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오랜 기간 이어온 책방

수백 가지 수험서의 천국, 천일서점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9/28 [15:39]

[백년가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오랜 기간 이어온 책방

수백 가지 수험서의 천국, 천일서점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9/28 [15:39]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천일서점 심종원 대표 부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1967년에 문을 연 천일서점은 70년대 최고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참고서 제작 사업에 손을 댔다가 대형 출판사의 유입에 따라 참고서 사업을 접으며 큰 위기를 겪었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던 천일서점을 다시 살려낸 것은 수험서였다. 천일서점이 다시 일어서면서 동해시 최초, 유일한 서점이었던 천일서점은 지금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돈을 쓸어 담았던 동해 최초, 유일한 서점


 

1967년, 삼척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교사 부부는 젊은 나이에 교직을 그만두고는 서점을 차렸다. 영동 지방에 서점이 없던 시대였다. 문구점에서 파는 단어장과 손바닥만 한 전과가 고작이던 시기, 교사 부부는 교재를 사러 갈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점을 차린 것이었다. 부부의 예상대로 책은 매대에 놓자마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새로 생겨난 서점의 인기는 단순히 동해시에 그치지 않고, 강릉, 정선, 태백까지 뻗쳐 나갔고, 태백 탄광촌에서 일하는 광부들마저도 천일서점에서 전집을 사서 거실 한 가운데 꽂아놓곤 했다.

 

"1971년도부터 1980년까지 10년간 장사가 너무 잘 됐어요. 우리 저희 형제가 3명인데, 부모님이 서점 문을 닫고 들어오시면은 셋이 모두 자는 척을 했어요. 깨어 있으면 돈을 세야 하거든요. 자루에 100원, 500원, 1000원짜리를 다 한꺼번에 가져오시는데, 천 원짜리면 천 원짜리만, 500원이면 500원짜리만 모아서 다발로 묶어야 했어요."

 

부모님은 잠든 아이들을 보고 밤늦게까지 돈을 세어 두고는 잠자리에 드시곤 했다. 1970년대 초 집에 자가용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 당시에는 자가용을 사면, 무조건 기사도 채용해야만 했다. 동해시에 자가용이 두 대밖에 없을 때였는데, 그중 한 대가 바로 천일서점 심재교 대표의 차였다고 한다. 

 

▲ 천일서점 옛 모습(사진=천일서점)  © 팝콘뉴스

 


참고서가 아닌 수험서로 가득 채운 매대 


 

이후 천일서점은 부부의 전직을 활용해 참고서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참 잘 되던 천일서점은 대형 출판사의 참고서 제작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내리막을 겪어야 했다. 그 이후 천일서점은 도매에서 소매 위주로 판매하게 되었고, 천일서점에서 근무하던 50여 명의 직원은 각각 흩어져 서점을 냈다. 그런데 이 새로 생겨난 서점은 천일서점에게 책을 판매하려 하지 않았다. 천일서점 직원이었다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점마다 책에 표시해두었으니 천일서점에 책을 판매한 서점을 찾아내 불이익을 주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참고서는 아예 판매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일반인들이 보는 서적은 거의 판매되지 않던 시기였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일반인들이 책을 보나요? 애들도 심지어 책을 잘 안 읽는데요. 게다가 예전에는 책을 읽고 감상평을 묻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책에서 문제를 내려고 할 뿐이잖아요. 그러니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있었던 문학소녀, 문학 소년은 다 없어졌죠."

 

초등학교, 중학교 때 동해시에서 제일가던 금수저였던 심종원 대표는 고등학교 때에는 흙수저가 되었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 군대를 다녀왔더니 서점은 더욱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있었다. 

 

"군대 제대했을 때가 28살이었는데, 어머니가 때 지난 옛날 책을 팔고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손님이 있을 리가 없죠."

 

대학교 졸업 후 심종원 대표가 승계하면서 새 책을 들여왔다. 바로 공무원 수험도서, 컴퓨터 자격시험 도서 등 각종 자격시험 수험서였다. 당시 수험서에 대해서는 수요가 적은 만큼 다른 서점에서도 취급하지 않는다는 빈틈을 노린 전략이었다.

 

"지금이야 공무원 시험이 굉장히 어려워졌지만, 그때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단 한 권만 보면 됐던 시절이었어요."

 

초창기 자격시험 수험서가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수험서 전문 서점으로서의 희소성도 높았다. 그래서 공무원에 합격한 이들, 전기기사 자격증을 딴 이들은 '천일서점에 가면 합격한다'며 주변에 입소문을 냈고, 천일서점은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가 회복을 시작했다.

 

▲ 천일서점 풍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든든한 조언자


 

천일서점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낄 때가 천일서점에서 책을 사던 중학생이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와 함께 책을 찾는 모습이나 어릴 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학생이 늠름한 청년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을 때이다.

 

"예전에 개척교회 목사님이 아이의 손을 붙잡고 왔어요. 그러더니 '정말 미안하지만, 가진 돈이 없는데, 얘가 여기서 책을 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아이가 매일같이 우리 서점에 왔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책들만 골라서 봤어요. 하루는 만화책, 또 하루는 위인전만 봐요. 구석에서 책을 보는데, 혼자서 책을 보다 울고 웃고 했죠. 그러다 크면서 서점에 안 왔었죠.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친구가 서울대 ROTC가 되어서 우리 서점에 들렀더라고요.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냐고 묻는데, 당연히 몰랐죠. 그랬더니 목사님 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서점을 찾아온 이유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그 어린 시절, 여기서 읽었던 책 덕분이라며 서점에서 교과에 도움 되는 책만 고르는 아주머니와 아이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수영해야 할 때, 급한 사람은 물에 뛰어들어 바로 수영하지만, 먼바다를 수영해야 할 때는 준비운동을 해야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아이가 문제집을 보면, 지금은 문제를 풀지 몰라도 나중에 스스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지금 천일서점은 백년가게가 되면서 동해시에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켜온 가게가 흔치 않을뿐더러 서점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낀 이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

 

게다가 컴퓨터 관련 서적, 참고서, 일반 도서 등 다양한 책을 가지고 있고, 특히 수험서 종류는 굉장히 많이 갖춰져 있다.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수험서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으니 수험생들 역시 이곳을 자주 찾는다.

 

"우리 서점에 와서 좋은 수험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세요. 저보다는 아내가 수험서 추천을 잘하죠. 여기서 계속해서 수험서를 판매하다 보니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어느 선생님의 책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니까요. 또 과외 선생님들이 와서 좋은 문제집을 물어보기도 해요. 심지어는 학부모님들은 과외를 구하려고 하는데, 좋은 사람이 없냐고도 물으시고요."

 

말하자면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시험을 준비하는 학부모들, 공부를 가르치는 과외교사까지도 모이는 곳이 바로 천일서점이다. 오랫동안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든든한 조언자가 돼주었던 천일서점은 아직도 '최고의 스승은 책에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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