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습성, 본능 염두에 두고 풀어 키우는 '방사형 농장' 운영

(팝콘뉴스=편슬기 기자)닭을 키우는 '양계장' 하면 A4 용지보다도 작은 케이지 사육장에 갇혀 모이를 먹고, 말 그대로 계란만을 낳기 위한 공장과도 같은 환경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장 효율적이며 면적 대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였기에 케이지 사육은 현재에 들어서까지도 양계장의 기본적 형태로 자리잡았다.

늘 배고팠고 먹을 것이 귀했던 시기에는 생존 이외의 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차츰 성장을 거듭하며 모든 욕구를 충족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자, 우리는 고개를 들어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됐다.

잘사는 것을 넘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며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는 소원농장의 최광헌 대표를 만났다.


닭과 함께 자란 양계장 소년


▲ 닭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원농장 최광헌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비좁은 케이지에 갇혀 평생을 알만 낳다 생을 다하는 닭들을 보고 자란 소년이 있다.

안쓰러움에 부모님 몰래 병아리들을 빼돌려 풀어줬다가 된통 혼이 났던 소년은 이제 수만 개의 유정란을 공급하는 어엿한 사업체의 대표로 성장했다.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양계장을 물려받은 그가 처음부터 케이지 프리(Cage-free) 농장을 운영했던 것은 아니다. '동물 복지'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했던 시절, 그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결정적인 이가 있었다.

바로 과거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다.

2009년 불법 포획된 후 줄곧 서울대공원에서 사육됐던 제돌이는 2013년 7월, 야생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방사됐다. 최광헌 대표는 뉴스에서 넓은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가던 제돌이를 보며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고 회상했다.

최 대표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제돌이가 방사돼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인간과 동물과의 공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그렇게 '동물 복지' 농장의 도입 준비를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7년경 마침 양계장 시설을 교체해야 하는 시기와 맞닥뜨렸다.

기존에 고수해왔던 케이지 사육장 시설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아직은 생소하지만 방목을 통해 닭의 본능을 지켜주는 자연 방사형 농장을 택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소원농장 최광헌 대표는 '케이지 프리 도입'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기존의 케이지 사육장을 새 시설로 교체하고 더 높이 쌓아올리면 많은 닭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매출 증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더 쉽고, 빠르면서도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 대표는 그 길을 걷는 것을 거부하고 아무도 걷지 않은 길로 과감히 발을 내디뎠다.


공장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의 변화


▲ 닭들이 자유롭게 축사를 오고가는 모습(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이전부터 케이지 프리 전환을 준비해 왔지만, 이론과 실전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닭의 본능과 습성을 억제하고 단순히 알 낳는 기계로만 치부해왔던 케이지 사육장과 달리 닭을 자유로이 풀어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닭들 사이에 서열이 생겨나고 다툼도 벌어졌다.

알을 낳기 위해 본능적으로 어둡고 안전한 곳을 찾는 암탉에 알을 수거하는 일도 전보다 번거로워졌다. 사료를 편식하는 닭들도 생겨나면서 배합에 더 세심한 신경을 쏟아야 했다. 분명 키우는 닭의 수는 이전보다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는데 역으로 할 일은 더 많아진 것이다.

최 대표는 "예전과 달리 손이 많이 가긴 한다. 하지만 케이지 사육장은 동물이 '사는 곳'이라기 보다 '공장'이란 인상이 강했다. 생명도, 활기도 없었던 공간이 케이지 프리 전환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동물이 사는 곳, 삶의 터전으로의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컸다. 그저 저렴하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뒤 대량 유통 판매했던 예전과 달리 일정 선의 가격을 유지해야 했고, 대량 판매 또한 어려워져 직거래 내지는 소량 판매로 전환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판로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창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중간 유통 과정을 최대한 줄여 가격 상승을 최대한 줄이고 개별 구매자들에게 소량의 신선한 '동물 복지 유정란'을 배송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됐다.

초반에는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하루에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은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최 대표는 "우리는 '소비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분명 진가를 알아봐 줄 것"이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동물 복지, 이익 생각하면 못 해요"


▲ 계란을 포장하고 있는 직원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렇게 시장에 뛰어든 지 어느덧 4년 차, 그의 말대로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며 매출도 증가하고 단골손님까지 생겨났다.

코로나19로 인해 '건강한 식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덕도 봤다. 외식을 삼가고 되도록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추세로 바뀌며 건강식, 온라인 쇼핑을 택하면서 최 대표가 뚝심 있게 밀어붙인 신념이 빛을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케이지 프리 도입을 고민하는 동종업계 종사자가 있다면 말리지도 권하지도 않을 것이라 말한다.

90년도에 지은 양계장 시설을 바꾸기 위한 갈림길에 섰을 때 만약 최 대표가 케이지 사육법을 택했다면 30만 마리를 키울 수 있었다. 케이지 프리 전환으로 닭의 수가 1만 4천 마리로 줄어들며 떨어진 매출은 말로 다 못 한다.

특히 지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계란 값 파동 당시 주변 양계장은 적잖은 매출고를 올렸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주변 지인들은 "(2017년)그때 케이지로 했으면 돈을 얼마나 벌었겠어"라며 그에게 한 소리씩 얹었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계란을 포장하는 그의 뒤에서 "이걸로 뭐 얼마나 번다고"라며 몇번을 되뇌었다.

쉽사리 케이지 프리 도입을 권하기엔 노력 대비 얻는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노동량은 이전과 비교해 급격하기 증가하는데 매출은 확연히 줄어드니 하지 말라고도, 하라고도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

최 대표는 "케이지 프리 사육에 얼마만큼의 수고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섣불리 해보라고 권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하지 말라고도 못 하겠다"며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대한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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