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곳곳에 CCTV 있는데 수술실은 '성역'인가

▲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둘러싼 의협과 국회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지난 5월 척추전문병원으로 알려진 인천 21세기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원무과장, 진료협력과장, 진료협력실장이 대리 수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대리 수술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 수술을 시켜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진 사고도 있었으며 의사 대신 1300여 차례에 달하는 대리 수술을 한 간호조무사가 실형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대리 수술은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혀 의료계 곳곳에서 서로 쉬쉬하며 이뤄지고 있다. 수술실 내 CCTV가 없는 탓에 아직 발각되지 않은 대리 수술도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환자협회 등에서는 대리 수술로 인한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서라도 조속히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술실 CCTV 의무화, 여론조사 80% '찬성'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의 의뢰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지난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0.1%가 환자 인권 보호와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의견은 모든 응답층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30대에서 87.8%로 매우 높게 나타났고 부산과 울산 등 경남지역에서 84.7%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5월 28~29일 이틀간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6.7%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외에도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운영 중인 온라인 정책참여 창구 '국민생각함'에서는 '최근 수술실 내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의견을 조사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의사와 협회가 대리 수술 사실 및 의료과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CCTV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다. 꼭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의사들의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여성들도 더러 있었다.

대리 수술 이외에도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불법 촬영 등의 성범죄와 생일파티, 식음료 취식 등 문제 또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제출한 '최근 5년간 전문직 4대 범죄 현황'을 살펴보면 2015~2019년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수는 613명으로 전문 직종 가운데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성범죄 신고율이 10% 미만인 것으로 미뤄볼 때 전문가들은 밝혀지지 않은 성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년간 살인·강도 등 강력 범죄를 일삼은 의사는 2,867명인데 정작 면허가 취소된 의사들은 총 166명에 불과하다.

이는 보건당국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극히 한정적이고 설령 취소되더라도 면허 재교부를 신청하면 다시 의사 자격을 회복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의사 면허가 만능 면죄부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리 수술 및 범죄 저지르는 의사 '일부에 불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월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처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논란을 빚으면서 결국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살인, 강도, 성범죄 등에는 물론 면허를 취소해야겠지만 공직선거법 등 직무와 연관성이 없는 범죄로도 면허를 취소당하는 것은 헌법상 최소 침해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이 박탈되는 마당에, 국가공무원에도 적용되는 기준을 의사에 적용한 것이 '과잉 처벌'이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를 대다니 옹색하기 그지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은 "무차별적으로 직업 수행의 자유를 박탈해 가중처벌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예컨대 의료인이 환자를 구하기 위해 서두르다 교통사고를 일으켜도 수년간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를 반대했다.

개정안은 결국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복지부와 의료계가 추가 협의를 통해 원안보다 수위를 낮춘 수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관련해서는 의협은 CCTV 설치 의무화 대신 의료계 스스로 자정하도록 '자율정화정책' 카드를 뽑아 들었다.

대리 수술을 막기 위해서는 수술실 CCTV가 아닌 일부 비윤리적 의사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윤리 교육 강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의협이 제시한 대책은 세 가지로 ▲중앙윤리위원회 기능 강화 ▲전문가평가제추진단 활성화 ▲자율정화 특별위원회 설치‧운영 및 면허관리원 추진 등이다.

중앙윤리위원회 기능 강화는 징계의 기초가 되는 조사와 심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토록 조사 및 심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평가제추진단은 의료계 자율정화를 위해 시범사업으로 운영해온 전문가평가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추진 정책이다. 지난 2016년부터 실시, 현재까지 2기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추진 결과 의사 자율정화 기능이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

'자율정화 특별위원회'와 '면허관리원'은 앞서 언급됐던 중앙윤리위와 전문가평가제와 별개로 실효성 있는 의료계 자정활동을 위해 추진하려는 정책이다.

특위와 관련, 우선 의협 및 각 시도의사회에서 '자율정화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접수된 사안에 대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어 사실관계파악 등 신속한 수사를 수행하고 전문가평가제에서 다룰 사항을 전문가평가단에 의뢰한다.

중앙윤리위에 회부돼야 할 사항은 윤리위에 심의를 요청, 그 외 사항에 대해 신속히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시민단체, "자정 노력은 기본으로 CCTV는 객관적 자료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의협의 자정 노력은 진즉에 이뤄졌어야 했다며 이제 와서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을 '극소수'로 규정짓고 협회 차원에서 자정 노력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비난했다.

이제까지 수술실에서 일어난 대리 수술, 의료사고, 사망사고 등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고 이슈화됐다. 그럼에도 비슷한 사고들이 계속해서 반복된 원인은 의료계 스스로 불러오고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윤명 사무총장은 "여태껏 자정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술실 CCTV 설치가 제도화돼야 한다. CCTV 설치로 의료인의 의료권을 침해하고 보장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환자와 의사가 서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절차를 만들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윤 사무총장은 "CCTV는 이미 사회 곳곳에 존재하며 범죄를 예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확인 수단으로, 사회 안전망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CCTV는 서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의 안기종 대표는 "대리 수술, 유령 수술 등 매번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의협은 '자정'하겠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무자격자의 손에 환자를 맡기는 의사는 동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말보다 행동을 보일 때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기종 대표는 "의협은 자정 노력을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뒤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오는 의료법 개정안 통과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이젠 양치기 소년을 보는 느낌이다. 그들이 말하는 자정의 단점과 한계가 명확한 지금, 강력한 처벌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의협의 앞뒤가 다른 말과 행동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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