 현대 한국인의 성향'으로 봤다. 한국인은 자기의 이해관계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과도하게 복종하거나 과도하게 감정을 부여하는 면이 있지만 이해관계 밖에 있는 '남'에게는 정서적으로 냉정한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자주 말하는 소셜 에티켓 문화도 매우 약하다. 운전자들끼리는 그야말로 잠깐 스쳐 가는 '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운전자에게 정서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이렇게 형성된 도로 위 문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자극해 분노를 유발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거다. 

 

실제로 한규석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운전하면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감정 표현을 자주 할 때 난폭운전 발생 비율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이것이 도로 위 난폭운전 문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분노조절장애자가 된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잘 없을 것이다. 분노조절장애자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타인에게 냉정하고 때로는 가혹해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사상가 기 소르망은 "한국 사회가 부의 축적에만 몰입하면서 인정사정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규정했다. 분노조절장애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기 소르망의 진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이 병을 고치는 길은 결국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남 탓하지 말고 내 탓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 

 

참고도서

『사회심리학의 이해』 한규석, 학지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