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대한민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배틀로얄'

화제 모으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 나타내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불가능한 희망'을 '가능한 희망'으로 착각하는 도박중독에 빠진 걸까?

김재용 기자 | 기사입력 2021/09/30 [09:00]

[기자수첩]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대한민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배틀로얄'

화제 모으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 나타내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불가능한 희망'을 '가능한 희망'으로 착각하는 도박중독에 빠진 걸까?

김재용 기자 | 입력 : 2021/09/30 [09:00]

▲ '오징어 게임' 스틸(사진=넷플릭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 일명 '배틀로얄', 게임에서 지면(또는 이기기 위해) 게임 울타리의 이탈이 아니라 바로 '죽여'버리는 소재를 영화나 드라마로 삼은 것은 1990년대 일본이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빗대 일본을 비인간적인 경쟁 사회, 인간의 생명까지 도구로 삼는 냉정한 사회라고 조소하기도 했다. '역시 우리는 일본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문명국가야'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근데 바로 그 킬러 게임이 20여 년 후에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줄이야. 그것도 넷플릭스 시청률 세계 1위를 하면서 말이다. 역시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인간적인 문명국가가 아니라 그동안 일본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씁쓸히 자조(自嘲)하면서 말이다.

 

'오징어 게임' 시청률 1위가 나타내는 우리의 우울한 사회상

 

'오징어 게임'이 재밌게 느껴진 건 우리네가 처한 현실적 삶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일 거다. 물론 '오징어 게임'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프랑스, 독일, 일본 등 76개 국가에서 1위, 전 세계 시청률 1등을 하고 있으니 비단 한국 사회의 비인간적인 경쟁 풍토만을 자조할 일은 아닌 듯싶다. 물론 한국 사회가 예전의 인간적인 풍토를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조직안에서 우리는 목숨 걸고 경쟁해야 하고 지면 도태된다. 도태되면 곧 경제적 궁핍으로 이어진다. 돈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점이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을 것일 테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아무리 재밌고 넷플릭스 1위를 했어도 도박은 도박이다. 그것도 자기의 목숨을 거는 도박.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을 창시해 현대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준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무의식적 충동에 지배당하는 결정론적인 존재로 보았다. 즉 인간은 이미 불합리성으로 결정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 의식이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능적 충동인 이드(id)가 합리적 의식과 지속해서 싸우면서 승리를 거두는 존재라는 거다. 그것도 자주.

 

몬테카를로의 오류(Gambler's fallacy)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확률상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데서 비롯된 말이다. 1913년 8월 모나코에 있는 호화로운 카지노 룰렛 게임에서 구슬이 27번 연거푸 같은 검은색으로 떨어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검은색에 건 도박사들은 거부가 됐지만, 반대로 걸었던 사람들은 파산했다. 이것을 도박사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합리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일임에도 자기에게는 그 일이 발생할 거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1913년에 모나코에서 발생한 이 일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몬테카를로의 기적(?)이 자기에게는 발생할 거라고 믿으면서 계속 돈을 건다. 그리고 돈을 잃는다.

 

그런데 웃긴 건 우리는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 주식이 왜 오르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그냥 무당 굿하듯이 내일 오를 것이라고 믿으면서 주식 투자를 한다. 당첨 확률이 희박함에도 복권을 계속 사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몬테카를로의 오류와 비슷한 용어로 '통제의 환상'이라는 사회학적 용어가 있다. 노름은 전적으로 '운'임에도 노름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순전히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임에도 상대방의 인상이나 태도에 따라서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통제의 환상이 잘 드러난다. 456명 중 승리자는 단 한 명이다. 참가자들은 자기가 그 한 명이 될 거라고 믿는다. 게임 상대방의 완력이나 지혜를 은근슬쩍 가늠해 보면서 자신의 승리를 자신한다. 456명 중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가능한 희망'을 자기가 그 한 명이 될 거라는 '긍정적 희망'으로 착각한다. 물론 드라마상에서 개연성 확보를 위해 게임 참가자들은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도 비참한 빚의 늪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구성했지만 그럼에도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한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다. 충격적임에도 사람들이 뭔가 은근히 공감하는 것은 그게 우리네의 모습이기 때문일 거다.

 

목숨으로 장난치는 도박 공화국을 상상한다면?

 

우리나라는 도박으로 인한 가족 파탄, 자살, 이혼 등 가족 문제가 심각한 사회다. 문제는 가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도 심각하다. 도박은 살인, 절도, 사기 등과 같은 범죄의 원인이나 동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도박 중독자의 50% 정도가 사기, 절도, 횡령, 타인 카드 무단사용, 카드깡 등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사례를 살펴보면 도박 빚을 갚으려 부모에게 강도질하거나 도박 비용을 안 준다고 아내를 살해한 사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자살한 예 등도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심각한 도박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 방법들이 나와 있기는 하다. 18세기 발생한 고전학파의 범죄이론을 바탕으로 처벌의 억제 효과에 초점을 두고 범죄 예방을 시도하려는 억제이론을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는 범죄행위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처벌을 통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중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재범방지와 억제에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해결 방법이야 어떠하든 도박중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체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함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도박중독에 관한 전문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가 제공되어 있지 않으며, 도박 중독자에 대한 사회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의 단계별 구축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실제로 오직 한 사람만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죽는 도박 공화국을 상상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도박중독의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정말 실제로 이런 게임이 현실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거다. 아니 벌써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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