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친절, 부지런함과 마음 씀씀이까지 완벽한 '브리아몽'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브리아몽 신흥중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브리아몽은 갓 구운 빵 냄새처럼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집이다. 맛 자체도 그렇지만, 브리아몽을 이끌어가고 있는 신흥중 대표의 마음이 그러했다. 벌써 빵 만든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는 늘 가난한 시절, 먹고 싶었던 빵의 온기를, 그리고 빵을 만들면서 가졌던 꿈과 희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가게에 나설 준비를 하고 6시 30분이면 빵집의 문을 열었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빵을 만들었고, 손님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문을 닫을 때면 정성스럽게 만들었지만, 판매되지 않은 빵을 복지관으로 보내고, 빵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주저하시는 사람이 없게끔 기부에 나섰다. 자신에게 희망이 된 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이웃들은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잊지 않은 빵집에서 정성이 빈틈없이 들어찬 빵을 고르고, 그간의 노하우가 몇 겹으로 층층이 쌓인 파이를 집는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꿈꿔왔던 나의 가게


신흥중 대표는 1952년생으로, 시골에서 태어났다. 전쟁의 폐허가 그대로 남아있던 당시, 그는 어렸을 때의 집안 형편, 아니 평범한 시골 동네의 형편을 이렇게 회상했다.

"매일 먹을 게 없었죠. 하루에 한 끼, 죽이라도 먹을 수 있는 집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늘 다짐하곤 했다. '나는 서울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 그렇게 일찍 서울로 상경한 그는 친척의 권유로 1868년, 17살이 되던 해에 처음 제빵에 입문했다. 남의 가게에서 일을 배우고, 일하면서도 그는 항상 다짐했다. '빨리 배워서 내 가게를 시작하고, 가난을 벗어나야겠다'라고. 어린 나이부터 오로지 그 생각으로 버텨냈던 그는 꽤 어린 나이에 창업에 성공했고, 내 가게를 갖게 됐다.

"당시에 빵집이 장사가 잘됐어요. 그래도 빵을 먹을 정도면 중산층 이상은 된다는 인식도 있었고, 애들 생일에 케이크 하나 사다 주면 '아빠,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였죠. 요즘처럼 피자, 치킨, 햄버거가 흔하지 않을 때였잖아요."

그런데 1990년대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빵 외에도 간식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무엇보다도 프랜차이즈 빵집이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어요. 기존 빵집 바로 옆에 생겨도 뭐라고 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기술력이나 인테리어까지 차원이 다르니 기존의 빵집들이 엄청나게 없어졌죠. 아마 한참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남아있는 동네 빵집은 1/10도 안 될 걸요."

하지만 신흥중 대표는 오히려 프랜차이즈로 인해서 빵집이 '걸러졌다'고 표현했다. 프랜차이즈가 공격적으로 확장해나갈 때, 동네 빵집도 나름의 노력을 다해 빵 맛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도 프랜차이즈가 가게 주변에 여러 개 생겼을 때는 힘들었어요. 500m 반경에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5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정말 열심히 빵을 만들고, 개발했어요. 그러고 나니 프랜차이즈가 더 생긴다고 해도 두렵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죠."

그렇게 빵집은 점차 성장해갔으나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었다. 바로 지금 머무르고 있는 건물이 전체 리모델링에 들어간 것. 그때 신흥중 대표는 다른 곳으로 옮겨서 빵집을 열기보다는 건물주와 논의해 리모델링 이후에 바로 다시 그 자리에 빵집을 열기로 정했고, 신흥중 대표도 재정비에 나섰다.

"전에는 흔한 이름의 빵집을 했어요. 이름이 '깜빠뉴'였는데, 당시에 유행하는 빵집 이름이었죠. 그런데 먼저 간판을 달았어도 상표 등록을 먼저 한 곳에서 간판을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아이들과 새로운 빵집 이름을 고민했죠."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이 브리아몽이었다. 프랑스어로 '영롱하게 빛나는'이라는 의미였다. 인테리어도 다시 손 봤다. 오래전부터 꾸려오던 빵집이다 보니 다른 빵집과 비교했을 때, 약간은 오래돼 보이는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오픈을 준비하면서도 일 년 반의 공백이 걱정될 만도 하지만 신흥중 대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골손님들은 제 얼굴만 보면, '빵집 언제 다시 열어요?'라고 물어봐 주셨어요. '요즘 빵 살 데가 없어서 큰일'이라며 채근하시는 손님들께 '기다려주세요'라고 했죠."

역시 오픈 뒤에는 많은 이들이 브리아몽을 다시 찾았고, 그 사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브리아몽은 이제 은평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 브리아몽 대표메뉴(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마늘빵과 연유파이, 그리고 다정한 웃음


브리아몽은 두 가지 대표 메뉴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마늘빵, 하나는 연유파이다. 우선 마늘빵은 국내 마늘을 사용해 만든 빵으로, 그 옛날 마늘빵이 흔하지 않았을 시절, 브리아몽에서 내놓은 빵이었다. 이제는 모든 빵집에서 마늘빵을 판매하지만, 브리아몽에서는 국내산 마늘만 사용한다.

"농산물시장에 가서 직접 마늘을 갈아 와서 쓰죠. 우선 중국산이나 품질이 낮은 국산 마늘을 쓰면, 향과 맛이 약하더라고요. 한식도 마찬가지잖아요. 좋은 고기를 써야 갈비탕이 맛있듯이 오래 되었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쓰면 음식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늘 좋은 마늘로 빵을 만들려고 해요."

연유파이는 지금도 브리아몽에서만 나오는 베스트 메뉴로, 말 그대로 연유를 뿌린 파이다. 이전부터 브리아몽은 파이를 잘 만들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파이는 128겹 이상으로 결이 살아있는 식감이 핵심인데, 자주 만들다 보니 이것만으로는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빵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연유파이를 개발했다. 연유파이를 만드는 방법은 기존처럼 일반 파이를 만든 뒤, 뜨거운 빵 위에 연유를 쫙 뿌린다. 그러면 연유가 열기에 녹아서 파이에 스며든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연유파이가 완성된다. 이렇게 두 가지 대표 메뉴가 유명해지면서 가게가 점차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단골손님들은 브리아몽의 대표메뉴로 이 두 가지를 꼽는다.

여기에 브리아몽의 친절한 응대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신흥중 대표의 철칙은 '브리아몽에 들어온 손님은 모두 웃으면서 나가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빠서 인상을 쓰고 이 문밖을 나서는 고객은 절대 다시 이곳을 찾지 않는다. 맛이 아무리 좋아도 그 빵을 먹을 때마다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면 결코 그 빵이 맛있게 느껴질리 없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대하니 당연히 단골은 점차 늘어났다. 웬만한 동네 사람들은 얼굴도 익숙하니 서로 안부를 묻고 한다. 아이를 데려오는 고객은 아이를 예뻐해 주는 모습에 한 번 더 브리아몽을 찾는다.

"한번은 초등학생 아이 손을 잡은 엄마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자기가 초등학생 때 여기에 빵 사러 다녔던 생각이 나서 결혼하고 난 뒤에는 오랜만에 여기에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버텨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힘이 나죠."

▲ 브리아몽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동네에서 가장 사랑받는 빵집이 되는 방법


신흥중 대표는 빵집을 하면서 가져야 하는 부지런한 태도를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동네 지나가는 이들도 한번쯤 '여기는 참 깨끗하네' 감탄할 정도로 쓸고, 닦고를 반복해야 한다.

"어릴 때 보면 시골에서 논농사를 짓잖아요. 그럼 가는 길에 우거져 있는 풀을 다 정리해요. 그런데 풀도 안 정리해놓은 데를 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이렇게 게을러서 무슨 농사를 짓는다고 그러냐'고 한마디씩 하시죠.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동네 장사를 하려면 쓸고 닦으면서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신뢰를 얻을 수 있죠."

그뿐이 아니다. 브리아몽은 늘 새벽 6시 30분이면 빵집 문을 연다. 이 동네에 가장 빨리 여는 빵집이라 빵을 사러 오는 사람도 많다. 한겨울 6시 30분이면 한밤중보다도 더 짙은 어둠이 깔리지만, 브리아몽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새벽 기도를 가는 사람도, 새벽 일터로 나가는 사람도 어김없이 브리아몽에 켜진 불빛을 보며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브리아몽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정을 빵으로 베풀고 있다.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빵이 재고로 남아있으면, 어차피 다음 날에는 팔 수 없으니 복지관에 모두 기부하곤 했다. 요즘에는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아 기부량이 줄었고, 대신 복지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따로 빵을 기부하곤 한다. 또한 주민센터에 문의해 독거 어르신들이 한 달에 5회 정도 빵을 살 수 있도록 인증표를 만들었다. 이 인증표를 가지고 오면 브리아몽에서는 원하는 빵을 드리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생신날에는 때맞춰 케이크를 전달한다.

대략 10년 전부터 이어온 이 기부활동을 통해 신흥중 대표는 어렸을 때 느꼈던 자신의 설움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꽤 오래전부터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었어요. 가난해서 뭐 하나 사 먹기 어려운 시절이 저도 있었으니까요. 제가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제가 어디에서 사다가 드리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제가 만들어드리니까 금액적으로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아요. 오시는 분들 보면 그냥 우리 부모님 같아요. 우리 어머니도 살아계시면 저 정도 나이셨을 텐데 싶어서 반갑고, 한편으로는 젊어서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싶기도 하고요. 그냥 우리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그래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브리아몽은 그만큼 오랫동안 이웃을 위해 사랑을 베풀었다. 이웃들도 이제는 안다. 사랑이 깃든 빵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다른 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달콤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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