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작은 점들이 모여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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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20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던 당시 같은 근무지에서 일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이다.

어느 날 친구는 쉬는 시간에 느닷없이 본인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을 툭 하고 던졌다. 아르바이트라면 필자도 일가견이 있던 터. 이야기는 금세 '누가 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로 흘러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의 완패. 친구는 아르바이트의 개념을 뛰어넘는 일까지 해 본 그야말로 무림의 아니, 아르바이트계의 고수였다.

필자의 혀를 내두르게 한 친구의 독특한 아르바이트는 다름 아닌 '도장과 열쇠 파는 일'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데서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친구의 말을 믿는다.

친구가 '도장과 열쇠'라는 카드를 꺼내기 전까지 필자는 승리를 확신했다. 필자에게도 남들 앞에서 "이런 아르바이트는 못 해봤지?" 하고 우쭐댈 수 있는 독특한 이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독특한 아르바이트 이력을 소개하자면, 하나는 기원에서 바둑돌을 닦고 체에 밭쳐 말리던 일이요, 또 하나는 서울 광진구 우편집중국에서 장정들이나 할 수 있는 (지금으로 치면) 택배 '까대기' 비슷한 일을 소포계에서 했던 것,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후배가 운영하는 신문사에서 고등학생 시절 타이핑(당시에는 PC로 기사 입력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한 일 등이 있다. 아차, 버스회사 차고지에서 버스 기사들이 휴식 전 가져다주는 요금함에 거스름돈 500원, 100원, 50원, 10원 채워 넣는 일도 해봤다.

기자가 되기 전 필자의 마지막 업은 '미술학원 선생'이었다. 고작 4년 한 일이라 '했다'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했던 일이기도 하고 이 일을 제외하고는 '잡스토리'를 완성할 수 없다.

필자는 스티브 잡스의 말 'connecting the dots'를 좋아한다.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형용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스티브 잡스가 정리해 준 기분이다.

갓 기자가 되고서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 시간 외에 그간 했던 모든 경험은 무가치한 것들로 생각했다. 그간의 경험들을 가리켜 '시간 허비한 일' 정도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전혀 쓸모없을 줄 알았던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경험과 미술선생일 때의 손기술(?)이 필자의 기자 일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었는지를.

아르바이트 경험은 느닷없는, 전혀 생뚱맞은 곳에서 마침맞게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가령 신문 편집할 때 막내 주제에 나름 심미안을 발휘한다든지, 인터뷰할 때 상대의 일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공감한다든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바로 다양한 아르바이트 그리고 직업 경험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 "기자에게 미적 감각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있으니 좋더라"는 말을 할 것이다.

완성형의 무엇인가를 이뤄가는 과정의 경험들은 요즘 말로 '무쓸모(쓸모가 없다는 말의 줄임말)' 하지 않다. 'connecting the dots'를 말한 스티브 잡스만 봐도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애플로고를 만들고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신기술이 결합한 기기들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잡스는 매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학창시절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언뜻 보기에 IT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서예 과목을 청강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서예 강의는 그가 UI용 글씨체를 디자인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이 밖에 잡스는 '손수 PC 만들기 클럽'을 거치기도 했다. 이다음은 모두가 아는 잡스의 이야기이므로 생략해도 되겠다.

아르바이트하는 청춘 중에는 그 일을 하는 동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나중에 하고자 하는 일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과 정(情)들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 필자도 20대 초반 같은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불혹을 넘기고 보니 살면서 찍었던 삶의 다양한 점들은 그 모양과 색은 비록 다를지언정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됐다.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그 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과 시간은 분명 '내공'이 된다는 확신까지도 공짜로 얻었다. 물론, 경험을 내공이 되게 하려면 '열정'을 포석 삼아야 한다. 설렁설렁한 일의 자리에는 이력도 돈도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궁금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된 지금은 연락이 끊긴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가 '열쇠와 도장'을 파며 적립한 시간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젊음의 모험심과 상상력 그리고 끝없이 방황하는 탐구의 열정, 그 모든 메이 비(may be)의 아름다운 숲이 여러분의 캠퍼스입니다. 거기에는 내가 출발한 점 그리고 회귀해야 하는 분명한 개미집 같은 내기점이 있습니다. 비범한 것을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세렌디피티란 존재하지 않지요. 단지 평범한 것도 비범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과 눈을 지닌 사람에게만 우연이나 실수까지도 행운이 되는 세렌디피티의 가능성이 찾아옵니다.

젊음은 로또 복권처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젊음에서 방황이 용서되는 이유, 엎어져 무릎을 깨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와 그 상처에서 더 신선한 새살이 돋아나는 행운-이 모든 것이 생명가치라는 개미구멍의 기점을 잃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어령 작가, '젊음의 탄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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