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발견] 미디어도 어린이·청소년의 부모가 돼야 한다

범죄자의 미래,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 또한 성실하게 보여줘야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09/01 [15:52]

[고민의 발견] 미디어도 어린이·청소년의 부모가 돼야 한다

범죄자의 미래,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 또한 성실하게 보여줘야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09/01 [15:52]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보고도 믿기 힘든 뉴스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기저귀도 채 떼지 않은 20개월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 전과를 가진 20대 남성에 관한 기사라든지, 10대 형제 둘이서 60대 친할머니를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든지 하는.

 

며칠 전에는 20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맞아 사망한 '데이트 폭력' 사건이 여성의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고인의 어머니는 딸이 남자친구에게 맞아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이런 뉴스들은 너무도 자극적이다. 자극적이다 못해 모골을 송연하게까지 한다. 진짜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 어렵다.

 

실제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슬픈 일이다.

 

이러한 뉴스들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고민을 해야 할까.

 

미디어는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을 깊숙이 파헤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며 한 시간짜리 분량의 탐사보도 형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기도 한다. 공인된 언론과 방송사뿐 아니다. 범죄를 다루는 유튜버들도 사건을 소재로 연일 카메라 앞에서 떠들어 댄다. 대중의 관심 때문이다.

 

뉴스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다. 사람들이 관심 두는 뉴스는 미디어의 돈벌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한때 전남편과 현 남편의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 고유정 사건이 그랬으며, 친구를 시켜 재력가를 죽인 한 시의원의 청부 살해 사건이 그랬다. 당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넷 등 온갖 미디어의 시사 채널에서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몇 매체는 범죄자들이 저지른 '수법'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상세하게 알려주거나 아예 그림으로 설명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사건 현장을 똑같이 만들어 끔찍한 순간을 재연하기도 했다. 반복적인 노출은 보는 이에게 학습효과를 준다.

 

강력범죄를 모방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 강력범죄 뉴스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자기보다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강제로 성매매 시킨 뒤 돈을 갈취했다는 고등학생 이야기나 같은 반 친구를 잔인할 정도로 괴롭혀 끝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는 이것이 진짜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가 맞는지 믿을 수 없다.

 

단언컨대 그들은 부모에게서 이러한 짓을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친구 괴롭히고 사람 죽여도 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아무리 금수 같을지라도 그 정도로 후안무치한 부모는 없다.

 

청소년들의 범죄 사건을 대할 때 대중은 쉽게 이런 말을 한다. "부모는 뭐 하는 사람들이야?"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손에서만 길러지지 않는다. 어린이집, 학원, 학교 등에서 함께 기른다. 때문에 아이들이 속하는 어느 곳이든 어른의 모범과 교육이 필요하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자신들이 송출하는 사건·사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강력 범죄자들의 탄생 배경, 이를테면 범죄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범죄 DNA를 가졌다거나 어렸을 때부터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녔다더라 하는 가정에 가까운 내용보다는 범죄자들의 '미래' 그리고 피해자들의 '상처'에도 사건을 보도할 때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죄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그만큼의 벌이 주어진다는 것을 화면으로나마 청소년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디어는 제일 중요한 이 기능에 대해서는 어쩐지 야박하다. 그저 '몇 년 형을 받았다'가 끝이다. 그렇다고 미디어를 통해 청소년들을 겁주자는 것은 아니다. 후속 보도를 통해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어른의 책임이고 산 교육이다.

 

무조건적인 관용이 범죄자를 양성한다. 부모의 지나친 애정은 아이에게 과장된 영웅심을 갖게 한다. 세상만사 자기 뜻대로 돼야 만족하는 아이들, 그렇지 않으면 떼쓰고 화내고 친구를 때려도 되는 줄 아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마지막에 부모를 향해서도 주먹을 휘두를 수 있다.

 

미디어도 같다. 어린이, 청소년 앞에 어른이 되지 않으면 바보상자라는 치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때 신문 기사와 텔레비전 뉴스는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교육이었다. 사설을 필사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어느 것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가려야 할 만큼 언론들마저 많이 망가져 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기억해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를.

 

 

청소년 범죄라고 해서 덮어둔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범죄는 범죄대로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사람을 죽였으면 사람을 죽인 것에 맞는 판결을 내리되 어린 학생이 우발적으로 했다든지 하면 그것을 감안해서 형을 조정하는 식으로 해야지, 범죄 자체를 덮어주면 결국 범죄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법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중략)

 

옛날에도 가게에서 몰래 물건을 훔치거나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것도 범죄는 범죄인데,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자랄 때의 문화적인 상황에서 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남의 집 담을 넘어 물건을 훔치거나 정기적으로 애를 때리고 돈을 뺏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과수원에서 수박을 서리해 먹거나 하는 것은 교화가 필요한 일이다. 야단을 치고, 매를 들고 해야지, 이것을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런데 노트북을 훔쳐갔다고 그러면 이것은 명백한 절도다. 명백한 범죄와 선도의 대상은 구분 가능하다.

 

-법륜 스님 '쟁점을 파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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