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위기자들은 심리적으로 나약한 것이 아닌 인지 경직성 상태에 놓여있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거나 '스스로 잘 극복하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어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자살 피해자의 유족이나 지인 등이 겪는 심리적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상담, 자조모임 지원, '자살유족의 날' 지정 등이 국내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경기도의회 조성환 의원(민주·파주1)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기도 자살유족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마련, 입법예고했다. 경기도 내 자살 사망률은 25.4명(통계청 2019년 기준)이고 성별로는 남성 34.2명, 여성 16.4명으로 조사됐다. 202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른 국내 연간 자살 피해자 수는 1만 3799명이다. 이는 하루에 37.8명꼴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사건 1건 발생 시 최소 5~10명의 자살유족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자살유족의 경우 우울증 등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자살은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자살률보다 2배 이상 높으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사회적 시스템 개선에 앞장서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최근에도 군부대 성폭력 피해자의 자살, 자영업자의 자살, 추석 이후 가장의 자살 등 비극적인 사건이 뉴스에 올라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자살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의 지원이 미미한 편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서도 자살을 심리적 나약함 정도로 인식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자살병리이론가인 쇼트와 클룸은 자살의 원인을 스트레스-체질 모델로 설명한다. 이는 자살 피해자들은 인지 경직성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인데, 예를 들어 개인이 심각한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당사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인식한다. 사람이 인지 경직성 상태에 놓이면 이 상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을 인지 경직성이라고 한다. 즉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나약해서가 아니라 인지 경직성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쇼트와 클룸은(1987) 자살 위기에 놓인 정신과 입원환자 50명과 그렇지 않은 50명을 비교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대인관계 문제 해결 평가를 받았다. 자살의 주원인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니만큼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문제 해결 인식을 하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상황을 제시받고, 입원하게 된 원인과 가능한 해결 대안을 생각한 후 이에 대해 성공 확률을 평가하도록 요청받았다.

실험 결과 쇼트와 클룸은 자살이 스트레스, 절망감과 이에 따른 문제 해결 능력 부족과는 정적 상관관계가 있고 우울증과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분석했다. 문제 해결 평가에서 자살 위기의 환자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서 대안 찾는 테스트에서 60% 부족한 능력을 보였다. 자살 위기 참가자들은 그들이 찾아낸 대안으로부터도 더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했고, 자살 관념이 없는 참가자들보다 문제 해결과 관련이 없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즉, 이 실험은 인지 경직성 모델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삶의 스트레스와 절망으로 인해 탈출구를 생각해 낼 수 없는 인지 경직성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울증에 걸리면 자살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우울증과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울해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절망감이 자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살은 정서적 관점이 아니라 인지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 물론 우울증이 자살과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우울해지면 부정적 생각을 더 많이 하므로 인지적 경직성에 빠질 위험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울증이 자살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쇼트와 클룸은 이처럼 인지 경직성이 삶의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 사이에서의 핵심 매개체라고 주장했다. 개인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때 자살 충동을 느낀다.

자살 이론의 세계적 석학인 에드윈 슈나이드먼도 인지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자살은 '정신질환'에서 발생하는데 이 '정신질환'은 죽음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 인지 경직성을 의미한다. 슈나이드먼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두 가지 유형의 욕구를 지닌다. 첫째는 일차적인 생물학적 욕구. 둘째는 이차적으로 심리적 욕구이다. 여기서 이차적인 심리적 욕구, 즉 사랑이나 소속감, 긍정적인 자아상, 의미 있는 관계 등 심리적인 욕구가 현실에서 실패할 때, 애정 관계의 거부, 상실 등으로 좌절될 때 정신적인 고통이 발생한다. 슈나이드먼에 따르면 이처럼 자살은 심리적 욕구가 좌절될 때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자살 위기에 놓여있기 전에는 심각한 절망감을 경험한다. "취직이 안 된다. 앞으로도 안 될 것 같다", "코로나로 매출이 뚝 끊겼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니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군부대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보고한 뒤 동료들과 상사들이 나를 따돌린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니 충격이다" 등등의 경험을 하는데 이것은 개인에게는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 사람이 심리적 고통을 겪으면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이는 인간이 생물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강아지 등 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강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놀다가도 주변의 무언가 공포 요소를 인식하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기에 바쁘다. 그 공포의 요소가 아주 심할 경우 강아지는 몸이 굳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경직성인 것인데, 사람도 이러한 상태에 빠진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공동으로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19~29세 청년들의 5.3%가 최근 1년 이내에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응답한 19~29세 남성 중 32%는 '미취업·실직과 같은 직장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으며, 24.5%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취업난·실직에 대한 불안감과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절망감이 자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거나, '스스로 잘 극복하라'는 식으로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자칫 위험할 수도 있고, 그들을 방관하면 자살을 실행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들이 인지적 경직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깊이 있고 적절한 개입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자살 예방 개입 시스템 개선에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

자살 이론 자료 참고: ,Igor Galynker,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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