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각을 잃은 생각은 편견의 늪에 빠진다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올해는 가족 휴가를 반납하기로 했다. 해마다 남편의 휴가 기간에 맞춰 가족 휴가를 계획했는데, 코로나의 사나운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가족회의를 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휴가를 반납하자는 쪽에 만장일치 결과가 나왔다.

며칠 동안 산이나 계곡, 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던 시간이 여름 휴가였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에 '떠나는 휴가' 대신 집에서 '가족 화합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고,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으며 올림픽 관람과 응원을 하자고 의견이 모였다. 올림픽 경기를 챙겨 보며 손뼉을 치고 응원을 하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이 해소되는 것 같다.

많은 우려 속에 열리는 일본에서의 올림픽이라 솔직히 개막식 때도 흥이 나지 않았고, 관람의 즐거움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각 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 잘해주고 있어서 오늘 기준으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9개로 현재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펜싱, 양궁, 태권도, 유도, 체조, 사격에 이어 배드민턴도 메달을 추가했다. 펜싱에서 불을 지핀 우리의 메달 획득 장면은 일일이 다시보기를 하며 감동의 순간을 즐겼다. 특히 개인적으로 마지막까지 가장 숨을 죽이며 지켜봤던 양궁은 모든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여자 개인전 결승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시상식까지 지켜보았다.

멋진 한국 유니폼을 입은 우리 선수는 러시아의 엘레나 오시포바를 슛오프 끝에 꺾고 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도쿄 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서 첫 3관왕, 한국 선수 최초로 하계 올림픽 단일 대회 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는 해설을 듣고 더욱 놀랐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저력은 참으로 대단하고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뉴스를 통해 이 선수가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누리꾼들에게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여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깜짝 놀라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논란의 중심에는 선수의 쇼트커트 헤어 스타일과 여대에 재학 중이라는 점, 과거 SNS상에서 페미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가 있었다.

더욱이 여러 나라의 외신들이 이 이슈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기사들을 읽으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이 국내에 반 페미니스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고 보도하며 이런 현상을 '온라인 학대'로 규정해 보도했다.

로라 비커 BBC 한국 특파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페미니즘이 더러운 단어가 됐다.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평등 문제를 제대로 다뤄야만 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들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더는 다른 외신의 기사 내용을 소개하지 않더라도 이번 일로 우리는 외국인의 시선 속에서 '우리나라 일부 안티 페미니즘 정서는 온라인 학대'라는 표현까지 들으며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균형감각을 잃은 사고와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이 낳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선수는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양궁 3관왕이란 쾌거를 이뤄 국위 선양을 했다. 그것이 이 선수의 헤어 스타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잘했다고 칭찬하고 축하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비방하는 말로 어린 선수의 사기를 떨어뜨리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양궁협회를 통해 발표한 '경기 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논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는 이 선수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런데도 그 마음고생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뤘구나' 생각하니 어린 선수의 정신 관리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상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부 기자들이 페미니스트 이슈 관련 질문을 하자 어린 선수는 경기력 이외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짓궂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은 쾌거를 이룬 축하의 인터뷰 자리에서 선수에게 꼭 그런 질문을 했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중세 시대에는 모든 의심은 죽음을 의미했다. 누구든지 신의 섭리를 의심하면 악마의 기운이 몸에 들어왔다며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했다. 1400년 동안 변함없이 받아들여졌던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의심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담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화형을 당했다.

중세 시대에는 신학이 가장 우위에 있었으니 신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용납이 안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는 균형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저항 없이 행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은 진화한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현재에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과거에는 무시하고 폄하하던 일들이 오늘날 재조명되고 재정립되기도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잃은 생각은 편견의 늪에 빠지게 되고, 편견이 깊어지면 아집에 사로잡혀 점점 더 올바른 판단과 사고의 힘을 잃게 된다. 내가 하는 판단이나 생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나 SNS에 올리는 글의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미디어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균형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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