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중계방송, 예능, 드라마 TV서 사라져...문화적 정보격차 증가 우려

▲ TV 속 유명인의 OTT 진출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요리 연구가인 백종원도 넷플릭스와 함께 한국의 전통주, 음식, 문화를 다루는 오리지널 시리즈 '백스피릿'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넷플릭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중장년에게 지금 세상은 혼란스럽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이들은 좀 더 단순했던 과거가 그립다. 그때는 모든 것이 쉬웠다. 스포츠 중계는 TV만 틀면 나왔다. LA 다저스에서 뛰던 박찬호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공중파 TV 중계가 없다면 케이블TV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박지성도 이영표도 그렇게 응원했다. 모든 예능과 드라마는 모두 TV 속에 있었다. TV 리모컨 하나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세상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메이저리그 토론토에서 뛰는 류현진 경기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 시합은 TV 속에서 찾을 수 없게 됐다. 중계권료를 지불한 스포티비 측이 중계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올 시즌부터 스포티비 유료 앱 스포티비나우를 사용하거나 스포티비의 유료채널에 가입해야 볼 수 있다. 기존 방송사들이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중계권 확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최근 대회가 진행 중인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유로 2020도 마찬가지다. 축구 강국이 유럽에 대부분 몰려있기 때문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빠진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이 대회는 축구팬이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대표적인 축구 행사다. 이 대회의 중계권은 CJ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계열사인 티빙(TVING)이 확보했다. 중계는 티빙과 tvN, XtvN에서 진행되는데, 주요 중계는 티빙을 가입해야만 볼 수 있다. 직전 대회인 유로 2016은 MBC가, 유로 2012는 KBS가 중계했었다.

이러한 현상은 스포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tvN을 통해 소개됐던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는 최근 새로운 외전,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캠프'를 티빙을 통해 독점 공개했다. '1박2일'의 추억을 가진 중장년에게도 인기 있는 이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기존 채널에서 시청할 수 없다. OTT 서비스를 통해 독점 제공되는 예능 프로그램은 '신서유기'뿐만이 아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SNL 코리아'의 새 시즌은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의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통해 독점 공개될 예정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이러한 OTT 서비스의 독점작 확보 전쟁이 가장 먼저 시작된 분야.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세계적인 OTT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때만 하더라도, 독특한 시도쯤으로 인식됐었다. 영화는 늘 극장에서 시작됐고, 인기 드라마가 OTT를 통해 서비스될 때는 그저 편리한 재방송 채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OTT 업체들의 자금 규모가 커지고 독점작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극장 출입에 영향을 주면서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들어졌던 '사냥의 시간'이나 '#살아있다', '승리호' 등이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관객을 만났다. 해외도 예외는 아니어서 '원더 우먼 1984' 같은 작품들이 HBO맥스를 통해 온라인 공개됐다. K좀비 드라마의 대표 격인 '킹덤'이나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를 다룬 '무브 투 헤븐' 등 TV에선 볼 수 없는 OTT 독점 드라마들은 나열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많아진 상태다.

때문에 IPTV나 케이블TV의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최근 CJ ENM은 콘텐츠 사용료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 12일부터 LGU+를 통한 자사 채널 tvN, tvN 스토리, O tvN, 엠넷, 투니버스의 송출을 중단했다. 일부에선 CJ ENM이 계열사인 티빙 밀어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는 OTT로 대표되는 이런 구독형 서비스가 중장년과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가입부터 서비스 구독, 결제까지 모두 스마트폰에서 이뤄지는 데다, 서비스되는 기기도 스마트폰을 기본으로 한다. 일부 서비스의 경우 TV를 이용하려면 고가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 가입했다고 해도 스마트TV가 있거나 TV에 연결된 디지털기기가 있어야 예전처럼 시청할 수 있다. '디지털 문맹'이라고까지 표현되는 고령자로선 무엇 하나 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은 셈이다.

중장년의 의지와는 달리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구독형 서비스는 영상 콘텐츠를 넘어 서적에서 음식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고, 앞으로 생활밀착형 서비스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서비스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던 IPTV가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누가 다음 차례가 될지 알 수 없다. 이는 중장년이 어떤 불편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보화 산업화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중장년이 부딪히고 있는 정보격차는 이들을 주류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 제기는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독형 서비스가 보편적 시청권과 충돌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활발한 공론화를 통해 고령층이 우리 문화사회의 한 축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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