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외치는 '2022 양대선거장애인차별철폐연대' 13일 출범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 울타리[fence]: 모든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되는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와 가정, 학교 같은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간혹 울타리 없는, 누구보다 울타리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찬 이들도 있습니다. 코너 [울타리]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필요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설한 코너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권달주 상임공동대표.(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튜브 채널) © 팝콘뉴스


장애인단체들이 내년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2022 양대 선거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구성했다. 시설 장애인 탈시설화를 위해서다.

'2022 양대선거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장애인 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라', '예산 없이 권리 없다', 'Nothing about with out BUDGET(예산 없이 권리를 논하지 마라)' 등의 슬로건을 펼치며 장애인 탈시설화를 위한 예산 및 공약 등 실질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범식은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권달주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골방에 처박혀 살았다. 시설에 처박혀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 우리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책과 그런 공약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며 "다음 대선에서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정말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내년 선거뿐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공약 이행을 점검하며 필요에 따라 언제든 투쟁할 것이다"고 밝혔다.

'탈시설'은 말 그대로 시설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외치는 '장애인 탈시설'은 시설이 정한 일정에 따라 비주도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유롭고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1981년 심신장애자 복지법 제정 후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장애인복지법은 장애를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고,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봤다. 또 장애를 개인의 문제, 가족의 문제로만 치부해 왔다. 이제 장애인복지법은 폐기돼야 한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 또한 바뀌어야 한다. 장애인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내년 대선 후보자들의 관련 공약 점검 의지를 밝히고 있다.(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유튜브 채널) © 팝콘뉴스


정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로드맵 발표'…2024년까지 시범사업

장애인단체 "정부 책임 명확지 않다" 비판…"관련법 처리 우선돼야"


앞서 정부는 지난달 2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3년간을 시범사업 기간으로 정해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 지원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또한 2025년부터는 매년 740명, 610명, 500명, 45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등 2041년까지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 짓게 된다.

정부는 로드맵 이행을 위해 ▲장애인 주거선택권 보장 ▲탄탄한 자립 경로 구축 ▲독립생활을 위한 사회적 지원 확대 ▲거주시설을 지역사회 자립을 촉진하는 기관으로 전환 ▲시설에 있는 동안 안전하고 자유로운 거주시설 노력 ▲민간-공공 간 긴밀한 협력체 구축 등 분야별 중점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또한 정부는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 설치는 금지하고, 현 거주시설 명칭은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달리해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는 전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스스로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거나 자세 변경과 같은 돌봄이 24시간 필요한 아동과 성인은 4397명으로 시설 거주자의 18%"라고 설명했다.

2020년 기준 장애인 거주시설은 1593개이며 시설 이용자는 2만 90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단기 및 공동생활가정을 제외한 628개 시설 이용 장애인은 2만 4481명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거주시설 2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를 보면 영·유아를 제외한 시설 거주자 연령은 평균 39.4세이며, 발달장애인은 전체 이용자의 80%다. 이들의 입소 기간은 평균 18.9년이다.

로드맵에는 또 장애인을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시설에 대해서는 기존 3차례 위반이 아닌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 운영비 지원을 일체 중단하는 등 단호한 조처에 대해서도 담겨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발표 이후 탈시설을 촉구해 온 장애인단체에서는 "정부의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로드맵 이행을 위한 관련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속히 제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등 68명 국회의원이 지난해 12월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고 지역사회 완전 통합과 발달·중증장애인의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보장을 목표로 발의한 것으로, 정확한 명칭은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은 현재 국회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로드맵' 발표 이튿날 '장애인시설지원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로드맵의) 내용 측면에 아쉬움이 있다"며 "서비스의 재편이 아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탈시설이어야 한다. 또한 지원 대상을 탈시설 욕구가 있는 장애인 당사자로 한정하고 있는데, 탈시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장애 유형과 정도에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에게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탈시설을 위한 장애인 단체들과 정부, 정당 등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정작 시설에 중증 장애 가족을 맡긴 보호자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탈시설을 반대하면 마치 가족을 내다 버리는 사람으로 비쳐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시설 대안이 집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 지적장애인시설 '샬롬의 집'(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시설에 12년간 장애 자녀를 맡기고 있다는 한 부모는 "이게 참 내 일이면서도 말을 하기가 어렵다"며 "우리 애는 사람이 옆에서 24시간 봐줘야 한다. 나는 몸이 아파 일도 하지 못하고 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겨우 살고 있다. 큰 애가 집에 오면 딸이 일을 그만두고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온 식구 다 죽으라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 활동 보조 서비스가 잘 돼 있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옆방에 아들 눕혀 놓고 마음이 편하겠나. 우리 애는 10년 다 돼서야 시설에 적응했다. 다시 집에 적응하려면 10년이 걸린다는 것 아니냐. 시설에서는 당장 집으로 가는 일은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누가 좀 정확한 내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시설들도 탈시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다.

26년간 정부지원금 없이 지적장애인 시설을 운영해 온 샬롬의 집 박기순 원장은 "20년 넘게 자식을 맡기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 가족들도 있고, 죽었다는 소식에도 남 이야기하듯 '그래요?' 하는 가족들도 있다. 이런 집으로 어떻게 돌려보내라는 것인가"라며 "더군다나 중증장애인 가족이 시설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 중 누군가는 온종일 매달려 돌봐야 하는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누가 이들을 책임질 것인가? 무턱대고 탈시설화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립생활지원 시스템과 시설이 상생, 공존하면서 사각지대를 좁혀 나가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분위기는 장애인 시설 전체를 음해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