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17년, 그 첫 페이지를 기록한 남자

휠체어럭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윤세완 씨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06/08 [15:47]

[울타리]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17년, 그 첫 페이지를 기록한 남자

휠체어럭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윤세완 씨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06/08 [15:47]

▲ 7일 정립회관에서 만난 윤세완 국가대표 감독.(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 울타리[fence]: 모든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되는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와 가정, 학교 같은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간혹 울타리 없는, 누구보다 울타리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찬 이들도 있습니다. 코너 [울타리]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필요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설한 코너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정립회관. 이곳 체육관 3층은 매주 월·수요일 성난(?) 사내들의 거친 '함성'으로 가득하다. 이 사이로 '쇠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끼어든다. 성격도 성질도 전혀 다르지만, 희한하게도 이 두 소리는 조화롭다. 어느 한쪽이라도 무음이 되면 소리는 분명 잡음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소리의 발원지는 '휠체어럭비 선수'들과, 그들이 올라앉은 유니크한 모양의 '럭비경기 전용 휠체어'다.

 

소리가 시작되면 경기장은 선수들이 착용한 마스크에서 새 나온 '그것'들로 금방 습해진다. 코팅된 경기장 마룻바닥에는 눈물 비슷한 것들이 떨어져 반짝인다. 그것, '열정'이다.

 

이곳 정립회관 체육관에 모인 이들은 Open부(하지마비 및 절단 장애), Quad부(사지마비) 선수들을 비롯해 감독, 코치 그리고 활동보조인들까지 세보지 않아도 어림짐작해 20여 명이다. 코로나19로 가족 간에도 만나기를 꺼리는 요즘이지만, 휠체어럭비 선수들에게 이곳은 '생존의 장'이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열 체크, 손 소독은 물론 창문 등을 모두 개방해 놓은 상태에서 훈련 및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럭비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선수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데다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기에 상대 선수와의 신체접촉은 당연한 일이다. 비장애인 럭비 경기를 보면 공을 빼앗기 위해 보호구를 착용한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장면, 공을 끌어안고 열심히 뛰던 선수가 넘어져 바닥을 구르거나, 넘어진 선수 위로 다른 선수들이 몸을 덮치는 장면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격렬한, 어찌 보면 험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경기를 사지마비 장애인들이 하고 있다.

 

럭비가 장애인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것은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 당시부터다. 국내에는 2004년에 보급됐다. 그렇게 17년 차가 된 국내 휠체어 럭비는 세계랭킹 12위의 수준이다.

 

▲ 휠체어럭비 전용 휠체어. 선수 개개인의 신체 특성에 맞춰 제작돼 매우 고가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우리나라에 휠체어럭비를 보급한 사람은 1989년 6월 교통사고로 경추손상을 입으며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윤세완(63) 현 국가대표 감독이다. 윤 감독은 사고 전 중앙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생이자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스포츠를 사랑했던 '뼛속까지 스포츠맨'이었다.

 

지금도 스포츠맨으로 사는 그는, 비장애인 시절 장애인 스포츠를 가까이서 접하고 장애인 문제에 관심 가졌던 것이 자신을 빨리 세상으로 뛰어들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휠체어럭비는 운동 효과, 승리욕·재미 다 느낄 수 있는 운동"


 

럭비를 장애인 스포츠로 도입한 것은 스포츠 가운데서도 특히 구기 종목을 좋아했던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기 때문인데, 스포츠에 능했던 그의 판단에 럭비는 사지마비 장애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장애인 스포츠 종목 중에서 운동 효과가 가장 뛰어나면서도 스포츠가 가진 '승리욕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윤 감독과 장애인 몇이 모여 시작한 국내 휠체어럭비는 현재 전국 단위별로 팀이 꾸려졌을 정도로 그 덩치가 불었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국내 휠체어럭비 역사에 남을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윤세완 감독을 비롯한 서울팀 쿼드부 선수 6인이 민간기업 '우림맨테크'의 '휠체어럭비 실업팀 창단'에 따라 정직원 대우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림맨테크 소속 선수 한 명은 "(운동 시작하면서)경제적 자립까지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며 "실업팀 창단 이후 휠체어럭비에 대한 장애인들의 관심이 늘었다"고 말했다.

 

올해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발된 윤세완 우림맨테크 실업팀 감독 겸 서울팀의 수장은 휠체어럭비가 자신과 같은 사지마비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연습경기 전 몸 푸는 선수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윤 감독에 따르면 휠체어럭비 한 게임(8분 4피리어드)을 뛰기 위해서는 휠체어를 두세 시간 정도를 밀 힘이 필요하므로 꾸준히 훈련에 참여하다 보면 체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또한 사지마비는 나을 수 있는 질환 같은 것이 아녀서 단순히 훈련을 세게, 오래 받는다고 걷거나 뛸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꾸준히 운동한 선수 대부분이 손과 팔 등의 기능이 호전되는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운동이 장애인 재활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장애인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보여주는 폐단(신체 기능이 좋아진 장애인의 등급을 조정하는 것 등) 때문에 재활을 위해 '운동'하기를 꺼리는 장애인이 많다는 것은 맹점.

 

윤 감독은 "선수들과 외국에 나간 일이 있는데, 같은 등급을 가진 외국 장애인들을 보면서 놀랐다. 덩치 좋고 살집 있는 그들에 비하면 같은 등급의 장애인이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왜소하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들 입에서 '우리는 관리를 잘해 그렇다'는 자랑이 나온다는 것이다. 관리를 잘해 체력을 높이고 신체 기능을 살려도 그들 나라에서는 장애 등급을 조정해 수급비를 줄이는 따위의 일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또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아니다. 의사도 아니니 상대적으로 전문적이라 할 수 없지 않나. 장애등급 관련해서는 장애 당사자들을 활용해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장애인 고용도 되고 일거양득이다. 이런 생각을 왜 비장애인들은 못 하는 지 이 생각만 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비장애인이던 때에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교단에 서지는 못했으니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 그러나 그는 그 꿈을 이룬 것과 다름없다. 그를 통해 많은 장애인이 체육인이 됐고, 그들 중 일부는 실업팀 소속으로 밥벌이를 하게 됐으며, 또 다른 선수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세계무대에서 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학생과 선수, 그 단어만 다를 뿐 누군가를 지도하고 가르쳐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사회로 배출하는' 점에서 그는 꿈꿔온 일을 실현한 것이다.

 

▲ 경기 직전 윤세완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의할 점을 말하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런 윤 감독은 요새 또 다른 꿈을 그리고 있다. 젊은이들에 비해 신체 기능이 많이 저하된 비장애인 노인과 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 종목을 찾아 널리 보급하는 것이다. 결국 '재활 스포츠의 대중화'가 그가 목표로 삼은 일이다. 더불어 '사이클 선수'라는 개인적인 욕망의 불씨도 꺼뜨리지 않고 있다.   

 

윤 감독은 "장애인들이 집에만 있으면 장애인들도, 집 식구들도 모두가 답답하다. 밖으로 나와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정보 얻고 하는 이런 일들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사고 이후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일이 없다. 부디 운동의 힘을 믿고 재활을 위해 장애인들이 바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국가대표 합숙훈련을 위해 6월 중순부터 90일간 우림맨테크 실업팀과 휠체어럭비 서울팀을 코치에게 일임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내년에 있을 국제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휠체어럭비'의 수준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윤 감독의 부재 예고에도 선수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에 뛰어들었다. 손에 고무장갑이나 고무판 같은 것을 낀 이들은 바큇살 대신 두꺼운 고무판이 대어 있는 휠체어 바퀴를 채찍질하며 상대 선수의 공을 뺏기 위해 속도를 내며 코트를 누볐다. 누군가 공을 놓치면 '아' 하는 짧은 탄성이, 같은 팀 선수의 득점에는 '우와!' 하는 힘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휠체어의 범퍼들에선 박수 소리가 나왔다.

 

윤 감독은 말했다.

 

"운동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이걸 모르는 바보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비장애인은 일이 많고 바빠서, 코로나라서 운동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운동은 분명 우리 몸에 정직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라. 여기 사지마비 장애가 있는 이들의 격렬한 경기를. 사지 멀쩡한 비장애인이 운동하지 못할 이유는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다."