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할머니의 솜씨가 딸·손주를 거쳐 고객에게로

3대 모녀의 솜씨와 역사가 담겨 곱기 고운 한복, '부산한복'

강나은 기자 | 기사입력 2021/06/08 [16:28]

[백년가게] 할머니의 솜씨가 딸·손주를 거쳐 고객에게로

3대 모녀의 솜씨와 역사가 담겨 곱기 고운 한복, '부산한복'

강나은 기자 | 입력 : 2021/06/08 [16:28]

▲ 부산한복 전영순, 이은진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내 뱃속에서 똑같이 나와도 자식들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은진이는 우리 친정엄마랑 많이 닮았어. 성격도 그렇고, 솜씨도 그렇고. 그런데 바느질을 배우면 고달프게 사니까 딸이 아무리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 알려줬지."

 

전영순 대표는 평생 바느질을 했던 어머니를 닮은 딸에게 바느질만은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에게 있어서 바느질을 물려준다는 것은 가난을 물려주는 일이었기에 딸이 바늘이라도 잡을라치면 말리고 말렸다. 그런데 핏줄이 문제였다. 딸은 성장할수록 더더욱 어머니를 닮아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될 무렵, 결국 전영순 대표는 할머니의 솜씨와 성격을 똑 닮은 딸에게 가게를 물려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랜 시간을 거쳐 수십 개의 길을 지나 결국 돌아온 길은 한복이었다. 딸은 이제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다며, 아이를 키우고, 가게를 보면서도 한복 만드는 데라면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곤 한다. 전영순 대표는 부산 국제시장에서도 제일 유명했던 어머니의 솜씨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솜씨가 다시금 딸의 손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작업 중인 전영순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부산 국제시장에서 시작되어 인천에 상륙한 최고의 한복장이


 

1950년대 부산 국제시장, 그 북적북적하고, 가게 많은 시장에서도 바느질로 유명했던 한 여자가 있었다. 6남매를 키우기 위해 부지런히 바느질하던 1대 이복연 대표는 부지런하기로도 유명했지만, 한복 재단 솜씨가 유독 좋았다. 특히 부산에서 깃과 섶이 가장 예쁜 한복을 물으면, 누구나 '부산주단'을 손에 꼽을 정도. 

 

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이고, 섶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앞을 여밀 때 겹쳐지는 부분이다. 전통한복의 디자인 요소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바로 깃과 섶이다. 동그란 반달 깃, 섶의 모양새가 예뻐서 부산 내에서도 이복연 대표에게 한복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면 이복연 대표는 깃본을 떠주면서 한복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2대 전영순 대표는 아직도 어머니의 깃섶은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다. 

 

"깃과 섶이 안 예쁘면 아무리 바느질을 잘해도 모양이 없어요. 제일 눈에 띄는 데가 예쁘지가 않은데, 예뻐 보일 수가 없죠. 요즘이야 깃섶이 없는 디자인으로 바뀌었지만요."

 

게다가 일제강점기에도 학업을 놓지 않았던 이복연 대표는 함에 들어가는 사주 혼수지에 들어가는 한자도 척척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머리도 좋았고, 그 글씨 역시 혼수지에 쓴 글씨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이복연 대표는 공무원인 남편의 일 때문에 부산에서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남편은 37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고, 혼자서 6남매를 먹여 살려야만 했다. 일곱 식구가 함께 살만한 집을 구하는 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셋방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열 번이 넘게 이사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얻은 집은 늘 부엌 하나에 방 하나가 딸린 작은 집이었고, 이복연 대표는 그 방에서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1대 이복연 대표의 셋째 딸이었던 2대 전영순 대표 역시 17살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를 도와 한복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거죠. 생활하기 어려우니까. 나는 미싱하고. 엄마는 재단하고. 그렇게 식구 전체가 한복을 만들었어요."

 

▲ 고운 한복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어머니의 저고리와 딸의 치마가 더해진 고운 한복 한 벌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밥 굶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머니대 이복연 대표의 솜씨와 장사 수완 덕분이었다. 어른, 아이 상관없이 이복연 대표 주변에는 어머니와 친구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집 안에서 일하다가 가게를 얻어도 봤다가, 가게 월세 때문에 다시 집에서 작업하기를 반복하다 1982년 이복연 대표는 드디어 인천 양기시장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셋째 딸인 전영순 대표가 차려준 한복 가게였다. 

 

"결혼하면서 한복 가게를 차려드렸는데, 혼자서 이 일을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빚만 지니까 제가 다시 한복가게를 인수해 하게 되었죠."

 

가게 살림과 치마 바느질은 딸이, 손님 응대와 저고리 바느질은 어머니가 맡자 본격적으로 가게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6년 돈을 모아 중앙시장으로 그 규모를 넓혀 가게를 옮겼다. 그 뒤에도 꾸준히 부산한복은 호황을 누렸고, 어머니와 딸은 아침 9시에 문 열고, 밤 10시까지 가게를 운영했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뒤, 2대 전영순 대표는 가난해서 평생을 즐기며 살지 못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해외여행을 자주 보내드리곤 했다.

 

"제 기억에 할머니는 해외여행을 진짜 많이 다녀오셨었거든요. 게다가 성격이 좋으셔서 친목회 모임도 대단히 많으셨고요."

 

3대 이은진 대표가 할머니 기억을 떠올리자, 2대 전영순 대표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그래도 예순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나하고 살면서 편하게 사셨어. 간다고 하시면 어디든 보내드렸으니까."

 

딸에게 아직도 위로되는 건 조금이나마 어머니가 말년에는 행복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이었다. 이후 아흔이 되자 그렇게 머리가 좋으셨던 어머니에게는 치매가 찾아왔고, 이복연 대표는 93세에 세상을 떠났다. 

 

▲ 부산한복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할머니의 솜씨가 그대로 이어진 부산한복


 

한편, 이복연 대표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전영순 대표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아 일할 수 없던 첫째 딸 이은진 대표에게 가게를 물려받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꺼냈다. 

 

자신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와 닮은 점이 참 많았다. 바느질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옷감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시켜도 곧잘 요구르트를 얻어먹고 올 정도로 붙임성도 좋았고, 손님 앞에서는 항상 상냥하면서도 활달했다. 

 

솜씨 역시도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들을 좋아하곤 해서 공예고등학교를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전영순 대표는 더욱 딸이 이 일을 맡지 않길 바랐다. 

 

"어렸을 때 난 너무 힘들게 배워서 바느질 알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바느질을 배우면 고달프게 살 것 같아서 바느질을 안 가르쳤죠. 하다못해 뜨개질을 알려달라고 해도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한자 쓰기를 좋아하고, 역사에 흥미를 느꼈다. 2대 전영순 대표의 반대에 딸은 중국어과로 진로를 정했지만, 취미로 사물놀이를 즐기는 등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을 지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런데 전영순 대표가 딸에게 가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의외로 3대 이은진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복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한복 일을 했던 게 아니잖아요. 몇년 정도 한복 쪽으로 일해보긴 했지만, 그 몇년으로 가게를 물려받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할머니 건강이 악화되시면서 가게를 물려받게 되었죠."

 

스스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은진 대표는 열정적으로 한복에 대해 배워 나갔다. 궁중복식을 만드는 방법부터 시작해 복식사, 신한복으로 불리는 생활한복을 만드는 방법까지 기존에 해오던 평범한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디자인의 한복을 제작하는 것이 부산한복의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가게도 봐야 하지만, 이런 교육을 찾아 들으면서 시간이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다양한 교육을 들어보면서 많은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장기적으로 해보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3대 이은진 대표에게 있어서 할머니는 항상 쪽 찐 머리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가게 중앙에 앉아 계신 모습이었다. 지금도 많은 단골고객들은 할머니의 그 모습을 기억하시고는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신다. 이제 단골들은 손주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다. 

 

"저희가 기쁜 날 입으실 옷을 주로 챙겨드리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챙겨드리면 고객분들도 그런 진심을 알아주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다른 분들도 소개해주시고, 재방문해주시고요. 예쁜 옷을 입혀드리고, 만족해 하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 정말 행복해요. 바느질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제 할머니의 솜씨를 똑같이 닮은 이은진 대표가 그 자리에 앉아서 고객을 반긴다. 할머니와 똑같은 웃음으로.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