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그리Go] "한국 단청 문양은 철학의 빛" 노재학 사진작가

높고, 어두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 무한의 세계

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1/09/30 [15:49]

[문화유산, 그리Go] "한국 단청 문양은 철학의 빛" 노재학 사진작가

높고, 어두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 무한의 세계

정영주 기자 | 입력 : 2021/09/30 [15:49]

▲ 노재학 사진작가(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팝콘뉴스=정영주 기자) *[문화유산, 그리Go]는 우리 문화유산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발굴하여 현재 우리 삶에 들여오는 과정을 그려보려 합니다. 일상의 틈새 낯설게 보기를 통해 문화유산의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노재학 사진작가의 이력은 다채롭다. 수학 전공자였던 작가는 사진, 건축, 미술사학, 불교철학을 독학했다. 전통 건축물이 좋아 자주 발걸음하며 카메라에 담다 보니 그 세계가 궁금했다. 작가는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절실하고 끈기 있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근 20년간 전통 단청이 현존하는 건축물을 답사하며, 기록물을 집대성한 작업물로 '한국의 단청-화엄의 꽃'을 발간했다. 사진작가로서 전통 단청 문양을 담게 된 이유를 소개해 준다면.

 

수학은 추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무한의 세계는 추상적이며 볼 수 없다. 그런데 규칙성과 대칭성을 찾으면 무한의 수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 2, 3, 4 다음은 규칙성으로 5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무한의 세계이자 본질, 근원의 세계가 궁금했다. 

 

우연히 근정전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완벽하게 좌우 대칭된, 수학에서 말하는 '프랙털(fractal) 도형'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부분이 전체에, 전체가 한 부분에 있고, 크기는 달라도 반복되는, 자기 유사의 반복 세계였다. 프랙털의 세계를, 우연히 올려다본 전통 건축물의 천장에서 발견한 순간이었다. 자료를 찾아도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의구심을 가진 것은.

 

-전국 109곳의 사찰의 전통 단청 문양을 집대성했다. 단청에 대한 종합적이며 통시적 조사 활동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엔 몰랐다. 왜 전통 문양 단청에 대한 자료와 연구가 없었는지. 작업을 하다 보니 체감했다. 작업 과정은 고단했다. 실내에서 사람들이 예를 드리는 곳이기에 때맞춰 법당 내부에서 촬영하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에 핀잔이 섞였다. 접근성도 어려웠다. 또한 실내 천장을 올려다보며 찍는 과정도 어려운데, 문양이 있는 천장에는 빛도 닿지 않아 사진을 찍으면 흐리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복해서 계속 사찰에 갔다. 통도사를 몇 번이나 갔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스님께서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아실 것"이라고 말이다.      

 

-책 서두에 "한국 단청은 철학의 빛"에 이어 "한 송이 꽃에 한 시대의 철학과 종교, 문화를 담는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붉을 단(丹), 푸를 청(靑)이 '단청'의 의미다. 소나무를 보면 가지는 붉은 색이요, 잎은 푸르다. 상록하단이다. 또한 단청의 색이 오방색(五方色), 다섯 방위를 나타내는 색이다. 청-적-황-백-흑의 순으로 동-남-중앙-서-북은 음양오행 순이다. 이 방위에는 인-의-예-지-신 유교 철학까지 녹아 있다. 우주와 세계를 해석한 원리인 것이다. 이러니 단청에는 우주철학을 담고 있다. 단청의 문양과 색에는 태극, 유교, 도교가, 통일된 모양에는 음양오행을 담고 있다. 한 송이 꽃은 우리의 언어로도 형용하지 못하는 한계 너머 표현이 가능하다. 불교 경전 이름과 내용에도 등장하는 꽃은 추상적이면서도 진리를 대변하는 상징물인 것. 그 꽃을 문양으로 단청에 장엄(莊嚴)한 것이다. 그러니 한 송이 꽃에 철학과 문화 종교를 담는다 할 수 있다.

 

▲ 한국의 단청 문양 통도사, 불국사, 봉정사, 천은사, 남장사, 대승사(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통도사 단청 장엄'을 책에서 따로 한 장으로 설명했다. 비중을 두어 설명한 이유는.

 

어떤 곳은 사찰 한 곳에 1개의 단청 문양이 있고, 어느 곳에는 12개의 문양이 있는 곳이 있다. 후자의 곳이 통도사다. 16세기에서 20세기인 근현대 350여 년간이다. 시대의 편린이 스펙트럼처럼 있다. 단청 문양이 통일성과 보편성, 연속성, 지속성 관점으로 한 번에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곳이다. 

 

▲ 통도사 단청 문양(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전통 사찰의 전통 문양을 '보고(寶庫)'라고 표현했다. 중복되는 단청 문양이 단 하나도 없고 개성 있는 문양으로 법당을 장엄해서 경이롭다고 했다.

 

단청 조형을 할 때 문법구조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한글이 자음, 모음과 초성, 중성, 종성으로 문장을 구성하며 만들어 내듯이 단청에도 보편적인 원리와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연꽃은 넝쿨이 없다. 그런데 연꽃과 넝쿨이 조합되어 숭고하고 이상화된 꽃(보상화(寶祥華), 넝쿨연화문)이 탄생했다. 연꽃은 모란과 배치한다. 다양한 문양은 어떤 때는 자연 그대로 사실적으로, 어떤 때는 초현실주의처럼 다양한 발상과 패턴이 나온다. 문양의 저수지처럼 무궁하다.

 

-작가님의 경력도 다채롭다. 인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단청 문양에 유불선과 음양오행 철학까지 조화롭게 담겼다. 그 세계를 더욱 깊이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인문학 덕분. 특히 울진 불영사의 단청에는 우주 천문의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 놀라웠다.

 

▲ 울진 불영사의 단청(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앞으로의 작업 활동 계획을 소개해 준다면.

 

한국의 전통 단청 문양은 어느 정도 작업이 됐다. 앞으로 남북한의 평화 기류가 조성되고 교류가 활발해지는 때가 온다면, 북한의 전통 단청 문양도 담아보고 싶다. 40여 곳이 있다고 안다. 남북한의 전통 단청 문양을 집대성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또한 발간계획 6권 중 이제 꽃을 소재로 1권을 발간했다. 앞으로 자료 수집과 체계적 분류 작업을 통해 성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 전통의 원형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콘텐츠 생산자로서 우리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와 바람은.

 

전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물론 작업 과정 동안 종단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하다 보니 20여 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청 문양의 함축적이고 깊고 경이로운 철학과 세계에 매료됐다. 이점 때문에, 알게 되면 누구나 전통 단청 문양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공감하고 매료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오를 사찰을 관계자와 함께한 적이 있었다. 사찰의 가람배치와 건축물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고, 내부를 슬쩍(?) 둘러봤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이후 확인한 그 사찰의 설명글에서 내부 장엄된 단청에 관한 설명은 전체에서 고작 3줄 정도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벽화를 제외하고, 시스티나 성당을 말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다. 실내에 있는 우리 전통 문양 단청을 말하지 않고 건축물을 설명하는 것은 위 예와 같다. 여전히(?) 그 가치를 모른다는 점이 안타깝다. 

 

세계적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한국 궁궐 단청이 잠시 카메라에 담겼다. 이후 해외 여행자 및 팬들은 궁궐을 둘러보며 단청에 대해 큰 호기심과 호응을 보였다고 한다. 세계인이 매료될 수 있는 우리의 전통 단청 문양이라 자신한다. 또한 통도사에서 전통 문양을 응용한 우산을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패션 등 모든 산업에 부가가치가 클 것이다. 시각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재해석해볼 만한 가치가 크다. 

 

정부 문화재청과 조계종단에서도 전통 문양 단청에 관한 자료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또한 당부할 점은 불교의 종교적 관점보다 전통 문화유산의 관점으로 전통 문양 단청을 봐주길 바란다.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가치를 놓쳐버린다. 

 

▲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 문양(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전통 문화유산의 범주에서 다각도로 작품활동을 했다. 소개해 준다면.

 

사진의 주제는 전통 건축물, 고목, 세계문화유산이다. 궁궐과 사찰에 가면 만나게 되는 건 한 그루 나무다. 많은 영감을 준다. 또한 경주지역 고분 사진은 문화재청 헤리티지 영문판에서 원고 의뢰를 받아 진행했다. 꽃살문, 궁궐 굴뚝, 천연기념물 나무, 그리고 경주 고분을 담았다. 경주는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인 곳. 아늑한 삶 속에 죽음이 공존하는 묘미의 도시다. 

 

▲ 경주 대릉원 설경(사진=노재학 사진작가)  © 팝콘뉴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어제의 빛을 오늘에 담아 내일에 전한다. 이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전승에 해당하는 의미일 것이다. 전통의 빛, 그 가치를 오늘에 담지 못하는 것이 많다. 또한 오늘날의 감각, 철학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에는 이 전통 문양을 어떻게 해석하고 담아내어 후세에 전할 것인가.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는 작품활동의 원동력이었던 의구심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전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현재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다.

 

또한 노재학 작가는 홀로 체득한 경험과 가치를 나누는 작업을 다방면으로 지속하고 있다. 부산 범어사에서 전통 단청 문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