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사랑 전하고 싶어”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때론 말 못 하는 동물이 건네는 위로가 백 마디 말보다 더 와닿을 때가 있다.

우울한 마음에 침대에 엎어져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들었더니 평소 눈길도 잘 주지 않던 반려묘가 침대 맡에 온갖 장난감을 가져다 놨다는 일화, 설움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우는 주인을 위로하려 계속해서 품으로 파고들어 결국엔 주인을 웃게 만든 반려견의 이야기.

우리는 반려동물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이들의 사연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위로라는 개념을 이해할까?


'애니멀 테라피' 동물이 건네는 위로


앞서 건넨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낼 순 없지만 적어도 동물을 쓰다듬는 행동이 스트레스 수준을 낮춰준다는 답은 줄 수 있다.

2019년 실시된 워싱턴주립대학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기말시험 등으로 중압감이 심한 기간에 294명의 대학생을 4개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은 10분 동안 고양이와 개를 쓰다듬으며 함께 놀게 했다.

두 번째 그룹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첫째 그룹이 동물과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세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이 함께 노는 동물들의 이미지를 봤다. 넷째 그룹은 '대기자 명단'에 올려졌다는 이야기만 듣고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동물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연구팀은 피실험자의 타액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10분 동안 고양이와 개를 쓰다듬으며 함께 놀았던 학생들의 코르티솔 수치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반응으로 증가하는 호르몬이다.

이렇게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행위를 '애니멀 테라피'라 일컫는다.


위드햅, 동물이 지닌 따스함 널리 전해


▲ 치유견 조이와 함께 산책 연습에 나선 참가자(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2015년 설립된 사단법인 위드햅(대표 김진)도 동물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는다.

'동물과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동물교감심리치유 서비스를 제공 중인 위드햅은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이란 세월이 매년 짧기만 하다.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 매년 1,000건 이상의 교육을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다.

동물교감심리치유란 반려견과 만남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기쁨과 충만한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활동을 가리킨다.

서울시 동물복지과 소속인 위드햅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그룹홈, 장애인, 치매 어르신, 아동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동물을 매개로 한 심리치유를 비롯해 구조된 유기견들의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산책 행사' 등을 펼치고 있다.

동물교감심리치유는 우선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한 활동가와 그가 키우는 반려견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이후 사전면담과 활동 가능성 및 자질 평가를 진행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반려견의 성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의 성격이 각기 다르듯 개들도 마찬가지다. 인내심 강하고 넉살 좋은 성격의 개가 있는가 하면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성격의 개가 있다. 개의 수만큼 많은 성격이 있기에 위드햅에서는 자칫 입질(위협하거나 무는 행위)로 사람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는 반려견들은 프로그램 참여에서 제외된다.

김진 대표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활동의 특성상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거쳐 활동에 적합한 성격의 활동가와 반려견을 선발한다. 40시간의 수업과 현장실습 5시간을 더해 총 45시간 교육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교육이 끝난다고 바로 심리 치유 활동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이론 시험과 반려견의 시험을 따로 진행하고 이를 모두 합격해야 최종적으로 동물교감심리치유 활동가로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위드햅은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재시험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김진 대표는 "개의 1년은 사람 나이로 치면 6년이 지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매년 재시험을 통해 활동가의 반려견이 교육 내용을 잊지 않고 있는지, 혹시 성향이 바뀌어 치유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꼼꼼히 파악한다"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홍조이라고 합니다!"


▲ 사단법인 위드햅 홍종현 활동가와 반려견 조이(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17일 위드햅 김진 대표와 함께 경기도 광명 소하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동물교감심리치유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교실엔 이미 홍성현 활동가가 수업 준비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홍성현 활동가는 평소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가하며 지극한 동물 사랑을 실천하고 있던 와중 위드햅을 알게 되면서 동물교감활동에도 발을 들였다.

사람이 유기견을 구조하고 보호하고 사랑을 주는 것도 좋지만, 반려견들이 무조건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며 상처받은 다른 이들을 도울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곁에 놓인 케이지 앞에는 그의 반려견 홍조이(푸들, 9세)가 얌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익숙한 듯 큰 눈을 깜빡이는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단 한 번도 짖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베테랑의 기운이 풍기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홍성현 활동가는 "조이는 앞서 활동했던 누나(진돗개)의 뒤를 이어 3년째 치유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개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18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 베테랑 중 베테랑인 셈이다.

수업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참가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하게 볶은 '아줌마 파마'가 트레이드 마크인 어르신들이 익숙한 듯 한 칸씩 자리를 띄어 앉았다.

이날 수업에서는 개와 함께 산책 시 필요한 물건과 개가 산책 도중 실례를 했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개인별 모의 산책을 통해 어르신과 치유견이 서로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수업 중간중간 바쁘게 어르신들 사이를 오가며 조이는 살가운 성격을 뽐냈다. 오랜만에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허벅지를 박박 긁으며 무릎에 앉혀 달라 조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몸을 맡기는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홍성현 활동가는 화려한 입담을 뽐내며 능청스럽게 어르신들에게 농을 건네며 웃음꽃을 피우는가 하면 산책 용품 사용 방법과 반려견에게 리드줄을 다는 법, 산책 시 개와 함께 발맞추고 걷기 등을 차례로 가르쳤다.

서로 리드줄을 건네주며 복도를 오가는 어르신들을 지켜보는 이가 그새 한 명 늘어났다. 소하2동 서호준 동장이었다.

서호준 동장은 "위드햅의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반려견들이 어르신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 애정을 쏟으면 그 이상으로 애정을 다시 되돌려 준다며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하신다. 자존감 회복도 하시고 자신감도 되찾으시는 것이 참 보기 좋다"며 사업 시행 이유에 대해 밝혔다.


김진 대표 "더 많은 사랑 베풀고 싶어"


▲ 심리치유 프로젝트에 참가한 소하2동 서호준 동장(가운데) 및 관계자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수천 회의 활동을 통해 동물이 가진 치유의 힘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는 김진 대표.

평소 폭력성이 강해 시설 선생님과 복지사들도 애를 먹었다던 한 아이는 치유견과의 만남으로 놀랄 만큼 집중력 있고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전화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선생님은 수업 내내 얌전하게 있었다는 김진 대표의 말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스스로 치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치유견들도 있었다. 봉사활동에 나갈 때면 챙겨 입는 조끼를 옷장에서 꺼낼 때면 귀신같이 이를 알아채고 현관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진 대표는 반려견과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관계라는 의견을 밝혔다.

수업을 마친 교실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비우자 언제 복작거렸냐는 듯 적막이 감돌았다. 수업 자료를 정리하던 김진 대표는 "코로나19로 활동 영역이 매우 좁아졌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이전과 같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취약계층들에게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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