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명에게 물었습니다] 집 자랑 프로그램에 박탈감 느끼는 시청자들

'富'에만 포커싱…제일 중요한 '어떻게'가 빠졌다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08/27 [16:42]

[O명에게 물었습니다] 집 자랑 프로그램에 박탈감 느끼는 시청자들

'富'에만 포커싱…제일 중요한 '어떻게'가 빠졌다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08/27 [16:42]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골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습니다. 그동안의 일방향 보도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뉴스입니다. 예민한 사안의 경우 의견을 주신 분들의 성함을 닉네임으로 대신하거나 블러 처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겹다 못해 화가 난다. 어떤 연예인은 자기 집 자랑을 넘어 시부모님 사는 집까지 보여주더라. 우리가 왜 그들 베란다며 밥솥이며 화장실 변기까지 봐야 하는 건가. 이제는 어린애들도 '돈돈' 거린다. 나라 전체가 돈에 미쳐 가는 것 같다. 씁쓸하다" 박윤수(43)

 

"연예인들 돈 벌어서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보면 동기부여된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한강 보이는 아파트 사고 싶다" 김지온(17)

 

가난이 죄가 아니듯, 정당하게 일해 번 돈을 가지고 소비하는 행위 또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게으르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다. 부자에게서 '운'을 찾는 것도 가벼운 행동이다.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그들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요새 TV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예인들이 욕을 먹고 있다. 연예인들의 수입과 사생활에 호기심을 갖고 TV 앞에 바짝 다가갔던 사람들이 점차 멀찍이 떨어져 채널을 돌리고 있다. 왜 그럴까.

 

TV 프로그램도 유행이 있다.

 

최근 10년만을 놓고 보자. 시작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경지에 오른 가수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해 노래를 불렀다.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 노래만 들어도 감지덕지인데, 모두의 노래를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인기가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이 문제였다. 이후 각 방송사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래를 콘텐츠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아예 대놓고 베낀 방송도 있다. 온 나라가 노래 노래 노래였다. 

 

이후 요리를 주재료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각 방송사에서 차려졌다. 요리가 쉬어갈 무렵부터는 연예인들의 진짜 삶을 보여주겠다는 이른바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됐다.

 

관찰 예능은 '연예인도 결국은 사람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화장하지 않은 얼굴,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TV에 출연할 수 있는 연예인은 없었을 것이다.

 

부부들이 나오는 관찰 예능도 같은 맥락이다. 연예인 부부들도 일반 부부와 다른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집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인테리어는 얼마나 잘해 놓고 사는가 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입을 벌릴 수밖에 없는 장면들만이 가득하다.

 

한 방송사에서 매주 한 차례 방영되고 있는 '집 구하는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발품을 팔아 출연자들의 예산에 맞춰 대신 집을 구해주는 신선한 포맷으로 많은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에 앉게 했다.

 

처음 이 프로는 넓고 좋은 집들도 소개했지만, 자취방이나 원룸, 10평대 전·월세 등도 찾아다녔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는 정해진 예산안에서 의뢰인이 필요로 하는 조건에 맞춰 집을 구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다소 엉뚱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하철역은 가까운데 정작 집 출입구는 엉뚱한 곳에 있어 찾기가 어렵다든지, 창문은 있는데 화장실 문이 변기에 닿아 잘 열리지 않는다든가 하는.

 

요즘 이 프로에서 500~1,000만 원대 자취방을 구하는 에피소드는 더는 보기 힘들다. 넓은 마당과 바비큐 시설, 방과 화장실 개수 등으로 경합을 벌이는 모습만이 남았다.

 

분명 이러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잘살기를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집 짓는 것이 꿈인 사람들에게는 집 구조와 동선, 내장재와 마감재 등을 여러 사례로 볼 수 있는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TV 앞에 앉은 많은 시청자는 누군가의 잘사는 모습,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수십수백 명의 잘사는 모습으로 대리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     ©팝콘뉴스

 전인웅(43) 씨는 평소 연예인들의 수입을 궁금해했던 사람이다. 그는 "유명 연예인이 아닌데 TV에서 보니 정말 좋은 집에 살고 있더라. 대체 얼마를 벌기에 어쩌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호화롭게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끝나고 집에서 맥주 한 캔 마시며 텔레비전 보는 게 낙이었는데, 요새는 나 빼고 다 잘산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프로는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진정선(31) 씨도 전인웅 씨와 같은 생각에서 TV를 멀리하고 있다. 진 씨는 "한때 집 구하는 프로그램을 챙겨 봤는데 요즘은 아예 안 본다. 처음에는 자취방도 나오고 원룸 투룸도 소개했는데 지금은 마당에 잔디 깔린 전원주택, 최고급 인테리어만 나오는 것 같다. 보고냐면 나만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아닌가 싶어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 주머니는 가볍다. 그들의 부모 형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출 없이 10억 가까운 집을 턱턱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부모의 부모 세대는 열심히 저축하면 내 집 한 칸 정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더군다나 최근 1~2년은 코로나19로 일자리 구하기조차 어렵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월급 200~250만 원 받는 사회 초년생이 월세로 50~60만 원을 내고, 각종 공과금에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돼 있다. 한 달 100만 원씩을 저축한다고 해도 1년이면 1,200만 원, 10년이면 1억 2,000만 원이다. 서울에서는 집을 살 수 없는 금액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임대 아파트니, 청년 주택이니 하는 것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워낙에 경쟁률이 치열한 까닭에 그것 또한 운이 있어야 입주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TV 속에 사는 연예인들은 100평이니 200평이니 하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집과 최고급 가전 가구들을 보여주고 자랑한다. 부러움만을 가지고 리모컨을 끄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물론 관대한 시선도 없지 않다.

 

곽윤성(51), 김하윤(25) 씨는 나고 자란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지만 연예인들의 집 자랑에 대해 특별히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다.

 

곽 씨는 "어느 시대고 사람 사는 세상에 집 자랑은 있었다. 그래서 집들이하고 사람 초대하고 그런 것 아니냐"며 "열심히 돈 벌어서 좋은 집 사고 좋은 차 타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다만 적당히 해야 하는데 온 방송사가 다 같이 연예인 집을 보여주고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도 "세상에 자랑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몸매 보여주려고 벗고 찍고, 여행 다녀온 거 자랑하려고 여행 사진 공유하고, 식당에 가서 음식 찍어 올리는 것도 다 '나, 이만큼 잘 산다'고 과시하는 건데 왜 연예인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방영 초기 출연했던 멤버들은 궁색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청자들은 그들을 응원했다. 고정 멤버였던 한 연예인은 정리 정돈 안 된 비좁고 낡은 집에서 생활하다 청약에 당첨돼 이사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 방송 이후 많은 사람이 '청약'에 관심을 두고 청약저축에 들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순기능이 됐다.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TV 프로그램들이 욕을 먹는 것은 이 같은 '순기능'에 충실하지 않은 채 '자극'에만 골몰해 왔기 때문이다.

 

TV에 부자를 내보낼 때는 그가 가진 '부'뿐 아니라 그 과정과 노력 또한 함께 다뤄야 한다. '어떻게 벌었는지'가 빠진 채 큰 집 비싼 가구, 돈 많이 드는 취미만을 보여주기에 시청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오해하는 것이다. 나는 노력, 남은 운인 것으로.

 

연예인들의 수입과 재산 등이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면서 부의 이면도 드러나고 있다.

 

낚시로 유명세를 떨친 래퍼 한 명은 한때 TV에 출연해 유년 시절 외국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의 부모는 고향에서 친척과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려 외국으로 도망가 그와 그의 형을 길렀다. 이 일로 래퍼는 TV에서 사라졌고, 그의 부모는 감옥에 갇혔다.

 

유명 트로트 가수 J씨는 출연하는 행사마다 모든 출연자 중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이전 J씨는 섭외 1순위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차 안에서 먹고 자는 것을 뺀 모든 시간에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했다고 한다. 돈을 쓸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 사실 외에도 대중은 알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녀가 차에서 먹고 자면서 벌어들인 수입 중 상당 부분이 친오빠의 사업비 및 엄마의 유흥비 등으로 쓰였다는 내용이었다.

 

70~80년대 인기가수 이은하 씨도 최근 TV에 출연해 자신의 화려했던 삶 이면을 밝혔다. 대중은 그가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만, 실은 그의 아버지가 딸이 번 돈을 가지고 아버지가 건축업에 뛰어들어 부도를 낸 탓에 10억 이상의 빚을 갚으며 어렵게 살아갔다는 고백이었다.

 

이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잘사는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에서는 그들 집에 깔린 대리석만을 볼 것이 아니라 단단했던 노력을 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도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방송국도 이 부분을 버리고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가수 양희은 씨는 2017년 한 프로그램에 출연, 진행자 김구라 씨가 출연자 한 사람에게 수입의 정도에 대해 여러 번 묻자 "지저분한 이야기 그만하자"며 그의 말을 자른 적이 있다. 그는 그 말 뒤에 "요즘 다 살기도 힘든데 됐다 그래라"는 용기 있는 발언으로 김 씨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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