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엄마의 집밥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한국인의 밥상

직접 삶고, 말리고, 데치고, 담가 음식을 만드는 한식집, '부일식당'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8/24 [16:35]

[백년가게] 엄마의 집밥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한국인의 밥상

직접 삶고, 말리고, 데치고, 담가 음식을 만드는 한식집, '부일식당'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8/24 [16:35]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부일식당 김복순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나는 음식 한 가지라도 더 내고 싶어서 노력하고, 직접 한 거로 손님을 대접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걸 우리 손님들은 맛으로 다 아시더라고."

 

부일식당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식재료가 가득하다. 김장은 물론, 된장, 고추장, 감식초까지 직접 담근다. 부일식당 뒤편에 가득한 항아리에는 매 시기 담근 각각의 장이 익어가고, 감식초가 보관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접 뜬 청국장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청국장과 달리 구수함이 진하게 배어있고, 직접 쑨 도토리묵은 쫀득해 씹는 맛이 다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이지는 물론 젓갈까지 직접 담그고, 고기 육수 역시 직접 모두 끓인다. 산나물이며 햇고추, 표고버섯 등은 제철에 사고, 직접 다듬어 가게 지붕에 보자기 위에서 말려놨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감을 따와 씻어서 6개월간 숙성시키면,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감식초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손수 모든 식재료를 관리하면서도 각각의 식재료는 제 위치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이러니 다른 집에서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만든 음식은 식당용 그릇이 아닌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값비싼 그릇 위로 올라간다. 김복순 대표는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먹거리가 최고 중요한 것 같아. 옷은 다 떨어진 옷을 입어도 음식을 최고로 먹어야 해."

 

▲ 부일식당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네 아이를 먹이고 키우기 위해 시작한 생업


 

딸만 넷이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려면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다지 넉넉한 생활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커갈 때만이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이뤄야겠다고 마음먹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해봤다. 여자가 할 수 있으면서도 남한테 신세 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 그 일이 바로 식당이었다. 식당을 하니 적어도 식구가 굶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고깃집이 많지 않던 시절, 막내가 돌이 되었을 때, 1981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작은 식당을 열었다.

 

"처음부터 나는 식당을 할 때 그냥 우리 식구 먹는 밥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밥상을 준비했어."

 

이후에는 식당을 오픈한 날부터 그만두는 날까지 손님을 기다려 본 적이 없어 항상 손님으로 북적이는 가게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사람이 많아져 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갑자기 그 아래로 터널이 생기면서 통행량이 줄어 가게를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때마침 남편의 후배가 인천 부평에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한다며 부평을 추천했다. 당시 구멍가게밖에 없고, 식당도 없었던 이곳에서 식당을 다시 시작했지만, 테이블 5개로 시작했던 식당은 점차 종로에서 그랬듯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손님이 '맛있다, 맛있다' 말하는 소리가 내 귀로 들리고, 왔던 사람이 또 오면서 단골이 하나둘 모였지."

 

때마침 옆집이 이사 간다는 소리가 들려서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옆집과 가게를 터서 테이블은 아홉 개로 늘어났다. 그렇게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테이블은 점차 많아졌다. 하지만 좋은 일만 계속되지 않았다. 한참 손님이 많아졌을 때, 이번에는 가게에 불이나 한두 달은 쉬어야 했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빚을 내서 다시 수리하고, 그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대단지 아파트 입주가 시작하면서 손님은 가게가 미어터질 듯 몰려들었다.

 

그렇게 엄마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배추를 1200포기씩 담그고, 하루에 쌀을 한두 가마씩 지어야 했으니 몸은 고되었지만, 네 딸은 각각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다.

 

▲ 김복순 대표가 직접 쑨 묵(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잦은 이사에도 부일식당을 찾아와준 단골을 위한 특별메뉴


 

처음에 부평에 자리를 잡았을 때, 엄마 배 속에 있었던 아이가 어느새 자기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아직도 이 식당이 있었다며 고향 집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오랜 단골인데도 부일식당이 이 주변 어딘가에 규모가 큰 식당으로 옮겼을 것으로 생각해서 한참 찾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 30년간 부일식당에서 일하고 계신 이모의 얼굴을 보고 '여기다' 싶어 찾아 들어오는 일도 있다.

 

"손님이 그렇게 오셔서 이야기하시고, 만족하시면서 가실 때, 고생한 건 다 기억 안 날 정도로 감사하지. 내가 워낙 바빠서 손님하고는 얘기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도, 손님들은 내가 뭘 어떻게 해줬는지 다 기억하더라고."

 

예를 들어 단골손님이 왔을 때, 찌개에 해산물을 듬뿍 넣어줬다거나 직접 쑨 묵을 잘라서 내줬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다른 곳에서 사 먹어도 이렇게 정성 가득한 맛은 느낄 수 없기에 단골손님은 이곳을 다시 찾아 정겨운 맛을 느끼곤 한다.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가는 게 너무 기쁘지.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오셔서 잡수실까 싶고. 그래서 단골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있으면 바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제철이 아니거나 하는 데 오래 걸려서 날 잡아서 하는 메뉴가 있을 때는 언제 그 반찬 한다고 '그때 오셔요' 하기도 해. 손님과 음식을 나누는 것, 그게 정이지."

 

하지만 이렇게 음식은 물론 재료를 하나하나 만드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많았다. 젊었을 때야 아무리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멀쩡했지만,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파킨슨으로 고생한 지 7년째, 통증이 심해진 지는 3년이 되었다.

 

"파킨슨병은 완치가 없어서 진행을 늦출 수 있게 약을 먹고 있어요. 주치의 선생님은 이제 운동하고, 장사는 그만두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다 오래된 편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칠 수가 없잖아. 나와서 거들어준다고 하는데, 사실 쉬지 않고 일하게 돼."

 

현재 몸이 아픈 엄마와 함께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맏딸이 부일식당을 계승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외국에 나가 있는 세 딸 중 두 딸 역시 엄마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 이 음식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중이다.

 

"캐나다 사는 막내딸은 이미 유명한 셰프고, 호주에 있는 딸은 미국 회사에서 한국 지사장으로 오래 있다가 애들 교육 때문에 호주에 가 있는데, 아이가 대학 가기 전에 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국제학교 선생님 자격증을 따놓고 준비 중이니까."

 

특수효과 전문가로 LA에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둘째 딸을 제외하면 딸 셋 모두가 엄마의 손맛을 물려받은 셈이다. 이 딸들 모두는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아 식당은 그만두라고 권하지만, 김복순 대표는 아직도 부일식당에서 아이 넷을 키울 때처럼 아이들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

 

"나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보람 있는 일이 없어. 내가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이 먹고 맛있다고 해야 보람이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