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빈집 20년간 2배 늘어, 디지털 노마드 족(族)까지 공략

▲ 일본의 비영리법인 고양회귀지원센터가 실시한 '규슈·야마구치·오키나와 발견 페스티벌 2021' 모습. 일본 내 각 지방정부는 인구절벽과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민 유치에 노력 중이다. (사진=고향회귀지원센터(ふるさと回帰支援センター) 제공)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지난 4일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도쿄교통회관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일본의 비영리법인인 '고향회귀지원센터'가 주최한 이 행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남부 지역으로 꼽히는 규슈와 야마구치, 오키나와의 지자체가 뭉쳐 이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규슈·야마구치·오키나와 발견 페스티벌 2021'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전문가의 강연과 선배 이주자들의 토크콘서트, 상담 등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행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든 이주민을 유치하고 싶은 지방정부의 입장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지방 소도시나 농촌 지역의 인구절벽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일본 지자체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빈집'이다.

일본 총무성의 2018년 주택·토지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일본 내 빈집의 수는 지난 20년간 576만 가구에서 849만 가구로 1.5배 증가했다. 이 중 활용이 예상되는 매각이나 임대용 주택의 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방치되었다 할 수 있는 빈집의 수만 따져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82만 가구에서 349만 가구로 2배 가까이 늘었는데, 증가세뿐만 아니라 전체 규모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일본의 빈집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부동산 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전체 주택 거래량 중 기존 주택의 점유율은 14.5% 불과해, 신축 건물보다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매각 자체가 쉽지 않다.

일본 소도시 주택가에서는 최근 때아닌 말벌과의 전쟁으로 골치가 아프다. 주택가의 빈집이 늘어나면서 방치된 빈집을 본거지로 삼아 번식하는 말벌이 지역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 여왕벌이 번식하는 9월부터 11월까지는 비상이 걸리고 매년 20명 정도가 말벌에 쏘여 사망할 정도다. 우리로선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 사회문제화되는 것은 우리와는 다른 재산권에 대한 엄격한 시각도 있지만, 빈집의 방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상속되더라도 매각해서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고, 고향을 떠난 상속자 입장에서 되돌아와 낡은 집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치된 빈집들은 지역 자연재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진과 태풍이 많은 일본의 특성상 집과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파손이나 붕괴로 인해 주변에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의 건설사 크라소네가 올 2월 빈집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보유자의 44%만이 방재 대책을 실시하고 있고, 그 대책이란 것도 상태 점검(68%)과 보험 가입(65%)과 같이 소극적인 대책에 불과했다.

▲ 니가타현 아가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이 상점가에 남겨진 빈집을 둘러보고 있다. 지역 기업은 인근 고등학교와 연계해 빈집을 고등학생을 위한 거점으로 개조해 낙후된 지역에 청년층의 유입을 유도하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사진= 아가마을조성주식회사(阿賀まちづくり株式会社) 제공) © 팝콘뉴스


이런 빈집 문제에 대한 일본 지자체 대책의 초점은 '이주민 유치'에 맞춰져 있다. 일본 취업 시장에선 U턴, J턴, I턴이 신조어로 등장하고 있는데, 도쿄로 상경해 공부하고 고향에서 일하거나(U턴), 도쿄에서 공부한 후 고향 근처의 대도시로 이주하는 경우(J턴), 도쿄 출신이 지방 생활을 동경해 이주하는 경우(I턴)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신조어의 등장은 갈수록 지방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지는 젊은 층의 성향을 대변하고 있고, 지자체들이 이에 맞춰 젊은 이주민을 빈집에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도 한몫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고 도쿄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대도시를 떠나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서의 생활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채택하는 기업이 늘면서, '디지털 노마드 족(노트북,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 장소에 제약받지 않고 일하는 근로자)'을 중심으로 '다거점생활'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모든 생활을 집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나 취미생활 등과 연계된 제2, 제3의 집을 만들어 이동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빈집에 골치 아픈 지자체들에는 이들 역시 영입 대상이다.

이주민을 유치하려는 일본 지자체의 노력은 다양하다. 부동산 회사와 연계해 매입한 주택을 리모델링해 판매하거나 임대하기도 하고, 셰어하우스(공유주택) 형태로 저렴하게 젊은이들에게 빌려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이주 희망자들이 집을 쉽게 검색하고 조건을 따져 볼 수 있도록 '빈집 은행'을 온라인에 만들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의 청소년이나 노인, 애완동물 관리 등을 위한 다양한 거점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해 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업 타당성을 점검하고 실행에 활력을 불어넣는 경우도 등장했다.

이러한 빈집 문제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신축 아파트 물량이 몰리면서 원도심의 공동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강릉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한전의 전력사용량 자료를 바탕으로 농촌 빈집을 26만 채로 추산했다. 전체 주택의 5%에 이르는 규모다. 인구절벽의 끄트머리에 선 우리로서도 이제 빈집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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