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업! 평생현역] "'킹덤' 좀비와 BTS 뛰논 이야기와 역사가 만나면 즐거움 배가 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해설사 김안나 씨

이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1/06/11 [16:44]

[굿업! 평생현역] "'킹덤' 좀비와 BTS 뛰논 이야기와 역사가 만나면 즐거움 배가 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해설사 김안나 씨

이준호 기자 | 입력 : 2021/06/11 [16:44]

▲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해설사 김안나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넓은 궁궐과 아름다운 후원을 직장 삼아 생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심 속 서울의 문화재를 방문해 본 경험이 있다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기분 좋은 상상이다. 실제로 궁궐 안 건물 사이를 누비며, 혹은 역사적 장소를 따라 걸으며 지식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역사문화해설사 혹은 문화관광해설사라고 불리는 사람들. 이들 중에서 여러 기관을 통해 활발히 역사해설 활동을 하는 김안나(51) 씨를 만났다.

 

사실 김안나 씨는 우리의 전통이나 역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리적으로도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해외 생활을 많이 했어요. 중국,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한의사였던 아버지가, 성장하려면 해외 문물을 접해봐야 한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대학 때 호주, 필리핀 등에서도 공부했었어요. 상사에 입사해 주재원 생활을 이어간 남편 덕분에 해외 생활을 해야 했었죠. 외국 생활과 한국 생활을 3~4년씩 번갈아 반복했어요. 남아공과 독일, 말레이시아에서 체류하면서 '역마살 낀 생활'을 계속했죠(웃음)."

 

물론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적응할 만하면 떠나야 하는 삶의 반복이 쉬울 리는 없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을 지키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국제학교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며 한국인 학생을 돕는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 들어와선 아예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쳤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제 적성에 딱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한국과 학교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남편을 따라 말레이시아로 떠나야 했는데 포기하고 가려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말레이시아에선 현지 여행사에서 한국인 전담 매니저를 했다. 이방인의 삶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웃사이더로 남아있을 순 없었다. 좋아하는 골프나 여행보다 일을 우선시했던 이유다.

 

"늘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어요.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역사나 전통에 대해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거꾸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말레이시아를 소개하는 일 역시 행복했죠. 그곳에서 제가 관광객의 입장이 됐다가 해설하는 역할도 해 보니 누군가에게 한 나라를 소개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외국인 혼자 다른 나라에 대해 스스로 알아간다는 일은 매우 어렵잖아요."

 

▲ 강녕전 앞에서 해설 중인 김안나 씨. 김 씨는 "우리 궁궐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외부를 화려하게 하기보다는, 건물에 머무르는 사람을 배려한 실용적인 건축이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긴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김 씨가 가장 먼저 한 것 역시 일을 찾는 것이었다. 여행이나 교육 관련 일을 찾다 발견한 것이 역사해설이었다.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도시여행해설가 과정을 접하면서 해설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 한양길라잡이를 알게 돼 이곳에선 수석강사로 활동 중이고요. 2019년엔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해설 분야 자격을 획득해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코로나19로 외국인 발길이 끊겨 기회가 많지 않은 상태예요."

 

한양길라잡이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역사해설활동 민간단체 중 하나로 다양한 자체 해설 프로그램을 개발해 소셜커머스 등을 통해 보급하고 있다. 그중 이들이 운영하는 창경궁과 덕수궁 궁궐야행 프로그램은 소셜커머스 당 수천 건의 판매가 이뤄졌을 정도로 히트상품이 됐다. 

 

그녀가 역사해설에 뛰어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시각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이웃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은데,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성형이나 유흥문화 등 의외로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 이들에게 제대로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 코로나19 사태 이전 역사해설 중인 김안나 씨. 김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해설 수요가 줄고, 해설 가능한 인원도 제한돼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사진=김안나 씨 제공)  © 팝콘뉴스


역사해설은 해외 생활이나 여행사 경험이 있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준비가 필요했다. 역사에 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김 씨는 이야기한다. 

 

"특히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같은 경우는 경쟁률도 엄청나서 언어 능력 이외에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어야 해요. 저도 한국사지도사 1급을 취득하고, 해설을 위한 준비도 많이 했죠. 한양길라잡이에선 매주 월요일 강사들 대상의 심화 교육이 계속 이뤄져요. 역사라는 분야가 깊이 알면 알수록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나는 분야라 배우는 것을 멈출 수 없어요."

 

효과적인 해설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거나 주입하는 것은 경계한다. 대상에 따라 해설의 수준이나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필요하면 넷플릭스의 '킹덤'이나 BTS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흥미로운 요소를 덧붙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단편적인 지식을 얻는 것보다는 전통에 대한 흥미나 역사 의식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가르치면서 김 씨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상당수의 대중이 역사를 '과거의 흔적'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 답도 등 궁궐 곳곳에 새겨진 봉황이 지금까지 청와대의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조선 시대의 종9품이 지금의 9급 공무원과 비견되는 등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현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지금까지 흐르고 있고,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도 가장 행복한 것 역시 관람객과 만나는 것이에요. 2시간을 함께 걷고 이야기하면 칭찬이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들도 많고, 또 관람 후 후기 등을 통해 무척이나 즐겁고 유익했다는 소감을 접하면 보람을 느끼죠. 그런 즐거움 때문에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과 만날까 기대하면서 '입궁'에 나서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