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더운데 배고픈 애들 쫒아가서 때리지 마시라. 부탁 좀 하자"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목3동 한 빌라 주차장에 사는 길고양이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지난 6월 서울시 중랑구에서 한 남성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바닥에 내던져 부수고, 이를 저지하는 '캣맘' 얼굴에는 플라스틱 밥그릇을 던져 상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했다. 길고양이 집 안에는 태어난 지 2~3주밖에 안 된 새끼고양이들이 있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 일을 단순히 주민 간 다툼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하는 한편 7월 6일 중랑경찰서에 정식으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가해자인 남성은 이 일로 동물보호법 위반, 폭행, 재물손괴죄 등의 혐의를 받게 됐다. 중랑경찰서는 가해자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지난 28일 검찰에 사건 일체를 송치했다.

피의자로부터 온갖 막말과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고, 무방비 상태에서 폭행까지 당해야 했던 피해자는 '중랑길고양이친구들' 소속으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길고양이 급식소' 관리자다. 그는 사건 이후 극심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중랑구 사건 피해자와 같이 길고양이들에게 매일 사료를 급여하며 그들의 안위를 챙기는 이들을 가리켜 '캣맘', '캣대디'라고 한다.

캣맘, 캣대디(이하 캣맘)들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맡은 구역을 돌며 길고양이들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운다. 밥은 기본이다. 제대로 활동하는 캣맘들은 TNR(trap-neuter-return:개체 수 조절을 위해 길고양이들을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시킨 뒤 살던 곳에 풀어주는 활동), 병에 걸렸거나 사고로 다친 고양이들의 치료, 입양 홍보 같은 수고로운 일들을 자처한다. 육체노동만도 상당한 이 일들에는 돈도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캣맘들의 몫이다.

캣맘들의 노동에는 대가가 없다.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원봉사 시간이 적립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캣맘들 사이에서는 길고양이 돌봄을 가리켜 "봉사가 아닌 취미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중랑구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캣맘 중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겪지 않았으나 부지불식간에 겪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동물 애호가들, 특히 캣맘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을 보인다. SNS에 퍼진 이 사건 피드에서는 캣맘들이 쏟아낸 울분을 어렵지 않게 찾아 읽을 수 있다. 한 캣맘은 인스타그램에 "무서워서 어디 애들 밥 주러 나갈 수 있겠냐?"며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 엄벌 등을 촉구하는 댓글을 달았다.

2020년 5월 현재 100명 이상이 가입돼 활동 중인 '전국 지역 캣맘 모임'은 약 83개로 추산되고 있다.

▲ 한유정 씨는 고려대학교에 사는 고양이 구해경과 너굴맨의 밥을 챙기는 캣맘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 만나는 고양이들에게도 밥을 준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애들 굶길 순 없지 않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캣맘들은 매일같이 사료와 물, 밥그릇 같은 것들이 들어있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7월은 더웠다. 매우 더웠다. 팝콘뉴스가 길 위에서 캣맘들을 만난 12일과 23일, 31일은 최고기온이 각각 32.5℃, 35.8℃, 34.3℃였다.

고려대학교에 사는 고양이 구해경과 너굴맨에게 밥을 주고, 그날그날의 기록을 SNS에 공유하는 한유정 씨는 온라인상에서 '반반이 집사'로 불리고 있다. 고려대학교 인근 개운사에서 만나 인연이 된 턱시도 고양이 반반이와 맺은 인연 덕이다. 반반이는 지금 고양이별 여행 중이다.

유정 씨는 학교라는 울타리 덕분에 비교적 안전하게 활동하는 운 좋은(?) 캣맘 쪽에 속한다.

그렇다고 유정 씨의 캣맘 활동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가리켜 "전투력이 센 편"이라고 하는 것도, 전에는 겪지 않았던 오해와 비난, 모함 같은 일에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는 캣맘의 처지와 고충을 눙친 말일 것이다.

유정 씨는 고양이들의 한 끼를 위해 자신의 체구만 한 가방을 메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걷는다.

바람 한 점 없는 32.5℃ 날씨. 길에서 만난 고양이 신사의 밥을 챙겨주고 멀찍이서 기다리던 유정 씨는 손을 부채 삼아 땀을 식히며 말했다. "불쌍해요." 유정 씨는 전봇대 뒤에 숨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귀를 세우며 허겁지겁 사료를 삼키는 신사처럼 생긴 고양이에게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학교 안, 작은 풀숲에 나타난 구해경(먹구름, 해피, 경석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에 유정 씨는 '구해경'으로 부르고 있다)과 너굴맨도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지만 약속 시각에 늦지는 않았다. 그들은 사료와 간식으로 배를 채운 뒤 나무 그늘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오래도록 유정 씨가 해주는 빗질을 즐겼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유정 씨는 "다른 날보다 더 더운 것 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점심으로 물냉면을 후식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고 했는데, 갈증을 예방하기에 그 양은 부족했던 것 같다.

유정 씨는 구해경, 너굴맨 외에도 길에서 만나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말을 건다.

캣맘이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간 두 아이를 떠나보냈고, 그 과정에서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을 배웠다. 그 힘든 이별을 두 차례나 겪고도 고양이 사료를 가방에 챙겨 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정 씨는 말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캣맘 활동을 하겠다' 이런 계획은 없다. 그저 '얘네들(고양이들)이 좋은 가정으로 입양 갔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있는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특별한 계획과 슬픈 생각 없이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자는 게 지금의 다짐이다."

▲ 화곡동의 한 공원에서 동네 고양이들의 밥엄마가 돼주고 있는 강혜진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7월 마지막 날 저녁 화곡동의 한 작은 공원에서 만난 캣맘과 캣대디는 34.3℃ 날씨에도 누구 가방이 더 큰가를 내기라도 하듯 각자 무거운 가방을 하나씩 메고 공원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침에 따라 인터뷰는 캣맘만 진행.)

캣맘 혜진 씨는 화곡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2017년 무렵 이 동네 고양이들과 안면을 텄다. 그리고 우연히 곁을 내 준 한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면서 캣맘들이 말하는 '개미지옥'에 걸려들었다.

혜진 씨는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을 꼬박 공원에서 보낸다. 이때라야만 쪼롱이, 세모, 예쁜이, 얼큰이 등 이 동네 길고양이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밥때를 철저히 지키고, 뒷정리를 완벽에 가깝게 하는 혜진 씨 성격 덕에 공원에서 고양이 밥 주는 일로 시비를 걸어오는 주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마음 놓을 수만도 없다. 누군가는 구청에 민원을 넣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실제 민원을 넣은 이들도 있다. 덕분에 구청 직원들에게 한 소리 듣는 일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싸움을 걸어오기도 했다. 때문일까, 혜진 씨는 "말 붙이는 사람들에게 늘 열린 마음일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혜진 씨는 남편과 함께 공원 한쪽에 고양이 급식소 '고양이 포차'를 설치했다. 공원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데다 튼튼한 원목으로 지어져 강제 철거되는 극단의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쪼롱이 등 공원 아이들의 '밥 엄마'로 불리는 것이 좋다는 혜진 씨는 "캣대디님이랑 정사장님, 토리아주머니, 박스할머니 등등 많은 분이 함께 공원 고양이들을 보살펴 주셔서 그나마 여기 있는 애들은 제때 밥 먹고 지낼 수 있는 것 같다"며 "간혹 저희를 지켜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매일 같이 고양이들 밥을 챙기냐고 물어보시는데, 춥고, 비 오고, 눈 오고 그런 날일수록 고양이들이 더 생각난다. 마음 불편한 것보다 몸 귀찮은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23일 목동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캣맘은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다. 지하 방을 얻어 아픈 고양이 여럿을 돌본단다. 그는 인터뷰는 극구 거부했지만, 이 말만은 꼭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양이 싫어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쫓아가서 걷어차고 때릴 건 뭐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고양이 밥 주면서 동네가 얼마나 깨끗해졌는데 무슨 정성으로 이 더운 날 배곯고 사람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애들 쫓아가서 그렇게 해코지하나. 그러지 마라. 벌 받는다. 목숨을 두고 그러는 거 아니다. 부탁 좀 하자."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우리 애들(고양이) 선풍기 틀어줘야 한다"며 발길을 돌렸다.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