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고양이카페 '쓰담쓰담' 11마리 고양이와 4년 차 집사 김기용 대표의 '묘연'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강릉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고양이 카페 '쓰담쓰담'. 유기 파양 등 사연을 가진 열 마리 고양이가 김기용 대표와 함께 지내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아 진짜 행복한 두 시간이었다."

강릉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고양이카페 '쓰담쓰담'을 막 나서는 한 여학생이 친구에게 (어쩌면 자신에게) 한 말이다.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연신 미소 짓는 얼굴을 보니 정말 행복했던 모양이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강릉 고양이카페 '쓰담쓰담'은 지난해 9월 오픈한, 이제 갓 1년 차 치고는 꽤 유명한 곳이다. 오락실, 노래방, 만화방 같은 곳들밖에는 놀 곳이 없다시피 한 이 지역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아지트로, 고양이 좋아하는 온·오프라인 집사들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최애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틀 삼일 맑은 공기를 쐰 여행객들은 막 정이 들어가는 동네를 떠나면서 다음번을 기약하는 '강릉 여행의 마지막 핫스폿'으로 입소문 난 곳이기도 하다.

유동 인구 많고 데이트하기 좋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다는 '고양이 카페', 서울의 한 대학 주변에 처음 등장했던 고양이 카페는 그야말로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릴 정도로 인기 많은 곳이었다. 예쁜 고양이들을 만질 수 있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어 특히 여성들의 마음을 많이 사로잡았다. 이후 대한민국에는 고양이 카페 붐이 일었다. '고양이 카페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고양이 카페 인기는 엄청났다.

강릉 고양이카페 쓰담쓰담에도 예쁘고 귀티 나는 고양이가 열 마리나 있다. 사람에게 잘 다가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개냥이'로 불리는 넉살 좋은 고양이들은 이곳의 영업 담당이다. 한두 녀석은 좋아하는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편안한 자세로 숙면에 빠져있다. 아무리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어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수컷 두 마리는 천장에 달린 캣워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기 싸움으로 손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시선을 조금 돌리면 대장 고양이가 언제 싸움에 개입할지 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의 고양이 카페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쓰담쓰담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기존의 고양이 카페와는 조금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쓰담쓰담 고양이들은 모두 파양이나 유기 등으로 원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길에서 떠돌았거나, 비좁은 공간에서 방치되다시피 한 생명도 있다. '하니'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는 앞다리 한쪽이 없다. 그런데도 그늘진 모습 하나 없이 까불거린다. 열 마리 모두 집사의 극진한 수발을 받으며 호의호식한 표정 부자들이다. 손님들이 돌아가며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집에 있는 고양이까지 모두 열한 마리의 집사인 쓰담쓰담 대표 김기용 씨는 4년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의 '고'자도 모르는 '고.알.못(고양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었다. 쓰담쓰담을 오픈하기 전에는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판매하는 일을 전문으로 해왔다. 지금도 일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 카페 집사 역할을 더 많이 한다.

▲ 쓰담쓰담 고양이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정말 우연이었다.

4년 전인 2018년 주차장 화단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냥줍' 했을 뿐이다. '레오'라는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일터에 데리고 다니며 함께 생활했다. 정말 그뿐이었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선지 레오가 외로워 보였다. 친구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연 있는 하얀 고양이 '겨울이'를 양구까지 가 데려왔다. 지금 김기용 대표의 집과 카페 쓰담쓰담에 있는 고양이 열한 마리 모두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식구가 됐다.

고양이가 잔뜩 생기면서 김 대표의 일도, 삶도 180도 달라졌다.

원래는 '사람'을 생각했다.

주로 외국인 고객에게 스마트폰을 개통해주는 일을 하던 김 대표는 그들이 한국에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며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그들에게 잠깐이지만 매장에 머무르는 동안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조금은 과하다 싶을 만큼의 넓은 공간을 얻어 테이블과 의자, 음료를 가져다 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하늘길과 공항이 막혔고, 김 씨의 주요 고객인 외국인들의 발길도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매장에는 김 대표와 고양이 몇 마리만이 남았다. 간혹 방문하는 한국 손님이나 이웃의 상인들, 친구들이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를 물을 때면 농담처럼 "고양이 카페나 해야지" 했던 말은 그렇게 '실화'가 됐다.

김 대표는 고양이 카페를 준비하며 조금 더 많은 고양이를 품었다. 가족 누군가의 알레르기 때문에 파양 위기에 놓인 고양이와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갔다는 고양이들이 그렇게 쓰담쓰담 식구가 됐다. 서울에서, 충주에서, 일산에서 먼 길을 달리고 달려 그들이 왔다.

고양이 집사들은 안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緣)이 있다. 그 인연이 하도 묘해 사람들은 그것을 '묘연(猫緣)' 이라고 칭한다. (보통 묘연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비한 기운이 있어 세상 모든 고양이에게 '애정'을 쏟게 만든다는 정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김기용 대표 아니 김 집사는 그렇게 레오, 겨울이, 밤이, 미루, 달콩이, 미호, 고순이, 하니, 미냥, 보리, 예티의 '프로 수발러' 즉 전문(?) 집사가 됐다. 집사가 된 후부터는 새로 출시되는 휴대폰만큼이나 고양이 쪽 이슈에 관심을 쏟게 됐다. 차 안에는 어느새 길고양이들을 위한 사료와 물그릇들이 쓰임을 기다리며 쌓여있다.

또 집사가 되고부터는 전에 없던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는 김 대표의 눈에 희한할 만큼 고양이 사체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차에 치였거나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죽음에 이른 고양이들 몇이 짧은 묘연으로 김 대표의 손에 수습돼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 음료 대신 기부를 선택하면 같은 강릉시내 유기묘 카페 '바다를 사랑한 용감한 고양이네'로 기부금이 전달된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같은 강릉에 위치한 유기묘 고양이 카페 '바다를 사랑한 용감한 고양이네(이하 용감이네)'도 김 대표가 고알못에서 '고.잘.알(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의 줄임말)'이 돼가는 과정에서 인연이 됐다. 45마리 고양이를 돌보는 용감이네 카페 대표와는 서로 안부를 물을 만큼 신뢰하는 사이다. 용감이네 카페 집사가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 시킨 뒤 원래 있던 밥자리로 돌려보냈던 아이 고순이는 지금 쓰담쓰담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1:1로 시작한 묘연은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냈다.

코로나19로 카페 운영이 녹록지 않은 중에도 쓰담쓰담에서는 손님들이 음료 대신 기부한 돈 3000원을 용감이네로 전달하고 있다. 쓰담쓰담 벽 한쪽에는 그간 유기묘들을 위해 음료를 포기한 손님들의 이름이 날짜와 함께 고양이 모양 나무 팻말에 적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 또한 묘연이 아닐 수 없다.

쓰담쓰담은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도 생각하는 공간이 됐다. 그래서 손님이지만 따라야 할 규칙이 이 카페에는 몇 가지가 있다. 자는 고양이는 만지지 않을 것, 고양이들에게 자극이 되는 '궁디팡팡'은 하지 말 것 등이다. 싫다는 고양이를 붙들어 억지로 사진을 찍는 일도 이곳에선 '반칙'이다. 쓰담쓰담은 이런 방식으로 '동물 존중'을 사람들에게 알려가고 있다.

▲ 쓰담쓰담 전경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고양이 털 알레르기로 매일 약을 먹는다는 김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고양이 좋아하시는 분들은 고양이들의 예쁜 모습만 보시니까 '사장님은 좋으시겠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일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매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고강도의 청소, 고양이들 관리, 그리고 약을 먹어도 그때뿐인 알레르기는 이 일을 하는 동안은 평생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열한 마리 고양이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아픈 길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거두고 싶다가도 구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자제할 때가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각오를 매일 한다."

김 집사는 매일 아침 딸아이를 등교 시키고 카페에 나와 고양이들의 밤사이 안부를 살핀 뒤 청소기를 손에 쥔다. 그가 곳곳에 직접 설치한 캣타워며 캣워크, 스크래처에 밥그릇 물그릇까지 손님들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들은 다 집사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거리'다.

그렇지만 김기용 대표는 이 일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들이 있는 삶은 그렇지 않았던 종전의 삶과는 확실히 다르므로, 그리고 그들은 김 대표에게 '쓰담쓰담' 위로가 되는 존재이므로.

김기용 대표는 길 아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깨끗한 물을 줄 때나 사체를 수습할 때, 마음으로 혹은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있다.

"(다음 세상에는) 꼭 행복해라."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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