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이라도 마음 표현하기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한때 '도시락 편지'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아이나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손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일화들이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감동 사연으로 소개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곤 했다. 당연히 가족 간의 사랑이 주제로 회자되며 마음을 담은 손편지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시대가 바뀌어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어른들은 직장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으로 점심을 챙기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의사소통은 주로 핸드폰이나 메일로 한다. 따라서 지금은 도시락을 싸거나 손편지를 쓰는 대신 SNS, 문자나 이모티콘, 기프트콘 등을 통해 마음을 표현한다. 여러모로 편해졌지만 가끔은 아날로그식 손편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나는 가족에게 도시락 손편지도 써 보았고, 메일이나 문자도 써 보았다. 손편지 쓸 때의 감성과 카톡이나 문자를 쓸 때의 감성은 분명 다르다. 돌이켜보면 손편지를 쓸 때는 편지를 읽을 사람에 대해 애틋함이나 간절함 같은 마음이 많이 생겼던 것 같다. 반면 카톡이나 문자는 용건 전달을 위한 정확한 의사 표현이나 재미를 위한 사진이나 이모티콘 전달로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렇듯 삶과 소통 방식의 변화는 사람들의 감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문구점에 가서 예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고르며 어떤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마음 전달이 시작됐던 손편지를 쓰던 삶은 여유로웠고 감성이 충만했으며 타인에 대한 온정이 넘쳤던 것 같다.

반면 핸드폰과 컴퓨터 키보드의 자판을 빠르게 누르며 소통하는 현재는 '빨리빨리'가 강조되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도 없어진 것 같고, 재미있고 독특한 이모티콘을 아무리 많이 주고받아도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감성이나 타인에 대한 온정도 메말라진 느낌이다.

매년 5월이면 보은의 편지쓰기 행사가 진행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쓰도록 지도한다.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편지지와 봉투를 가져와서 편지를 쓰도록 했지만, 편지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심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은 학교에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준비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편지를 쓰도록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이 이 시간을 매우 싫어하고 곤혹스러워한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해보자고 제안하면 단문의 문자를 보내거나 카독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면 안 되냐고 반문한다. 혹은 할 말이 없다는 학생들도 있고, 몇줄 쓰고는 더는 쓸 말이 없으니 그만 쓰면 안 되냐며 힘들어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이나 젊은 친구들에게는 손편지 식의 소통 방식이 이제는 환영받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과거와 비교해 보면 사제 간의 정을 쌓기도 쉽지 않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예전과는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하나 아니면 둘 정도의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많은 것을 다 해주려 애쓴다. 하지만 그 쏟아부음이 오히려 자녀가 부모에게 마음을 표현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삶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 같다.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진로까지 탐색해야 하는 아이들은 너무나도 바쁘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을 사귀는 시간도 필요하고, 즐겁게 놀기도 해야 한다. 독서도 해야 하고, 자기 삶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도 여유롭게 가져야 한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특기를 살릴 활동도 해야 한다. 그런 시간이 모여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며 촉촉한 감성의 소유자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학업으로만 내몰린 탓에 아이들은 점점 더 무미건조한 삶의 주인공들이 되어 간다.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보며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에 관해 고민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할 방법도 알지 못하고 그런 시간을 내며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저 단문의 질문이나 대답을 주고받는 것이 최고의 의사 표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의 표현 감수성을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론 시대 변화를 역행할 수는 없다. 그립다고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할 수 없고, 아쉽다고 과거의 방식을 억지로 고집할 수도 없다. 대신 현재의 삶에 주어진 방식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려 노력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자녀와 메일이나 문자를 나눌 때, 줄임말이나 단문의 글에 마음을 더 실어보면 어떨까?

아빠(엄마): 밥 먹었니? 보다는

아빠(엄마): 사랑하는 아들(딸) 오늘 날씨가 참 좋네. 점심 맛있게 먹었어? 하루하루의 시간이 모여 우리 딸(아들)의 멋진 인생이 만들어질 거야. 힘들겠지만 오후 시간도 힘내서 잘 보내. 엄마(아빠)가 항상 우리 딸(아들) 응원하는 거 알지? 파이팅!

사람의 성격에 따라 이런 표현을 간지럽다거나 닭살이 돋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 각자 자신의 성정에 맞는 표현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을 하자는 말이다, 자녀의 감성을 높이기 위해.

하늘이 부쩍 높아지며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계절인 가을을 맞아 오늘부터라도 가족에게 사랑과 감성 충만한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시작해보자. 자녀와 함께 표현 감수성도 높이고 가족 간의 사랑도 확인하는 행복한 시간이 선물처럼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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