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 구조한 다섯 마리 대형견 미국으로 입양 보내던 날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인천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이동봉사자를 만나 설명 중인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 봉사자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음식이나 음식의 재료를 반려동물 이름으로 지어주면 무병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에는 감자, 초코, 두부, 순대 같은 귀여운 이름을 가진 '동명이견(묘)'이 많다.

인천국제공항 제2청사 검역소 앞에서 만난 펌킨(호박), 진저(생강) 또한 누군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물한 이름이다. 검은 강아지 매기는 '매기의 추억'을 상상하게 하는 예쁜 이름과 잘 어울린다.

펌킨과 친구들은 지난 8일 오후 1시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후 8시 30분에는 두 마리 개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의 새 주인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였다. 이들의 비행은 처음이었으며, 동시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다섯 마리 개 모두는 개 농장에서 구조됐다.

개 농장의 개들은 대체로 형편없는 시설에서 식육을 목적으로 사육된다. 대충 몸집만을 불려 시장에 내다 팔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손에서 길러졌으니 건강 상태 같은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다.

땅 싸움을 위한 알박기용 불법 보호소 개들의 운명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목숨을 두고 흥정하는 주인에게서 영양가 있는 사료와 여유 있는 산책을 기대할 수는 없을 터. 쓰레기인지 오물인지 알 수 없는 음식물쓰레기라도 제때 제공되면 감지덕지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싶은 이 비참한 현장에 그래도 '사람'이 있다. 맨손으로 뜯어낸 철장에서 오물을 뒤집어쓴 개들을 꺼내 안고 우는 이들, 그들이 있다.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대표 김나미)는 전국 곳곳에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죽어가는 개들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일을 한다. 개 식용 금지법 제정 촉구, 유기 동물 및 사고 동물 등의 구조와 치료(이후 입양), 임시보호소 운영 같은 일도 하고 있다.

펌킨, 진저, 매기는 경기도 광주의 개 농장에서 구조됐다. 진돗개 믹스인데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에서 파생된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닮았다. 개들의 나이는 한 살 정도. 적당히 살이 오르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것이 식육견의 운명이다 보니 나이 많은 개가 구조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 검은 개 진저(ginger)가 들어 있는 케이지 패킹을 기다리는 봉사자 이시은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 봉사자 최은영(60), 이시은(50) 씨는 펌킨과 친구들의 배웅을 위해 아침 일찍 각각 서울 송파구, 경기도 남양주시 집에서 김포 보호소로, 김포 보호소에서 인천공항으로 쉴 새 없이 내달렸다. 전날에는 개들을 목욕시키고 서류를 챙기는 등 준비 작업으로 늦게 귀가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이번 입양은 수월하게 이뤄졌다. 코로나19로 요즘에는 미국 입양을 성사시키는 일이 매우 어렵다. 미국 가는 길에 서류 전해 줄 이동봉사자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이번엔 이 문제들이 어려움 없이 처리됐다. 개들의 몸무게도 여객기가 허락하는 최대 몸무게 이하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45kg 이상인 대형견의 경우 화물 전용 비행기 카고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고 그 비용은 약 5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입양가정에서 이동을 위한 비용 전액 또는 일부를 지불하고는 있지만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에서도 개 한 마리를 입양 보내기까지 적지 않은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 서류 챙기는 최은영 봉사자. 옆 케이지 안에는 펌킨(아래), 진저(위)가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렇다면 왜 구조된 대형견들을 돈까지 들여가며 굳이 미국으로 보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이시은 씨는 "구조한 개들을 왜 해외로 입양 보내냐고, 돈 받고 장사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견을 입양하려는 가정이 많지 않다. 국내 입양만을 기다리다가는 시간 다 간다. 간혹 마당에 묶어두고 도둑 지키는 용으로 키우고자 입양하시겠다는 분들이 있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도 스킨십이 필요하지 않겠나. 우리는 구조된 아이들이 될 수 있으면 집 안에서 사랑받으며 여생 보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해외에서까지 입양처를 찾는 것이다"고 말했다.

최은영 씨는 "모든 개를 구조할 수는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구조하고자 김나미 대표와 많은 봉사자가 지금도 제보받은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개 경매장에서 개고기 시장 상인에게 막 팔려 가는 개들을 돈 주고 산 적도 있다. 그렇게까지 구조한다. 하지만 개들을 구조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먹이고 재워야 하고, 평생 가족 찾아 입양도 보내야 한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구조 이후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에서 운영하는 김포 보호소에는 펌킨과 친구들처럼 입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이 많이 있다. 반면 입양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아픈 개들도 있다. 고양시 도축장에서 구조한 개 한 마리는 기침이 심해 입원해 있다. 개들이 많다 보니 물림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병원에 가야 한다. 파주 개 경매장 앞에서 구조한 개 한 마리는 다리가 기형이라 수백만 원 수술비가 필요하다. 결국 다 돈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사각지대에 있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넘쳐난다.

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 봉사자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개들을 생의 땅으로 끌어내고 있다. 자신들 몸집만큼이나 큰 개들을 구조하면서도 수고비는커녕 사비까지 들이고 있다. 가정일에 소홀해지고 돈은 모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봉사자들은 이 수고롭고 돈 드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전국 곳곳에서 신음하는 개들의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기 때문이다.

▲ 미국 LA 공항에서 개들을 인수한 모습.(사진=김포세이브코리안독스 제공) © 팝콘뉴스


펌킨과 두 친구는 한국 시각으로 자정을 넘겨 미국 LA 공항에 도착했다. 외국인과 함께 찍힌 아이들의 사진이 최은영 씨의 카카오톡에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오후 늦게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오른 두 마리 개도 이튿날 무사히 미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딸의 결혼식 전날까지 봉사한 일화로 봉사자들 사이에서도 '찐'으로 통하는 최은영 씨. 그는 "(입양 가는 개들) 앞으로 꽃길만 걸으라고 잘 배웅해 주면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라도 갖지 않을까 싶어 이 일을 한다"고 했다. 혹 자신이 바빠 공항까지 이동을 위해 개들을 펫 택시에 태울 때가 있는데 그러면 "저 애들은 한국에서 끝내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갖지 못하겠구나" 싶어 어떻게든 시간과 체력을 쥐어짜 이 일을 이어가고 있다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고양이 18마리, 개 한 마리를 반려한다는 봉사자 이시은 씨는 "뭣도 모르고 고양이 한 마리를 사서 길렀다. 고양이를 기르면서 동네 길고양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고양이들에게 밥을 준 지 4~5년 됐다. 어느 날은 고양이 밥 주다가 하남 개 농장에서 개들 구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료 100만 원어치를 사서 달려갔다. 진돗개 같은 품종견들은 입양 보내진다고 하는데 도사견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현실을 봤다. '내가 쟤는 꼭 입양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저렇게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애들 다 비행기 태워 보내고 남양주 집에 가면 한밤중이다. 집 애들 밥 주고 약주고 길 애들 밥까지 챙기는 게 두세 시간 걸린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어쩌겠나.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나"며 웃었다.

시은 씨는 느닷없는 자랑과 함께 당부를 전했다. "미국에서는 군견이나 탐지견 같은 개들이 은퇴하면 영웅견으로 받아들여져 입양 1순위라고 한다. 먼저 입양 보낸 개 중에 마블이라는 애는 지금 탐지견 훈련받고 있다. 지금 교육하는 선생님 집에서 먹고 자고 스킨십 하면서 산다. 오늘 입양 가는 아이들이 탐지견이나 군견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육견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개는 식용, 반려용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지은 죄를 이렇게 누군가 소멸시킨다. 덕분에 이 지구는 균형을 잃지 않고 공전한다.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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