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슬로푸드인 한식에는 슬로 기름이 제격

주문 즉시 기름을 짜기 시작하는 기름집, '대성기름집'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8/31 [16:04]

[백년가게] 슬로푸드인 한식에는 슬로 기름이 제격

주문 즉시 기름을 짜기 시작하는 기름집, '대성기름집'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8/31 [16:04]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대성기름집 박정수 대표 부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장사하시는 분 중에서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내가 돈은 좀 벌었지만,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내가 지금 얼마를 버느냐를 떠나서 회사원을 보면 '양복 입고, 나가서 깨끗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부러움을 느끼고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었죠."

 

어머니, 아버지는 못 배워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렇기에 대학 공부까지 시켜놓은 아들이 군대에 다녀온 뒤, 갑자기 대학을 자퇴하고 기름집을 이어받겠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들고, 고된 일, 그렇다고 누구한테 인정받기도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 다 큰 아들을 때리기도 해보고, 가게에 나온 아들을 무시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 비록 기름을 짜는 전문적인 작업은 아닐지라도 깨를 담고, 땅콩을 담고, 미숫가루를 담으며 이 일을 익혔다. 게다가 자신이 아니면 이어가기 어려운 사업이니 자신이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지 재미도, 취미도 없는 공부가 아니라 기름집 일은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누군가의 밑에서 회사원으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보다는 내 사업, 그리고 가족 사업을 내 힘으로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래서 구박을 받을지언정 가게에 나와서 일을 찾았다. 그렇게 3개월, 아들은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 후로 26년이 지났다. 박정수 대표는 대를 이어 대성기름집의 신뢰를 지켜나가고 있다.

 


세 가지 빛깔의 참기름


 

대성기름집에는 참기름만 해도 세 종류가 있다. 깨를 조금만 볶아 짜낸 기름, 깨를 어느 정도 볶아 짜낸 기름, 깨를 많이 볶아 짜낸 기름이다. 물론 이 사이 어딘가쯤으로 볶는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볶는 정도에 따라 참기름의 맛과 향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눈으로도 그 투명도에 따라 차이점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는 바로바로 기름을 짜다 보니 취향에 따라 골라서 기름을 짤 수 있어요. 그냥 짜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70%라면, 덜 볶아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20%, 더 볶아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10% 정도 되는 것 같네요."

 

마치 저염식이 건강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깨를 덜 볶아서 짜낸 기름이 건강한 음식으로 여겨지면서 요즘에는 특히 깨를 덜 볶아 짜낸 기름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깨를 바짝 볶아 그 향을 극대화한 기름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온 집안에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하는 참기름은 바로 이렇게 만든 참기름이다. 시커먼 색을 자랑하는 이 기름이 '옛날에 우리가 먹던 진짜 참기름'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대성기름집에서는 어떤 기름 취향을 가지고 있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원하는 정도로 볶은 기름을 제공한다. 처음 온 고객도 마찬가지다.

 

"그냥 내 입에 맞는 게 제일 좋은 거야. 그래서 처음 손님이 오면 그냥 기본 참기름을 주면서 맛을 보시라고 해요. 그러면서 만약에 이게 쓴맛이 느껴지면 다음에는 덜 볶아달라고 말씀하시고, 만약에 싱겁거나 니글거린다고 생각하시면 다음에는 더 볶아달라고 말씀해달라고 하죠. 처음부터 깨 볶는 정도가 자기 입맛에 딱 맞으면 괜찮은데, 그게 안 맞을 때는 서로 맞춰가야죠."

 

▲ 작업 중인 박정수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기름 짜는 과정


 

이렇게 고객들의 취향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기름 짜는 일 역시 조금씩 변화를 거듭했다. 과거에는 100℃를 기준으로 놓고 볶던 깨를 요즘에는 50℃를 기준으로 놓고 볶는다. 과거에는 높은 열로 깨를 볶아 기름을 짰기 때문에 기름 온도에 병이 깨져버리는 경우도 흔했고, 압력이 약해 한 번에 짤 수 있는 기름양이 아주 적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계의 압력이 높아져 나오는 기름양이 늘어났다.

 

깨의 원산지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국산도 넘쳐났지만, 요즘 국산 들깨는 거의 없고, 중국산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 외에도 인도나 파키스탄, 수단 등 타 국가에서도 들깨가 생산되는데, 이 맛은 국산과 중국산에 비교하면 그 차이가 너무 크다.

 

"만약에 한 병에 국산 깨로 볶은 참기름을 두고, 아홉 병에는 중국산 깨로 볶은 참기름을 넣은 다음에 맞추라고 하면 맞추기 어려워요. 평생 이 일을 해오신 어머니는 미세하게 끝맛이 고소하면 국산, 미세하게 끝맛이 씁쓰름하면 중국산이라고 아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중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온 깨를 넣었을 때는 맛이 정말 달라요. 국산의 맛을 100이라고 하면 중국산은 99, 그 외에는 60에서 70, 심하면 50도 안 되죠."

 

그래서 대성기름집에서는 절대 중국산 외 다른 국가의 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부서져 오는 분깨 역시 사용하지 않는다. 국산은 한 병에 3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지만, 원하는 고객의 특별한 요청이 있는 경우에 짠다.

 

그 외에도 대성기름집에서 고객의 신뢰를 얻는 또 하나의 비법이 있다. 깨를 직접 가져온 고객이 자신의 깨가 기름이 되는 과정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은 평상이지만 이 자리에서 보면 깨에서 이물질을 털어내는 과정, 깨를 여러 번 씻는 과정, 깨를 볶는 과정, 기름을 짜는 과정, 병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한 박정수 대표는 과정마다 고객에게 이를 확실히 알려 신뢰를 더한다.

 

"이렇게 해놓으면 고객으로서는 다 볼 수 있어서 좋고, 저희도 일하기 편해서 좋아요. 여기 있는 기계들이 굉장히 뜨겁고, 위험한 기계들이에요. 게다가 조금이라도 돌아다니시면 기름 묻기가 쉽죠."

 

▲ 판매 중인 제품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기억 속 단골처럼 시간 지나며 더욱 생각날 고소함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대성기름집을 찾는 고객들 역시 내공이 깊다. 박정수 대표는 그중 몇 명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한 고객은 지금쯤 100세가 훌쩍 넘었을 한 할머니다. 머리는 하얗게 센 한 할머니는 항상 쪽 비녀를 두르고, 흰 삼베 한복을 입고 이곳을 찾았다. 자세도 꼿꼿하고, 깔끔해 그 할머니가 오는 날이면 혹여나 옷에 기름이 묻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도 박정수 대표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외에도 늘 20㎏ 정도 되는 참기름을 사 갔던 할머니도 떠오른다. 한글을 못 읽지만, 대림에서 모란까지 버스를 네 번 갈아타면서 온다는 할머니는 '모란'이라는 글자를 하나의 기호처럼 읽어 이곳을 찾아온다고 했다. 이런 단골손님이 탄탄하기에 박정수 대표는 앞으로의 몇십 년도 걱정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모르겠어요. 한 10년 뒤에 오시면, 우리 아들이 여기서 또 '안녕하세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