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책과 사람이 숲처럼 함께 자라는 집

다정다감한 아날로그 서점, '문우당서림'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9/14 [14:39]

[백년가게] 책과 사람이 숲처럼 함께 자라는 집

다정다감한 아날로그 서점, '문우당서림'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9/14 [14:39]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문우당서림 이민호 서림인(사진=문우당서림)  © 팝콘뉴스


'마음이 울적할 때 문우당에 와서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나에게 책이란, 나에게 문우당이란?'이라는 질문이 적힌 방명록. 최근 한 고객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러운 글씨로 이렇게 적어두었다. 문우당서림을 찾는 이들 모두 각자 다른 독서 취향을 갖고 있겠지만, 서점 취향만은 같다. 책 검색대 대신 '서림인'이 책 위치와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점, 서투른 음악 소리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서면 매대 대신 아이들의 첫 무대가 펼쳐져 있는 서점, 여행객에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걱정해주고, 태워주기까지 하는 서점. 우리 동네에 있지 않아도 동네 서점처럼 느껴지는, 요즘 세상에는 참 찾기 힘든 그런 서점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닌 책과 살아가는 공간


 

속초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이민호 서림인은 군대를 갓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상태였다. 교사가 된 형들 대신, 아버지의 거동을 돕기에는 힘에 부치는 어머니 대신, 이민호 서림인이 아버지의 병시중을 시작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퇴직을 선택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복학을 포기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너를 어찌하면 좋으냐.'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그는 조그맣게 서점을 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1984년, 속초에 5평짜리 서점이 하나 생겨난다. 글월 문(文), 벗 우(友), 집 당(堂), 글 서(書), 수풀 림(林), 문우당서림. 비록 작은 공간이라 책을 놓기에도 비좁지만, 책과 사람이 숲처럼 함께 자라는 집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민호 서림인이 결혼하면서 아내 이윤희 서림인이 문우당서림의 가족이 되었고, 창고처럼 쓰던 공간을 모두 터서 책을 진열해두었다. 15평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하니 꽤 서점 티가 났다. 이후에는 1차 확장 이전을 해 한 번 더 서점을 넓혔다. 그리고 바로 그 옆 속초중학교가 이사한다고 했을 때, 문우당서림은 다시 확장이전을 결정하고, 옛 속초중학교 자리에 건물을 2층으로 올려 2003년 6월 14일, 다시 '문우당서림'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 문우당서림은 속초 최대 규모의 서점을 자랑한다. 1, 2층 250여 평의 공간에 7만여 부의 도서를 가득 채웠다. 그 이름처럼 책과 사람이 가득 찬 큰 숲이다.

 

▲ 문우당서림 내부(사진=문우당서림)  © 팝콘뉴스

 


속초시민이 키우고, 속초시민을 키우는 문우당서림


 

5평짜리 서점을 지금의 규모로 키운 건 8할이 속초시민들이었다. 속초시의 인구는 8만 3천, 그 중 문우당서림의 회원은 3만 5천 명이 넘는다. 게다가 가족당 단 한 명만이 문우당서림의 대표회원으로 등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원으로 등록하실 때, 전화번호를 받잖아요. 그러면 끝 번호를 맞춰보고 '혹시 가족 중 000 님 있으세요?'라고 꼭 물어보고, 그 번호로 포인트를 쌓으시라고 말씀드려요. 왜냐하면, 가족이 모두 따로따로 회원 가입을 해두면 포인트가 빨리 안 쌓이잖아요. 한 분이 대표로 모아야 포인트를 알차게 쓰실 수 있으니까요."

 

이윤희 서림인의 말을 감안한다면 속초시민 대부분이 문우당서림의 고객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문우당서림 역시 속초시민을 위해 서점을 환하게 열었다. 서점 1층이 책의 공간이라면, 서점 2층은 사람의 공간이다. 물론 1층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2층에는 더욱 넓게 책을 즐기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코로나19가 없었던 시기에는 매일매일 사람으로 이곳이 북적였다. 아이들의 오케스트라 연습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시 낭송회의 모임이 열리기도 했으며 다문화 지원을 위한 한국어 수업이 진행됐다. 시인은 시민들에게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었고, 뜨개질을 즐기는 시민들은 이곳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문우당서림은 속초시민들과 하나가 되어서 지내왔어요. 저희 2층 매장에는 조금 공간이 여유가 있어서 매일 매일 다른 수업이 열리죠."

 

이렇게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둘 때는 2층 영업은 하지 않는다. 대신 2층에 있는 속초시민들이 더 즐거울 수 있도록 약간의 다른 '영업'을 한다.

 

"그날은 아이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 날이었어요. 2층 불을 다 꺼놓고, 무대에만 불을 켜놓았죠. 그랬더니 손님들이 2층에 올라오시다가 깜짝 놀라요. 저는 '아이들이 생애 첫 연주회를 열고 있다'면서 '손뼉 쳐주세요'라고 부탁하죠. 그럼 다 오셔서 손뼉 쳐주세요. 아이들은 예상치도 못한 응원에 더 힘차게 연주하고요."

 

▲ 책을 살피는 이민호 서림인(사진=문우당서림)  © 팝콘뉴스

 


다정한 책 안내부터 따뜻한 길 안내까지


 

꽤 큰 규모의 서점이지만 문우당서림에는 도서 검색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도서 검색대 대신 가까운 곳에서 서림인을 찾으면 된다. 

 

"일부러 검색대를 안 만들어뒀어요. 손님 대부분은 정확한 책 이름이나 지은이를 모르시죠.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보시는 것이 더 빨라요. 자세히 보시면, 저희는 코너별로 담당하는 서림인의 얼굴을 붙여놨어요. 이 코너에서 궁금한 책이 있다면 이 얼굴을 찾으시면 됩니다."

 

서림인의 역할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림인으로서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과 그 소개글도 적어둔다. 서림인은 자신이 소개한 책에 대한 애착이 생길 뿐만 아니라 손님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책 매대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이러한 정은 외지인에게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문우당서림에서는 마지막 손님이 외지에서 온 아가씨 손님일 때에는 꼭 '여행 오셨어요? 숙소는 어떻게 잡으셨어요? 어떻게 가세요?'라고 묻는다. 늦은 시간에는 버스가 끊겼다며, 인적이 드물어 택시 잡기도 쉽지 않다며 서림인이 숙소까지 태워줄 때도 많다.

 

"그저께도 제가 태워드린 아가씨가 다시 서점에 오셨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서 '뭘 사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포도 한 송이를 사 오셨대요. 서로 마음이잖아요. 그 아가씨도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걸 잘 받아주셨고, 또다시 건네주신 거죠. 그렇게 우리 집을 다녀가신 분들이 가슴 따뜻해지셨으면 좋겠어요."

 

▲ 문우당서림 전경(사진=문우당서림)  © 팝콘뉴스

 


태어날 때부터 내 일이었던 문우당서림


 

문우당서림의 서림인은 모두 가족 구성원으로 삼촌, 외숙모, 엄마, 아빠, 아이들이기도 하다. 이 중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은 단 한 명, 그러나 이윤희 서림인은 이 한 명 역시 '내 동생'이라고 말한다. 외모도 똑 닮았지만, 마음은 더욱 똑같아 이십여 년 이상 함께 문우당서림을 이끌어왔다고 한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있다. 문우당서림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서림인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아빠, 엄마, 이런 명칭을 쓰지도 않고, 대표, 실장 이런 명칭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 대신 '서림인'이라는 수평적이면서도 문우당서림에 대한 애착이 가득한 명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가족애로 똘똘 뭉친 서림인들은 가족을 생각하듯, 문우당서림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한집에 같이 살아요.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데, 퇴근하고 나면 다 같이 식탁에서 문우당서림의 앞날을 이야기해요."

 

그렇게 가족회의이자 서림인회의로 결정된 결과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디자이너로 일하던 딸이 서점 리모델링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해인 서림인은 직접 리모델링할 모습의 문우당서림의 예상도를 그려 서림인들에게 보여주었고,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 청사진을 완성했다. 이후에는 남양주에 가서 재료를 직접 사 왔고, 옛날 우리 가족의 집을 지어주셨던 사장님 네 분을 모셔와 문우당서림의 모습을 현실화했다.

 

"전문가도 아닌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딸에게 있어 문우당서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일이었을 텐데,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었죠. 우리 모두 그런 심정으로 일하니까요."

 

지금의 문우당서림이 고풍스러우면서도 모던한 모습을 갖춘 것은 이 덕분이었다. 이해인 서림인은 이어 문우당서림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 공간을 제안하기 위해 서림인이 디자인한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굿즈도 마찬가지로 서림인 모두의 의견과 아이디어, 글을 반영해 수정을 거쳐 매대에 올라간다.

 

"옛날에는 책갈피를 나누어주는 것이 서점의 문화였어요. 우리 서림인들이 긴 글을 쓸 여유는 많지 않지만, 좋은 글을 자주 읽다 보니 짧게 문장을 써두곤 했는데, 버려지기에는 아깝고, 출판하자니 아쉬운 토막글이어서 고객과 나누려고 스티커로 만들었죠."

 

이해인 서림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책갈피와 스티커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 이러한 스티커와 책갈피는 3~4년 전부터 구매와 상관없이 문우당서림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배포되고 있다. 

 

종이봉투에도 문우당서림의 로고가 크게 인쇄되어 있고 책갈피가 눈에 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싶어도 책이 무겁기에 종이봉투에 넣어드리는 것이 불안해 여러 번 고민하다가 여러 번 사용하자는 취지로 종이봉투에 책갈피를 부착해 드리곤 했다. 물론 이 역시 고객이 직접 원하는 색과 문구대로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그러자 이 로고를 보고 문우당서림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다른 낯선 공간에서 '문우당서림'이라는 책갈피를 보고 인터넷에 검색해서 찾아오는 이들도, 문우당서림에서 책을 사서 선물한 지인 덕분에 문우당서림에 발을 들인 이들도 점차 많아졌다.

 

문우당서림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비정기간행 매거진 '마음. 이음. 다음' 프롤로그를 발행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우리의 새로운 도전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라고 적혀있다. 문우당서림이 더욱 울창해지며 풍겨낼 싱그럽고도 달콤한 책 향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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