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신뢰로 자리잡은 가게, 관심으로 사로잡은 단골

작지만 다양한 품목을 구비하고 있는 생필품의 백화점, '신흥마트'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8/03 [16:40]

[백년가게] 신뢰로 자리잡은 가게, 관심으로 사로잡은 단골

작지만 다양한 품목을 구비하고 있는 생필품의 백화점, '신흥마트'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8/03 [16:40]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신흥마트 이해룡 대표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저는 창업 때 도와주신 분이 계셔서 그런지 이후에도 무엇이든 믿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분이 있었기에 저도, 백년가게도 있을 수 있었죠."

 

시골에서 갓 올라온 젊은이에겐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2년간 착실히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슈퍼로 납품하는 물건을 판매하다 보니 슈퍼 일이 재미있고, 돈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젊은이를 지켜보던 거래처 사장은 젊은이의 성실함 하나만을 믿고, 슈퍼를 해보라며 4천만 원을 건넸다. 지금도 큰돈이었지만, 1988년 당시 그 돈은 빌라 한 채 값이었다. 영수증 하나 없이 신뢰를 담보로 빌린 돈이었다. 

 


신뢰를 담보로 시작한 마트


 

그렇게 준비를 시작한 이해룡 대표는 1989년 신흥마트를 처음 개업했다. 보증금 3천만 원에 운영자금 천만 원으로 마트 개업을 준비하기에는 벅찼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인들이 물품을 외상으로 채워줬다. 

 

"영업사원으로 일했을 때, 친구들이 물건을 다 채워줬어요. 이들 모두 3개월간은 물건값을 받아가지 않았고, 마트 운영하는데 더 투자하라면서 5~6개월간 돈을 안 받아간 친구들도 있었어요. 물론 그때 당시에 미수가 많기는 했는데, 그래도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려웠죠. 물건 하나 팔면, 모자라는 구색을 갖추려고 물건을 들여오는 일을 반복하길 3개월째가 되니 자리를 잡더라고요."

 

그 역시 친구들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후에 미수금부터 해결했다. 미수금을 갚지 않고 가게를 넓히거나 집을 샀다면 더 많은 이득을 얻었을 테지만, 그에게는 갚아야 할 믿음이 더 급했다. 

 

이후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시작됐다. 가게 매출은 월 250만 원에 육박했다. 물가를 계산했을 때 지금 기준으로 한 달 25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많이 벌기 위해 그도 들어오는 물건만 받지 않고, 직접 물건을 사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 오토바이에 실은 물건이 쏟아지면서 오토바이가 뒤집혔고, 그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처음 개업할 때 도와준 영업사원들, 거래처가 너무 고마운 거라. 그걸 잊어버리고 한 푼 더 싸게 사겠다고 그랬으니 다시는 절대 싼 물건을 사러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죠."

 

오히려 이후에는 물건을 이동하면서 들이는 시간을 배달에 집중할 수 있었고, 물건을 옮기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거래처와의 관계 역시도 이전보다 더 탄탄해졌다. 

 

▲ 진열대를 정리 중인 이해룡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대형마트의 위협보다 무서운 단골의 배신


 

이해룡 대표는 지금까지 마트를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위기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마트 운영에 있어 여건이 받쳐주지 않았을 때는 수도 없이 있었다. 우선은 개업하고 난 뒤 2~3년도 지나지 않아 가까운 창동에 첫 대형마트가 생겨났다. 수유에서는 버스를 갈아타면 바로 갈 수 있던 곳에 대형마트가 생기자 여기저기 동네 슈퍼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그만은 생각이 달랐다.

 

"마트는 생활용품 위주로 들어가 있으니 우리와는 조금 다르죠. 그리고 소비자들이 필요한 물품을 잘 가져다 두고, 고객 응대만 잘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면서 그는 단골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가게에서 5년간 마트를 이어왔는데, 장사가 되기 시작하자 건물주에게 가게를 뺏기다시피 떠나야 했다. 두 번째 가게로 기존 가게보다 크기가 절반도 안 되는 가게를 급히 얻다 보니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가게를 운영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두 번째 가게를 얻고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IMF가 터졌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금의 자리는 네 번째 옮겨온 자리이다. 위기는 지금도 있다. 신흥마트 옆으로 다섯 배 정도 되는 큰 규모의 마트가 하나 더 들어올 예정이고, 현재 객수는 한참 때와 비교하면, 1/3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정말 힘이 들 때는 이렇게 마트가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니다. 신흥마트를 찾는 손님이 물건이 싸다, 비싸다고 투정할 때도 아니다. 바로 자신을 배신한 손님을 봤을 때이다. 

 

"늘 믿었던 손님인데 도둑질할 때, 가장 실망이 크죠. 사실 손님이 뭘 훔치는 모습을 보면 제 가슴이 더 두근두근해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싶고요.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을 때도 많고. 조그만 거 하나면 그냥 계산하시게끔 하고 보내드리는데, 두 번, 세 번 이상 그러면 이제 습관이니까. 내가 봐준다고 될 게 아니잖아. 그때 마음이 제일 힘들어요."

 

▲ 다양한 품목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다양한 품목, 다정한 응대 


 

신흥마트는 단위 면적 대비 품목 수에서 전국 1위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품목 수가 많다. 30평도 되지 않는 매장이지만, 최대한 많은 구색을 갖추고, 공간 곳곳을 활용했다. 많은 품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품목당 차지하는 면접이 좁아야 한다. 그렇기에 두 줄로 진열되어 있는 물품은 생수, 콜라, 사이다, 우유 뿐. 그 외에는 어떤 물품도 두 줄의 공간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 많은 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고객들에게는 좋은 일일지 몰라도 가게를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일이 많죠. 빠지면 또 채우고, 빠지면 또 채우고 해야 하니까요. 백년가게 등록 당시에 2만 4천 개 정도 품목이 있었는데, 지금 아마 늘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없어지는 품목만큼 다른 품목으로 대체하니까."

 

게다가 신흥마트는 단골 유지력과 단골 유치력이 워낙 뛰어나다. 이 배경에는 신흥마트의 진심을 담은 고객대응 방식이 있었다.

 

"고객 대응은 어떤 형식적인 방식보다는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친절도 나오고, 배려가 나오니까요."

 

신흥마트를 찾는 단골이라면, 얼굴과 주소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은지, 몸이 좋지 않은지 금세 알아차린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같이 도와주기도 한다. 손님들은 단골이자 한동네에 살아가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은 그렇게 많은 관심을 부담스러워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얼마나 오랫동안 얼굴을 보느냐, 어떤 말투와 표정으로 말을 건네느냐에 따라 달라요. 마음을 열어야 단골이 되죠. 우리 마트를 찾는 고객 중에서도 젊은 층이 점차 늘어나는데, 오히려 젊은 층 단골에게 진열이나 물품에 대해 조언을 들으면서 마트가 더 젊어지고 있어요."

 

▲ 신흥마트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오래된 단골의 목숨을 살린 관심


 

단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한 노부부는 신흥마트를 유독 자주 찾았다. 이해룡 대표와 동갑인 아들이 미국으로 이민 가고 난 뒤, 노부부는 이해룡 대표를 아들처럼 찾았다. 매일 와서 이야기도 나누곤 하면서 정도 쌓았다. 

 

"할머니가 여기 오셔서 장을 보시고 나서 할아버지한테 전화하시면, 할아버지가 오셔서 장바구니를 들고 가시는, 굉장히 이상적인 부부셨어요."

 

그런데 북한산에 물 뜨러 갔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뜨고 할머니만 남게되자, 이해룡 대표는 더욱 신경을 쓰곤 했다. 하루는 굉장히 바쁜 날이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 놀이터에 앉아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바쁜 가게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일이 한가해지길 기다리는 것 같아 그는 아내에게 할머니께 두유라도 챙겨드리라고 전했다. 아내는 여섯 개 들이 두유를 가지고는 나가봤으나 이미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집으로 갖다 드릴 시간까지는 없어서 다시 돌아온 뒤, 정신없이 며칠이 흘렀다. 

 

"어머님이 며칠째 안 오셨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 근데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안 보이실 리가 없어. 어디를 가시면 내가 걱정할까 봐 꼭 얘기하고 가시거든.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

 

가게를 비울 수 없으니 군대 제대한 아들에게 할머니 댁에 빨리 좀 가보라고 채근했다. 아들이 가보니 할머니 집 앞에는 신문이 쌓여있고,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시지 않았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할머니 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갔다. 그리고는 여러 번 할머니를 불러도 대답이 없자 119를 불렀다. 

 

"분명히 안에 계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문을 따달라고 했더니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거야. 경찰이 입회해야 한다기에 경찰도 불렀는데, 경찰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열쇠 기사를 불러서 문을 땄어. 그런데 안에 고리가 잠겨있었어. 근데 구급대도, 경찰도 이 고리를 파손할 수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발로 차서 문을 열었지."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마자 확 냄새가 풍겨왔다. 먼저 들어간 소방대원은 코를 막고는 돌아가셨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해룡 대표는 집으로 달려 들어가 어르신을 흔들었다. 그런데 미세하게 어르신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는 구급대원을 황급히 불러 병원으로 어르신을 모셨다. 다행히 어르신은 몸을 회복하셨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신다. 

 

이후에도 그는 어르신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혹여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묻곤 한다. 간혹 인지능력이 떨어진 어르신이 계시면, 자녀가 마트를 찾았을 때, 치매 검사를 받아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권하기도 한다. 

 

몇십 원, 몇백 원 물건을 싸게 판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단골은 이렇게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그렇기에 신흥마트는 어느 대형마트가 들어온다 해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저 차이 나는 크기만큼 단골손님을 위해 더 관심의 크기를 넓혀 나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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